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교회 은퇴목사)
우리들의 가난한 시절 화장실에 갈 때 휴지는 신문지 아니면 헌 책갈피 한 두 장이었다. 그 이후로 휴지란 게 있었고 따로 구별해서 쓸 수가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클리넥스라는 휴지를 가깝게 사용하였다. 클리넥스? 클리넥스인지 클린넥스인지 발음도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휴지의 대명사가 되었고 사람들은 휴지를 말할 때 클리넥스라 불렀다.
한 목사님은 자신이 어떤 교회를 방문하면 예배 자리 이곳저곳에 클리넥스가 놓인 것을 보면 그 교회가 얼마나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인지 안다고 했다. 그 목사님 나름의 판단 방법이겠지만 일리는 있도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또는 엎드려 기도하다가 회개와 간절한 기도가 올라올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 콧물 때문에 휴지를 찾게 되고 교회는 이를 대비하여 클리넥스를 미리 마련해둔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음 날 한 집사님이 클리넥스를 박스로 사다놓았다. 클리넥스 이야기가 아니라 눈물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말을 들은 후부터 나는 어떤 교회를 방문했을 때 클리넥스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곤 한다. 과연 오늘의 교회에 눈물이 있는가? 과연 눈물 콧물 흘려가면서 안타깝게 부르짖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 나도 그렇게 부르짖었는데.. 지금 클리넥스가 내 주변에 있는가? 클리넥스만 아니라 휴지 사업이 잘 되는 날이 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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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