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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인문학 소양 조기 교육

강태광 목사

 (시인, 칼럼니스트)

           World Share USA 대표

C. S.루이스(Clive Staples Lewis, 클리브 스테이플 루이스)는 1898년 11월 29일 울스터(Ulster/현재 노던 아일랜드) 지역의 수도요 번성했던 항구 도시 벨파스트(Belfast)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벨파스트는 조선(造船) 산업이 활발했고 호화유람선 타이타닉을 건조한 조선 공장이 있었던 유명한 항만 도시입니다. 벨파스트만(灣)은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였고 20세기 후반에는 국제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것이었습니다.

루이스는 태어나자마자 성공회 교구에 소속되었습니다. 루이스 부모는 루이스의 외할아버지 토머스 해밀턴이 교구 목사로 섬겼던 벨파스트 던델라 세인트 마크 교회(성 마가 교회)에 출석했고, 루이스는 자연스럽게 이 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회 기록에 의하면 루이스의 유아세례일이 1899년 1월 29일이고 출생일이 1898년 11월 29일로 기록되어있고 예식 집례 성직자는 그의 외할아버지 토마스 목사였습니다. C.S. 루이스는 외할아버지 손에 유아 세례를 받았고 그의 영적 영향력 아래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C. S. 루이스의 부모들은 교육을 많이 받고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는 중산층이었습니다. 아버지 앨버트 루이스(Albert Lewis)는 나름 성공한 변호사였습니다. 앨버트는 재판의 문서를 다루는 행정변호사였고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았으나 그는 정작 정치에 뛰어들지는 못했었습니다. 문학에 관심 많아 문학 클럽에서 활동했습니다. 문학 클럽 회원 등 지인의 의견에 의하면 앨버트 루이스는 웅변 실력이 상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정적인 남성이었고 자녀들의 교육에 굉장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루이스의 어머니인 플로렌스 아우그스타 해밀턴(Florence Augusta Hamilton)은 벨파스트에 있는 퀸스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퀸스 대학은 영국 전체에서도 꽤 좋은 대학 중의 하나였습니다. 루이스의 어머니는 퀸스 대학교를 졸업할 때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학가는 여자가 흔하지 않은 상황으로 보아 루이스의 어머니는 상당한 엘리트 여성이었습니다. 

C. S. 루이스의 부모들은 1894년에 결혼했고 1895년에 첫아들 즉, 루이스의 형인 와렌(Warren)을 나았습니다. 그리고 1898년 11월에 C. S. 루이스가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루이스가 9살이던 해에 플로렌스가 암으로 사망함으로 결혼생활이 끝났습니다. 앨버트 루이스는 아내와의 사별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들과의 관계도 건강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C. S. 루이스 아버지 앨버트는 아들들이 책을 읽는 환경을 위해 집을 책으로 가득 차게 했습니다. 그래서 루이스는 일찍부터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루이스는 이미 세 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손에 잡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읽어대는 독서광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은 습관을 지녔던 루이스는 평생 책을 읽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울러 루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글을 썼습니다. 8살 때부터 루이스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집니다. 그는 평생 읽고 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루이스가 얻은 첫 직장은 학생들의 글을 읽고 교정해 주는 철학과와 영문학과 교사(Tutor)였습니다. 

루이스와 그의 형 와렌(Warren)은 손가락이 약간 기형으로 운동이나 게임을 잘하지 못했고 관심도 재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이스는 어릴 때부터 시간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루이스와 형은 어렸을 때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쳤고 다른 과목들은 가정교사였던 애니 하퍼가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루이스의 부모는 뿌리 깊은 기독교 가정 출신들이었습니다. 루이스의 증조할아버지는 감리교회의 목사였고, 할아버지는 전도용 팜플렛을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이었습니다. 총신대에서 역사를 가르친 홍치모 교수는 루이스의 고조부가 영국 서부 웰스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글쓰기로 준비된 

기독교 변증가, 회의론자들의 지도자

 

루이스의 외가는 성직자 집안이었습니다. 루이스의 어머니는 해밀톤가 출신의 아일랜드 성공회(Church of Ireland) 사제의 딸이었습니다. 루이스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모두 성공회 성직자였습니다. 양가의 신앙적 전통을 따라 루이스 부모들은 두 아들과 함께 루이스의 외할아버지가 사제로 있었던 던델라(Dundela)의 성 마가 교회에 매 주일 정기적으로 출석하였습니다. 

루이스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교회 출석했지만, 개인적이고 특별한 신앙 경험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루이스의 부모들도 열정적인 신앙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일에 루이스는 편지에서 “우리 부모님들은 특별히 경건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매주 나를 데리고 교회에 꼬박꼬박 출석하였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루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소년 때에는 기독교와 신앙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들이 루이스 자신이 느낀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들로 루이스는 무신론자가 되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의 신앙적 경험들이 기독교 신자가 된 이후 그의 신앙생활이나 그의 저작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루이스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부모는 루이스가 7세 되던 해 벨파스트(Belfast) 근교에 새집을 지어 입주했습니다. 이 집 모든 공간에 각종 책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형은 이미 기숙학교에서 생활했기에 루이스는 형이 없는 외로움을 독서로 달랬고, 이 시절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이 시절에 읽었던 책들이 루이스 일생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C. S. 루이스가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을 뿐만 아니라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루이스는 이 무렵부터 고전어인 라틴어와 헬라어 그리고 유럽 외국어를 습득했습니다. 이 과정이 루이스가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요 회의론자들의 전도자로 준비되는 인문학 수업과정이었습니다. 

Kangtg1207@gmail.com

04.2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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