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목사
20세기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 가운데 한분이던 존 스토트 목사님이 쓰신 what Christ thinks of the Church(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라는 책을 통해서 큰 도전을 받았던 적이 있다. 물론 책의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책의 표지 타이틀 자체가 교회에 대한 필자의 모든 생각을 멈추게 하였다. 목회자는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과 목회 경험을 토대로 그리고 장로님들은 교회를 섬겨오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토대로 정말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저의 목회 비전과 목회 철학과 목회 전략 등을 열심히 준비하였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라는 문구 앞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게 되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교회에 대한 비전 대신에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만나게 되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건물은 설계 도면에 그려져 있는 대로 세워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에 대한 어떤 설계 도면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지상의 모든 교회가 가져야할 공통된 설계 도면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다. 먼저 에베소 교회를 통해서 보여주신 교회에 대한 설계다.
에베소 교회는 성도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고 인내가 있었고 악을 용납지 않는 정의감이 있었고 진리를 분별하는 분별력이 있었고 성실함이 있었던 교회로 참 괜찮은 교회였던 것이다. 많은 현대 교회들이 롤 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그런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한 가지 책망을 하셨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에 대한 제일 첫 번째 메시지라는 측면에서 가장 핵심적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의 최우선은 처음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교회다. 그렇다면 처음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어떤 분은 옛날에 찬양팀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그때를 처음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던 그때를 처음 사랑이라고 하고 어떤 분은 성경 말씀에 푹 빠져서 매일 말씀과 함께 살았던 그 시절을 처음 사랑이라고 하고 어떤 분은 마시던 술을 끊고 피우던 담배를 끊은 변화가 일어났던 그때를 처음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모두다 처음 사랑의 범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언급 하시는 처음 사랑은 보다 구체적이며 보다 본질적인 요소가 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처음 만나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열리던 바로 그 순간을 의미한다. 그때가 언제인가? 요한일서 3장 1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그가 누구인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린 장소가 어디인가? 십자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시므로 이로써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사랑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지점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열린 그 지점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 그 지점이 곧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신 십자가라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랑이 시작된 지점이다.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에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신 말씀의 의미는 에베소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식어졌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감격이 식어진 채 여러 가지 기독교적인 활동들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활동을 받으시지만 하트(heart)가 빠진 활동들은 그 활동이 아무리 뛰어나고 수고스러운 활동이라 할지라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회중들의 활동 이전에 회중들의 heart를 받기를 원하신다. 그 heart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있는 heart이다. 예배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으로 눈물이 있는 그런 예배, 찬양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으로 눈물이 있는 그런 찬양, 봉사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으로 수고의 땀을 흘리는 그런 봉사, 선교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으로 눈물이 있는 그런 선교,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으로 눈물이 있는 그런 섬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으로 모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교회 바로 이런 교회가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식어질 때 그 때 부터는 모든 것이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 종교 활동으로 전락하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식은 채 이루어지는 활동들과 행사들은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세우기 원하는 그런 교회는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독교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그 진리는 지적인 동의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고백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이 단순한 한마디 고백에 우리의 눈시울이 적셔지는 그런 감격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 그런 교회는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결코 어려운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의 고백이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다. 이런 교회가 이곳저곳에 세워지기를 갈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