여승훈 목사
낯선 지역을 운전해가면서 약 10년전만 해도 없었던 습관이 하나 생겼다. 손은 핸들을 잡고 눈은 계속 GPS를 체크(check)하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GPS를 체크하는 순간을 놓치게 되면 지나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 되는 경우가 생긴다. 사람이 가진 특성중의 하나는 초점을 자주 놓쳐버린다는 것이다. 초점을 놓치면 결과는 방황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와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종종 방황하는 시기를 만날 때가 있다. 그 시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굉장히 답답하고 억눌리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필자는 그 이유를 초점에서 찾고 싶다. 한마디로 초점해야 할 곳에 초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초점해야 할 곳이 어디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우리가 초점해야 할 곳에 대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초점하여야할 곳은 우리 주 예수님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 초점할 때 더 이상 방황은 지속되지 않고 멈추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 두 번째 시간으로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서머나 교회의 특징은 신약 성경 가운데서 가장 핍박과 박해가 심했던 교회였던 반면에 예수님으로부터 그 어떤 책망도 듣지 않았던 귀한 교회였다. 모진 핍박과 박해로 인한 엄청난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향한 헌신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증명해 보였던 서머나 교인들에게 예수님 자신의 마음이 다 빼앗길 정도로 크게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예수님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었던 교회, 정말 귀한 교회 아닌가? 그것도 형통할 때가 아니라 모진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던 시기 가운데서 말이다. 자, 이런 귀한 교회에게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주시는지 살펴보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계2:9).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던 상황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셨다. ‘환난’과 ‘궁핍’이다. 환난은 무거운 물건에 눌려서 부서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향한 신앙으로 인하여 받았던 핍박과 박해를 뜻한다. 궁핍은 예수님을 향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겪게 되었던 경제적 어려움을 말한다.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향한 신앙으로 인하여 서머나의 사회로부터 혹은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받았다.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대한 신앙 때문에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직업을 잃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달리 표현하면 ‘서머나의 그리스도인들 여러분들은 부자다’ 이런 말이다.
아니 집 뺏기고 직장 빼앗기고 누구 하나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사람도 없는 형편에 부자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 부분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여겨진다. 누가 진짜 부자이고 아닌지를 현실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하관예배 끝나고 관이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살아생전에 부자로 치부해주었던 근사한 하우스도 자동차도 비즈니스도 그 어떤 것도 그 무덤에 함께 가지 못한다. 이 땅에서 궁궐 같은 하우스에서 살았든 아니면 작은 아파트에 살았든 무덤에 들어갈 때는 모두가 빈손이다. 무덤 앞에서 누가 진짜 부자라고 생각하는가? 사도 바울의 말을 상기해보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후8:9). 그리스도는 이 세상 만물의 주인으로서 최고로 부요하신 분이시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초월적으로 부요하신 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부요하신 분이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의 부를 위해서 그가 어떻게 가난하게 되었다는 말인가? 이 세상 모두를 소유하신 분이 아주 가난하고 초라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성장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이런 가난하게 되심으로 인하여 죄인들이 죄사함의 은총을 받고 영원히 사는 생명 영생을 얻고 하늘의 유업을 얻을 자가 되었다. 무덤 앞에서 판단되는 진짜 부요한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영생을 얻고 하늘 유업을 받게 될 자들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모진 핍박과 환난 가운데 지내던 서머나 교인들에게 네가 부요한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모진 핍박과 환난을 받고 있던 서머나 교인들에게는 예수님께 묻고 싶은 한 가지 질문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충성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까“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 예수님을 향한 충성을 드린다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겠느냐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에 예수님의 대답이 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2:10). 이 말은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말이다. 비록 주변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쉽게 돌아서지 말고 예수님께 대한 충성을 흔들림 없이 죽기까지 다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두 번째 교회는 어떤 환경과 상황에도 죽기까지 예수님께 충성하는 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