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에리두→가인이 쌓은 성’ 가설 위한 2가지 수용제안
①엔키=가인의 아들 에녹 ②에리두=에녹의 아들 이랏
에리두(Eridu) 유적지(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가인이 성을 쌓고…”(창4:17). 그 성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2015년 발굴이 재개된 Tell Abu Shahrein이 그 성터 일부일 수 있다. 이라크(Iraq) 남부에 위치한 이 유적지는 1940년대 발굴을 통해 고대 바벨론과 수메르 문헌들에 언급된 에리두(Eridu)로 밝혀지게 되었는데, 특히 수메르 왕명록(Sumerian King List)이 이를 인류 최초의 도시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리두를 형성하는 7개의 흙무지 중 Tell Abu Shahrein은 그 규모가 가장 커서 제 1 흙무지(Mound 1)라 불려지는데, 그곳에 발굴이 재개되어지며 다시 한번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잠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을 통해 에리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전승에 의하면 에리두(Eridu)는 엔키(Enki)를 수호신으로 받드는 성으로서 인류에게 주어진 첫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고대 근동인들에게 있어서 성이 지어진다는 것은 신의 영역을 마련하는 것이며 곧 그 신을 모시는 것이었다. 성 안에서의 삶 또한 신이 내려준 문명을 받아 사는 것이었다.
특히, 반 인간 반 물고기의 어인 일곱이 전해준 예술, 기술을 아우르는 ‘지혜’가 그들의 도시국가를 유지하는 문명의 뿌리라 믿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도시는 신의 영역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신이 내려주는 것이라 인식했다. 그들의 신들이 깃들 형상을 빚어 세운 손으로 집도 짓고 벽도 올리고, 궁, 신전, 성벽을 세우며, 이렇게 지어지는 모든 것 속에서 신들의 세상 만들기가 계속되는 그들의 땅에 가장 먼저 지어져 엔키 신을 받든 성이 곧 에리두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두는 대홍수 이전의 일이었다고 전승은 말한다.
바로 그 전설속의 에리두, 인류역사 최초의 성이라 전해진 그 성이 발견되고 또 발굴된 것이다.
그런데 이 유적지가 창세기 4장 17절에서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한 그 성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에리두가 바로 가인이 쌓았다는 성일 가능성이 있다.
에리두가 가인이 쌓은 성이라는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가인의 아들 에녹(Enok)이 다름 아닌 메소포타미아 전승이 말하는 엔키(Enki)라는 제안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고유명사 엔키가 히브리어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음소변이가 있음을 감안할 때 이 둘을 같은 이름으로 볼 수 있음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고대인들이 신으로 받든 존재 엔키가 신이 아닌 에녹,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 아담의 후손, 가인의 자손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이면서 창세기 4장은 창세기 1장에서 이미 선포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창세기 3장을 지나 에덴 밖에서의 역사를 시작하는 인간에게 변함없이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에녹의 아들 이랏에 관한 제안이다. 창세기 4장 18절 첫 부분을 히브리어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에녹에게 이랏이 태어나니…”. 가인의 아들이 에녹(=엔키)이며 에녹의 아들은 이랏인데, 이 이랏(Irad)이 바로 에리두(Eridu)의 히브리어식 표기라는 제안이다. 이때 역시 다른 언어 간에 있을 수 있는 음소변이, 표기 차이 등을 고려할 때 이 두 고유명사가 같은 이름의 두 다른 표기라는 말이다.
이때 함께 다뤄져야 하는 질문은 어떻게 사람의 이름인 이랏을 도시의 이름인 에리두와 하나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이는 가인이 성을 쌓아 에녹이라 했다는 기사에 이미 그 답이 있다. 사람의 이름이 곧 지명이 되는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굳이 한 예를 더 들자면 단지파가 정착한 성을 단이라 부른 사건이다(삿18:29).
이 두 제안을 다 수용한다면 “에녹에게 이랏이 태어났다”는 말씀은 인류역사 최초의 도시가 엔키를 구심점으로 에리두에 세워졌다는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에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그 성을 가인이 쌓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와 관련하여서는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wayyēḏaʿ qayin ʾeṯ-ʾištô wattahar wattēleḏ ʾeṯ-ḥănôḵ wayhî bōne ʿîr.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가인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였고 그는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는데 성을 쌓으므로 그 성의 이름을 그의 아들 이름 에녹으로 불렀더라.”
문법상 성을 쌓은 것이 누구인지 분명히 가려지지가 않는다. 가인일 수도 있고 에녹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든 결과적으로 이 성은 가인의 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후손이 이를 누렸다. 비록 가인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로” 살았겠으나(창4:12) 그 후손들에게는 정착하여 농경체계를 구축하고 살 기회를 막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반영한다고 볼 여지를 주는 대목이다. 에녹과 그 후손 이랏의 성. 그 에리두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진 것이다.
발굴자들은 에리두의 첫 축성시기를 주전 5300년경으로 보고 있다(제18주거층). 그리고 창세기와 메소포타미아 전승은 둘 다 이 시기가 대홍수 이전 시기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창세기 연대기를 설정해 나가는데 부분적으로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황상 충분한 발굴과 자료조사가 이뤄지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가 있는 시기였겠지만 충분히 관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도 다음 내용을 반영하는 흔적들이 지층을 따라 무수히 발견될 발굴지가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창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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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