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언제 아브람은 그 땅을 보았을까? 창세기 12-13장은 세 번의 가능한 시점을 제시한다.
첫째, 아브람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12:4-5) 이 기록에서 우리는 그가 가나안으로 가야 함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았다는 가정을 세울 근거를 발견한다. 그래서 아브람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그가 목적지로서 가나안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차적으로 들었을 때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12:7). 여기서 잠시 문맥을 살피자면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12:6)는 기록이 바로 앞에 있고, 이 문장의 “그 땅”(bāʾāreṣ)을 하나님은 “이 땅”(hāʾāreṣ hazzōʾṯ)이라 지칭하시며 약속을 말씀하셨다. 이때 아브람은 이미 가나안에 들어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러 “그 땅”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이 말씀을 받은 그는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 (창12:7) 그렇게 아브람은 이제 가나안에 살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땅”을
“이 땅”으로 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찾아온 기근은 아브람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다 – 애굽.
비가 내리지 않아도 살 길이 있는 곳. 나일강이 물을 대어주는 땅. 그 애굽을 바라보게 한 것은 분명 아브람 자신의 경험에서 얻어진 안목이었을 것이다. 사실 기근이 들 때 가나안과 주변 지역 사람들에게 애굽은 당연한 피난처였다. 비에 의존해야 하는 가나안과는 달리 애굽은 큰 강을 끼고 있어서 웬만한 가뭄이 들어도 물 걱정이 없었다. 이렇게 가물 때 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당시 가나안에서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아브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바로 그런 강을 낀 땅에서 가나안에 오기 전까지 75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타지에서의 삶을 막 시작한 그가 또 한 번 이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힘들었을 애굽 피난 행이 그에게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결정이었을 수 있다.
이렇게 아브람은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창12:1)라는 말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강을 끼고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애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는 잠시 잊고 살았던 강을 다시 보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 그의 삶의 원천이었던 강이 그 땅에는 굵고 힘있게 흐르고 있었다.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강에는 주인이 있었고 그 주인 바로의 궁이 눈에 들어오자 자신도 사래도 다시 보였다 – 옛 모습으로.
얼마의 시간이 흘러 아브람은 식솔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족장으로 당도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고, 하나님이 강압적으로 개입하심으로 장차 약속의 씨를 잉태할 사래를 되찾아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돌아온 가나안은 그 형편이 달라진 것이 없는 땅이었다. 여전히 가나안 사람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창13:7), 수자원이 부족한 그 땅에서 아브람과 롯은 가축을 먹이기가 어려웠다. (창13:6) 결국엔 둘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창12:7)
그런데 이때 우리는 아브람에게서 한 가지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더이상 자신의 안목으로 땅을 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8-9)
반면 롯의 눈은 여전히 강을 바라보고 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창13:10-11)
이 대화가 오고 간 곳은 벧엘과 아이 사이였다.(창13:3) 거기서 보면 동쪽에 펼쳐진 요단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흐르는 요단강, 비록 그 일 년 유출량이 나일강의 하루 유출량에도 못 미치는 보잘것없는 강이지만, 가나안에서 유일하게 일 년 내내 흐르는 물줄기인 요단강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그 요단 지역에 아브람은 마음을 두지 않았다.
아브람의 안목으로 보는 그 땅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보여 주고자 하신 그 땅
하나님의 약속이 그 삶에 보이기 시작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다음 말씀을 주신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7)
이것이 아브람이 “그 땅” 가나안을 바라본 시점에 대한 세 번째 기록이다.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람은 비로소 “그 땅”을 하나님이 보여 주고자 하신 대로 보고 있었다. 드디어 “이 땅”에는 비도, 요단 지역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약속이 그 삶을 가능케 함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수 천 년이 지난 2022년 4월 9일.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요단 지역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초지에 가축을 몰고 들어가 풀을 뜯기며 소요를 일으킨 사태가 보도된 바 있다. 사실 요단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태 가운데 지극히 작은 사건에 불과하지만 마치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 사이의 다툼을 보는 듯해 관심이 간 일이다.
이토록 21세기에도 계속 회자되는 요단 지역은 그 상당 부분이 현재 요단강 서안지구(West Bank)에 포함되어 있다(지도의 청색 사선처리 부분). 1967년 전쟁의 승리로 서안지구를 차지했던 이스라엘은 1994년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에 따라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게 넘겨주기에 이르렀지만, 차후 군 통제구역, 군 훈련지역, 국유지, 정착촌, 자연보호구역 등의 개념을 동원해 서안지구에 속한 요단 지역을 여리고를 제외하곤 모두 다시 점령해버렸다. 그리고 2019년,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비냐민 네탄야후는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철수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 이토록 요단 지역은 오늘날 이스라엘에 있어서 꼭 되찾아야 할, 그리고 다시는 양보할 수 없는 정치, 경제, 군사적 요지로 재 각인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13장의 아브람이 놀랍다. 이런 요지 요단 지역을 그는 롯에게 양보했던 것이다.
spark4@gordonconwell.edu
06.18.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