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칼럼니스트)
World Share USA 대표
어머니 죽음은 어린 루이스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도 아내를 잃은 충격이 더 컸고 두 아들을 돌볼 여유와 기력을 잃었습니다. 루이스와 형에 의하면 알버트는 아들과의 관계가 아주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루이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영국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냈습니다. 어린 루이스는 그때부터 집을 떠나 기숙학교를 전전하였습니다.
영국에 있는 학교가 아이리쉬에 있는 학교들보다 편리하다고 해서 루이스의 형제는 영국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루이스 형제는 런던 교외에 있는 왓포드(Watford)에 위치한 윈야드(Wynyard)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 학교에는 소수의 학생만 남아있었던 폐교직전의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문제가 많은 학교였습니다.
윈야드 학교는 문제가 많은 학교였습니다. 시설은 최악의 시설이었습니다. 도서관도 없고 실험실도 없고 운동장도 없었던 학교였습니다. 이 학교를 회상하는 글에서 루이스의 형 워런은 옥외 화장실의 악취를 잊을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윈야드 학교에 대한 C.S. 루이스의 기억도 형 워런의 기억만큼이나 부정적이었습니다. 루이스는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윈야드 기숙학교를 나치 강제 수용소에 빗대어 ‘벨젠(나치 수용소)’라고 불렀습니다.
이 학교에 가장 큰 문제는 괴팍한 로버트 캐프런(Robert Capron) 교장이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험한 말로 욕하고 학생들을 마구 때렸습니다. 루이스 형제는 매를 맞지 않았지만 다른 학생들은 흔히 매를 맞았다고 전해집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던 이 학교는 곧 폐쇄되었고 교장은 1년 후에 정신분열증으로 판정받았습니다. 이 학교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가진 어린 루이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벨파스트에 있는 캠블(Campbell) 칼리지에서 한 학기 공부한 후에 루이스는 학교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웨스트 미들랜드(West Midland)에 있는 셔버그 기숙학교(Cherbourg House/예기치 못한 기쁨에서는 ‘샤르뜨르’ 학교로 등장)에 입학했습니다. 이 학교는 몰번 대학(Malvern college)을 가기 위한 예비학교였습니다. 미국의 학제로 한다면 셔버그는 사립 중학교이고 몰번대학은 이름이 대학이지만 대학이 아니라 대입을 준비하는 사립 고등학교입니다. 당시에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대학 진학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곳에서 몇몇 훌륭한 교사들의 지도로 본격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셔버그도 기숙학교였지만 루이스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루이스가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했던 것은 학생들에게 어머니 역할을 해 준 자상한 여 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이스는 어린 시절 유모에게 느꼈던 사랑을 그 사감에게 느낀 듯합니다. 그러나 이 시절에 루이스는 서서히 불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감은 영적으로 매우 미숙한 여인이었습니다. 신비주의와 비밀스런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심취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훗날 루이스는 자신이 불신자가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비술(秘術)에 빠져있었던 셔버그 기숙학교의 여사감을 언급했습니다.
셔버그에서 행복한 두 해를 보낸 후 루이스는 대학 입시 준비학교로 명성 높은 몰번(Malvern)대학으로 옮겼습니다. 루이스는 셔버그 기숙학교에서 신앙을 잃은 후 여러 방면에서 회의론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 시절의 루이스 편지를 살피면 그는 신앙의 잔재마저 완전히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독과 사생활을 즐기는 루이스에게는 사회생활과 운동을 강조하는 기숙학교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가 몰번에서 보낸 세월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심지어 허락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해서 그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무렵 교육열에 불탔던 루이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좋은 가정교사를 찾았습니다. 루이스의 아버지 알버트는 자신의 은사였던 커크패트릭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루이스의 아버지가 다녔던 러건 칼리지 교장이 커크패트릭(W. T. Kirkpatrick)이었습니다.
루이스 아버지는 옛 스승 커크패트릭을 존경했습니다. 변호사가 되어서 퇴직 후 진학 지도를 하던 커크패트릭의 행정변호사로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루이스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자 아버지 알버트 루이스는 자신의 옛 스승이자 루이스의 형 워런(Warren)의 진학을 지도했던 커크패트릭에게 루이스의 진학 상담을 했습니다.
커크패트릭은 이미 경험이 있었습니다. 루이스의 아버지는 루이스마저 지도해 달라고 커크패트릭에게 부탁했습니다. 워런은 커크패트릭의 지도를 받고 경쟁이 치열했던 사관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결국, 루이스의 아버지 앨버트의 설득으로 커크패트릭은 아버지 그리고 형 워런에 이어 루이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루이스는 ‘위대한 노크 선생님’ 커크패트릭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2년 반 동안(1924년 가을부터 1927년 봄까지) 커크패트릭 집에 머물었습니다. 루이스는 커크패트릭과 행복하게 살면서 커크패트릭의 세심한 지도를 받고 실력이 일취월장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기간에 루이스는 철저한 철학적 사유를 하며 신앙적 요소를 완전히 청소했습니다.
커크패트릭 선생은 ‘순전한 논리 덩어리’였습니다. 그는 논쟁을 서슴지 않는 무신론자였습니다. 커크패트릭 선생이 집요하게 논리의 정확성을 강조했습니다. 그 덕분에 그가 30대에 이르기까지 고집스럽게 간직하였던 회의적이고, 합리적이며 물질적인 세계관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커크패트릭의 지도를 받으며 루이스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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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