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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안다는 것 과 전부인 것의 차이

여승훈 목사

“오랜 세월 진리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목회를 시작한 이후에도 말씀운동 성령운동 성장론 상담학 등을 전전하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성경의 진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부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내 나이 66세가 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심장 수술 한번 그리고 암 수술 세 번을 경험하였던 60대 중반에 접어든 어느 목회자의 고백이다. 평생 목회를 하신 분이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몰랐겠는가? 당연히 아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목회의 전부라는 사실까지는 깨닫지 못하셨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치부 어린아이 때부터 줄곧 들어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평생 목회를 하신 목사님이 복음을 잘 몰랐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또한 그 복음에 대해 선포도 해오셨다. 그런데 그 복음을 신앙과 목회의 전부로 여기지 못하므로 인하여 복음을 회중들에게 충분히 드러내고 선포하는 일에 충실치 못한 것에 대하여 후회의 고백을 하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안다는 것과 그 복음이 사역과 신앙의 전부가 된다는 고백 사이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100명의 성도들과 100명의 목회자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라. 다수의 분들이 당연히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분은 나에게 그런 유치한 질문을 하느냐고 화를 벌컥 낼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신앙과 사역의 전부인가 라고 물으면 머뭇머뭇 하는 분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대 교회가 교회된 자리로부터 미끄러져가고 있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몇 년 전 12월 어느 날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샌안토니오 땅의 한 모퉁이 나무 아래서 필자가 섬기던 교회의 청년 사역자와 함께 앉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하여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다.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담임목회자와 부교역자 간에는 사역에 관하여, 행정에 관하여, 목회 방법에 관해서는 많은 대화를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자체를 대화의 소재로 나누는 기회는 그리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함께 복음을 나누는 가운데 얼마나 큰 감격이 있었는지 모른다. 청년 사역자의 입에서 마치 구슬을 꿰듯이 성경과 기독교 전반에 걸친 진리의 세계가 확 뚫리는 것 같다는 고백이 있었다. “아 이거네요 목사님, 아 그게 그거였군요 목사님, 아 그래서 예수 십자가 복음뿐이라고 외치셨군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복음으로 통하네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복음 없이는 칭의도 성화도 없는 거네요” 등등 성령께서 열어주시고 깨닫게 하여주시는 은혜에 대한 고백이 연발로 터져 나왔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사역을 해오면서 왜 복음을 몰랐겠는가? 그런데 그 복음이 목회와 사역의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심장으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청년 사역자가 앞으로의 사역 속에서 드러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광을 생각하며 얼마나 감격해 했었는지 모른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신앙과 사역의 전부가 되면 그 복음이 사람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끓어 올라온다.

그 어떤 사람도 사람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없다. 이유는 사람이 가진 죄성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보자를 통하여서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브리서10:19). 성소에 들어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곧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뜻이다. 무엇을 통해서 나아가는가? 예수의 피를 통해서이다. 예수의 피를 통하지 않고는 기독교의 그 어떤 것도 성립되지 않는다. 당신이 드리는 예배도 예수의 피로 말미암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고, 당신이 드리는 기도도 예수의 피를 통하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방 종교인들도 자기들의 신에게 기도를 올릴 줄 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그 속에 예수의 피가 없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의 피의 공로가 없으면 nothing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전부가 되는 것이다. “저(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린도후서5:15).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분을 위하여 살 수 있는가?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도록 하는 것인가? “저(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그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전부가 될 때 비로소 그 십자가 복음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분을 위하여 살도록 인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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