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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꼴이 이렇게 형편없는데 어떻게 남을 비판하겠는가?

여승훈 목사

각 사람의 내면의 공기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남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남에 대해 부정적인 말 몇 마디를 쏟아내고 나면 그 사람의 내면에는 더욱 탁하고 거칠고 어두운 영의 공기가 형성된다. 남에 대해 열 마디의 부정적인 말을 하면 열 마디만큼의 어두운 공기가 그 사람의 내면에 찾아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몇 사람이 모여서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같이 쏟아내고 나면 부정적인 말을 쏟아냈던 사람들이 더욱 거칠어지고 악해지게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말을 쏟아냈는데 그 말의 독소는 고스란히 쏟아낸 사람의 내면으로 돌아 들어간다. 쏟아내고 나면 내면이 시원하고 깨끗해야 되는데 오히려 더 답답하고 혼란스러워진다.

마태복음 7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진리의 법칙 하나를 소개한다. 비판하는 대로 자신도 남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고 헤아리는 그 헤아림대로 자신도 남들로부터 헤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로마서 2장은 이 법칙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을 비판하는 자는 그 동일한 비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현재의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행동이 유발시킬 앞으로의 가능성도 동시에 보신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면 당신은 이미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한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서 위선과 속임수와 거짓을 보고 있다면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도 똑 같은 위선과 속임수와 거짓이 들어있다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겸손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과 죄악들이 다 드러나서 얼굴도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얼굴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은덕인줄 알아야 된다. 교양이 있어서 얼굴 들고 다니는 것 아니고 학벌이 좋아서 얼굴 들고 다니는 것 아니고 실력이 있어서 얼굴 들고 다니는 것 아니고 외모가 좋아서 얼굴 들고 다니는 것 아니고 선한일 많이 하고 다녀서 얼굴 들고 다니는 것 아니고 크레딧이 좋아서 얼굴 들고 다니는 것 아니고 성공했기 때문에 얼 굴들고 다니는 것 아니다. 죄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덮어주시고 가려주시고 씻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얼굴 들고 다니는 것이다.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좀더 고상한 품격의 사람이 되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다. 제자는 스승의 길을 간다. 스승이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춰야 된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란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하고 원치 않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공감한다. 그럼에도 가야 된다. 이유는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분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그분이 보여주신 은혜가 어떤 것인데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이 어떤 것인데 그분의 요구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막상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고 가슴이 찢어져 나갈 것 같은 심정이어도 그 은혜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하고 싶은 말 거두어들이고 입을 다무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서 보기 전에는 할 말이 많은 법이다. 밤을 새워도 그 말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우리 모두의 입이 닫혀질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자는 늘 자신의 부족을 느끼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사람은 말수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십자가의 엄청난 은혜와 사랑 앞에서 그 누가 할 말이 있겠는가? 그 누가 비판할 수 있고 그 누가 부정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서는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저 고개 숙이고 제가 부족합니다 고백하고 눈물짓는 것이 전부다.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누군가를 비판하면 비판한 그대로 자기 자신도 똑같은 비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이런 용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저도 판단해 주십시오.” 만약 이런 용기를 가질 수만 있다면 쉽게 남을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자 없을 것이다. 흠과 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당신의 죄를 덮을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의 죄도 덮어주게 하는 능력이 있다. 현대 기독교가 꼭 돌아가야 하고 시급하게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리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더욱 알기를 갈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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