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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쌓은 바벨 탑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바벨 탑을 다시 쌓다니 – 누가?

노르웨이의 스케옌(M. Schøyen) 개인 소장유물 가운데 하나인 ‘바벨 탑 석판’(Tower of Babel Stele)은 느부갓네살(2세)이 무너진 바벨 탑을 재건했다는 기록과 함께 그 모양까지 새겨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느부갓네살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의 왕이다. 주전 605년, 나보폴라사르(Nabopolassar)의 뒤를 이어 바벨론의 통치자가 된 그는 주전 597년에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잡고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왕하24:14). 그리고 주전 586년에 이르러서는 아예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을 불사르고 “비천한 자”를 제외한 모든 유다인들을 포로로 잡아 갔다(왕하25:12).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당시 역사를 살필 때, 느부갓네살이 바벨 탑 재건을 마친 것이 주전 590년경으로 추정되므로 그가 주전 597년에 끌고 간 유다의 “장인과 대장장이”들은 막바지에 이른 바벨 탑 재건 현장에 투입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나는 에테메난키(Etemenanki) 건축에 세상 모든 자들을 동원했다. 그들에게 강제노역의 짐을 지웠다”(느부갓네살의 에테메난키 원통 기촛돌 비문 중).

위 비문이 언급한 에테메난키는 느부갓네살이 다시 쌓은 바벨 탑을 일컫는 명칭으로서 ‘하늘과 땅의 토대가 되는 전’이란 뜻을 갖는다. 그리고 이 공사는 탑 꼭대기에 신전을 지음으로 마무리됐다:

“그 꼭대기에는 나의 주 마르둑(Marduk)을 위한 거룩한 처소를 지었다”(느부갓네살의 에테메난키 원통 기촛돌 비문 중).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유다 백성은 포로로 잡혀가 다시 쌓는 바벨 탑 꼭대기에 바벨론의 주 신 마르둑의 신전을 짓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4년 후,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을 불살랐다. 이것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바꾸고 바알, 아세라를 섬기기에 이르렀던 유다 백성에게 임한 심판의 또 다른 한 면이었다. 

질문의 답을 정리해 보자 – 누가 바벨 탑을 다시 쌓았는가? 느부갓네살이었다. 그 작업은 타지에서 잡아온 포로들을 동원해 진행했는데,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끌려온 유다 백성이 그 가운데 있었다.

‘바벨 탑 석판’에 새겨진 탑의 남쪽 측면은 7층 구조를 보여주는데 다른 층들에 비해 1층의 고가 가장 높고, 2층에서 6층까지는 각각 비교적 고가 낮은 단층 토대를 이루며, 출입문이 있는 제 7층은 신전 건물로서 비교적 고가 높아서 내부적으로 두 층의 구조를 가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1층은 중앙과 좌, 우 도합 세개의 계단을 갖추었다.

‘바벨 탑 석판’(The Tower of Babel Stele)을 바탕으로 복원한 탑 측면도.

다른 사료를 통해 그 크기를 계산해 보면 탑의 1층 사면 모두 각각 넓이가 91미터이고, 7층까지의 고 역시 91미터의 크기이다. 대충 현대의 30층 건물 높이와 같은 크기다. 바벨 탑을 재건하는 과정을 느부갓네살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온 땅, 모든 수령을 동원했다… 상해에서 하해까지… 오지와 먼 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에테메난키의 기초는 (흙을) 채워 높은 토대를 만들었고, 역청과 구운 벽돌로 구조를 쌓아 올려 그 꼭대기를 해처럼 빛나게 했다…”(바벨 탑 석판 중).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 11장의 바벨 탑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온 땅… 벽돌… 역청… 탑… 꼭대기… 하늘…”(창11:1-4). 묘사된 장면들이 겹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 느부갓네살이 다시 쌓기로 한 그 무너진 탑이 바로 창세기 11장에 언급된 바벨 탑이지 않을까?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느부갓네살이 다시 쌓기로 한 바벨 탑의 전신은 아수르(Assyria)의 왕 산헤립(Sennacherib)이 주전 689년 바벨론을 정복할 때 허문 것으로서 함무라비 때(주전 18세기)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참고로, 산헤립은 히스기야 때 유다를 침공했던 동일 인물이다). 이렇게 볼 때 바벨 탑은 최소한 세 번은 지어졌을 것이다. 홍수 이후에 한 번, 함무라비 때 다시 한 번, 그리고 느부갓네살 때 또 한 번. 특히 그 탑을 다시 쌓일 때 그 양식과 기법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온 땅의 사람을 노예로 부려 탑을 쌓게 했다는 기록은 어쩌면 창세기 11장의 바벨 탑 건축도 그런 착취와 강압의 면모를 갖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근거를 마련해 준다. 탑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쌓는 인간의 동기, 목적, 수단이 문제의 본질이었다.

느부갓네살이 다시 쌓은 바벨 탑은 일단 그 터에 세워진 마지막 탑이 되었다. 메대(Media)와 바사(Persia)가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후 아하수에로(Xerxes 1)가 그 탑을 일차 허물었고(주전 484년; 참고로 아하수에로는 에스더 서에 나오는 동일인물이다), 주전 4세기 말엽 헬라 제국을 일으킨 알렉산더(Alexander)가 바벨론을 차지한 후 탑을 다시 쌓고자 터를 걷어 냈으나 추진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마지막이었을까? 인간은 분명 다른 어딘 가에 새 터를 잡아 그 탑 쌓기를 계속 해 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바벨론 이름 석자가 성경의 마지막 책에까지 따라붙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바벨론이라”(계17:5).

참으로 집요한 인간이다. 오직 주께서 참으시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이 있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

05.0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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