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가나안 땅에 찾아든 기근은 앞으로 그 땅에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어야 할 약속이 있는 아브람에게 그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었다. 여러 민족은 고사하고 정작 자신에게 딸린 식솔의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강이 흐르는 땅에서 해결책을 마련해보고자 식솔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간 바 있다(창 12:10). 이것이 그가 75세에 가나안의 기근을 보고 취한 행동이었다.
사래에게도 큰 고민이 있었다. 앞으로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어야 할 약속이 그에게 있는데 정작 그에게는 아이가 들어설 기미가 없는 것이다(창 16:1). 그래서 사래는 애를 가질 만한 젊은 몸을 가진 첩을 남편에게 들여 해결책을 마련해보고자 남편을 애굽 사람 하갈에게 들여보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창 16:2).
이것이 아브람과 사래가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창 16:3), 즉, 사래의 나이 75세에 자신이 출산하지 못함을 보고 취한 행동이었다. “출산하지 못”함(창 16:1), 그것은 사래에게 있어 그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기근이었다.
구약시대 근동인들은 여자를 가사 경제에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여겼다. 결혼과 동시에 여자는 가업의 절반을 감당하기 시작하고, 점차 자녀 – 특히 아들 – 를 생산함으로써 추가 노동력을 보태기 때문이다. 결국 씨가 없음은 빈곤을 가져오고 폐가를 초래하는 땅의 기근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기근과 함께 여인의 불임은 신의 저주로 간주되었고, 혼인계약서에 이런 사태를 대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명시하곤 했다: 1. 이혼하고 새 아내를 맞는다; 2. 본처와 동등한 후처를 들인다; 3. 첩을 들인다; 4. 양자를 들인다.
창세기 16장에서 우리는 사래가 남편을 위해 3번, 즉, 첩을 들이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도대체 왜 아브람이 아닌 사래가 그 일에 주도적인지가 궁금하다.
이와 관련해 주전 15세기경 메소보다미아의 누지(Nuzi)에서 작성된 한 토판 문서(H67)의 내용이 흥미롭다. 어느 가문에서 양자를 들이며 그에게 아내를 맞게 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자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조건이 명시된다:
“셴니마(Shennima)의 아내로 길림니누(Gilimninu)가 주어졌다. 길림니누가 아이를 낳으면 셴니마는 다른 아내를 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길림니누가 출산하지 않을 경우, 길림니누는 셴니마의 첩으로 룰루(Lullu)의 한 여자를 들여야 한다”(Nuzi 문서 H67).
기근의 답은 애굽에 있지 아니하다. 내게도 당연히 없다.
약속을 이룰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기억하자
놀랍게도 아내(길림니누)가 아이를 못 가질 경우 그 아내가 남편(셴니마)을 위해 첩을 들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비록 누지 문서가 아브람 사에 시대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혼인, 상속과 관련된 고대 근동의 전통이 구약시대 안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에 창세기 16장의 내용을 살핌에 있어서 누지 문서의 내용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두 장면을 함께 두고 살필 때, 아마도 사래는 아이를 못 갖는 아내로서 그 시대에 마땅히 요구되는 행동을 취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문제는 그 ‘시대의 마땅함’이 하나님의 약속과 어긋나는 데 있다. 기근으로 강을 찾은 것이나 불임으로 첩을 들인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마땅한 처사로 인식되었겠지만 약속을 친히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는데, 75세의 사래는 75세 때의 아브람처럼 아직 그 믿음의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브람이 찾은 해결책인 애굽이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수치를 끼쳤다면, 사래는 자신이 들인 애굽 여종으로 인해 “멸시”를 당해야 했다(창 16:4). 그 멸시로 인한 “모욕”이 얼마나 컸던지 사래는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요구했고(창 16:5), 아브람은 사래에게 “좋을 대로… 행하라”는 답을 준다(창 16:6).
그 결과 사래는 하갈을 학대했고, 하갈은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다” (창16:6). 여기서 사래가 내쫓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라. 앞서 언급한 누지 문서에 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또 있다:
“길림니누는 첩과 그 자식을 내보지 말아야 한다”(Nuzi 문서 H67).
첩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본처가 첩이나 그 자식을 내보낼 수 없다는 규정이다. 이 내용에 비춰 사래의 상황을 살피자면 당시 사래가 하갈을 괴롭힐 수는 있어도 그를 내보낼 권한은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기근. 그것은 우리의 실존을 흔드는 무서운 위협이다.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들먹이는 수군거림을 동반하기까지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당장 주변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강이 애굽에 있고, 애굽 몸종이 곁에 있는데 어찌 붙잡지 않겠는가.
그러나 약속을 이룰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기억하자. 애굽에 답이 있지 아니하다. 내게도 당연히 없다.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그 능력을 바라볼 믿음의 눈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자.그는 롯에게 양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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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