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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땅 (13) - 할례의 값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할례에도 값이 있을까?

 

삼 천 세겔 – 미화 930달러. 2022년 현재, 이스라엘에서 할례를 받을 때 드는 비용이다. 이스라엘에서 비유대인 남자가 유대교로 개종하고자 할 때, 정통파 절차를 따르지 않는 한 이 비용을 개종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물론 정통파 절차를 따라 개종한다면 이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정통파 공동체에 속해 매일 613가지 계명을 지키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나마 2021년 3월, 이스라엘의 고등 사법재판소가 정통파 절차를 따르지 않는 개종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려 주어 보수파나 개혁파 절차를 통해서도 유대교도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는 했지만, 할례 비용의 지원 혜택은 오직 613 계명을 준수하며 살아갈 개종자에게만 현재 주어지고 있다. 

할례에는 비용만 드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할례를 떠올릴 때 가장 많이 논란이 되는 것은 그 절차가 수반하는 피의 고통이다. 유대교로 개종하고자 하는 미할례 남성의 경우, 현대 유대교에서는 마취를 동반한 외과적 절차와 종교적 절차를 함께 따르도록 한다. 하지만 생후 8일째 되는 아이가 할례를 받을 경우 전통적으로는 마취 없이 의식을 치러왔다. 이 때 설탕물이나 포도주가 가벼운 진정제 구실을 하고있다. 그러나 의식 자체가 어떻게 치러지든, 고통의 정도가 어떠하든, 피를 흘린 상처가 아물기까지 고통의 경험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혁파에서는 부득이한 경우 할례를 받지 않고도 유대교에 입교할 수 있도록 개종자의 편의를 봐 주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이를 ‘특혜’라 생각할 수 있다. 613개의 계명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고, 할례를 면제받았으니 삼천 세겔을 지불해야 할 의무도 없으며 또 모헬(할례 집례자)이 쥔 칼 날에 피를 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특혜’를 본 이가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는 것은 할례를 받지 않는 한 유대인들이 그를 동족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례를 위한 어떤 값도 치르지 않은 그는 오직 서류상 유대인일 뿐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람과 그 대대 후손 사이에 세우신 언약의 표징

“전능한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를 자처하신 은총의 선물

 

결국 따지고 보면 할례란 피를 흘리는 고통을 수반하는 의식인데, 어느 누구는 돈을 내고 이 고통의 의식을 사며 또 다른 누구는 율법을 지킴으로 피의 고통을 치를 자격을 얻고 있다. 참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할례의 기원은 창세기 17장에 적혀 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17:10).

아브람이 구십 구 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주신 명령이다(창17:1). 이 때 하나님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후손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고 이 할례의 언약을 세우시기에 앞서 먼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꿔 주셨다(창17:5). 뒤에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시며(15절) 그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뒤(19절), 이 날 아브라함은 자신과 이스마엘 그리고 자기 집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했다(23-27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년이 지나 이삭이 태어나고 아브라함은 제 팔 일 만에 이삭에게 할례를 행했는데(창21:1-5), 이렇게 태어난 이삭은 할례자 아브라함이 사라에게서 낳은 첫 씨라는 점에서 미할례자 아브람이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할례의 씨 이삭을 통해 언약을 이어 갈 것을 말씀하셨다: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창17:21).

이렇게 할례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언약이 자신의 “살에”(창17:13) 새겨져 있음을 보임과 동시에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낳은 첫 씨의 후손이라는 근본적 차별성, 즉 선민 신분의 표징이었다.

물론 할례가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전통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고대 애굽 인들은 족장시대 훨씬 이전부터 할례를 행했었고, 가나안인들 역시 아브람이 그 땅에 당도하기 이전부터 할례를 행했던 흔적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할례는 생후 8일째인 갓난아이에게 그 의식을 행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예를 들어, 학자들은 고대 애굽 인들의 할례를 사춘기를 지나는 사내아이의 통과 의례 내지는 결혼 전 사내의 생식기능과 연관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런 취지는 이스라엘의 생후 8일째 아이에게 행해지는 할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앞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의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람과 그 대대 후손 사이에 세우신 언약의 표징이었다

(창17:7, 11). 그리고 이 언약은 “전능한 하나님”(창17:1)이 친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를 자처하신(7-8절) 은총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폭스(E. Fox)가 관찰한 바와 같이, 이러한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삶은 전 생애를 통해 경험되어져야 하기에 이스라엘은 그렇게 일찍부터 아이를 할례자로 크며 살아가게 한다.

spark4@gordonconwell.edu

07.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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