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MC 사무총장, Ph.D)
헬레니즘 문화는 갑바도기아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기독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하였다. 정치적 영향은 그리스 마케도니아 행정 체계를 받아들이며 기존의 페르시아적 요소와 융합되었다. 기원전 3세기에 지역은 독립하여 스스로 왕국을 형성하였으나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은 지속되어 정치와 문화에 스며들었다. 이 시대에 헬라어는 국제 공용어로 자리 잡았으며 갑바도기아에서도 상류층과 행정 관료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됨으로 기독교 확산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헬레니즘은 교육과 철학에도 영향을 끼쳐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등의 사상이 갑바도기아 지역에 전파되었고 이는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리스 신화와 지역 신앙은 융합되어 갑바도기아의 자연신 숭배와 그리스 신화가 융합하여 제우스, 헤르메스 등 그리스 신들이 새로운 형태로 숭배된 것을 본다. 특히 초기 기독교 교회와 성화는 헬레니즘 예술 양식의 영향이 컸던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기독교 신학의 많은 용어가 헬레니즘 철학에서 차용되었음을 보게 된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로고스(Logos)는 헬레니즘 철학에서 이성, 우주의 질서를 표현하였는데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신학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는 헬레니즘 철학의 언어를 차용하여 그리스 철학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된 것이다.
플라톤주의는 영적세계와 물질세계의 구분으로 기독교의 천국과 세상에 대한 신학적 개념 형성에 기여했다. 스토아 철학은 윤리적 삶과 자기 통제의 가르침으로 기독교 윤리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신학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다.
갑바도기아는 기독교 신학과 교회 지도자들로 잘 알려진 갑바도기아 교부들을 탄생하였다. 바실리우스 대제 (Basil the Great, 329-379)는 카이사이라의 주교로 수도원 개혁과 삼위일체 신학 수호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레고리우스 닛사의 그레고리 (Gregory of Nyssa, 335-395)는 바실리우스의 동생으로 심오한 신학적 사상을 통해 니케아 신조 (Nicene Creed)를 발전시켰다.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Gregory of Nazianzus, 329-390)은 “신학자”로 불리며 삼위일체와 아리우스파 (Arianism) 이단에 대항하는 글을 써서 이단으로부터 정통기독교를 지키는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본질(ousia)과 본체(hypositasis)의 구분을 확실히 하는 용어들로 설명하였다. 본질은 신적 본질 그 자체를 표현하였으며, 본체는 이 신적 본질의 특수한 형태가 개체적으로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각 위격을 입는 것을 말하였다. 또한, 삼위의 명칭을 예리하게 구분하여 성부는 아버지의 자격 fatherhood, 성자는 아들 되심 sonship, 성령은 성화의 능력 sanctification 이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 아버지는 “나으시지 않으신 자” (unbegotten), 아들은 “낳으신 자” (begotten), 성령은 “발출된 자”(proceed)로 구분하였다. 이렇게 중요한 기독교 교리를 발전시킨 열매들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를 교회의 신앙으로 발표하고 황제가 확인함으로써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으며 정통신앙의 기초를 세웠으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금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헬레니즘의 문화는 로마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기독교의 세계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가 유대인의 종교에서 만인을 위한 종교로 발전시켜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갑바도기아는 기원전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로마 제국의 영토로 통합되어 로마의 중요한 속주로 발전하였다. 이후 기원전 1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공식 속주 (province) 가 되어 로마의 행정 체계, 도로망, 그리고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로마는 총독을 파견하여 행정을 관리하고 로마법을 시행하였다. 정치적 안정은 갑바도기아에서 상업과 교역의 발전을 이루었다. 로마는 갑바도기아를 포함한 소아시아 전역에 도로망을 구축하여 로마와 동방 속주 간의 연결을 강화하였다. 도로는 군사적 이동과 교류 뿐 아니라 기독교의 확산을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갑바도기아는 동방 (파르티아, 페르시아)과 서방 (소아시아, 로마)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로마의 도로망은 복음의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선교사들이 빠르게 이동하며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선교 여정을 통해 소아시아와 지중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할 때 도로망을 적극 활용하였다. Pax Romana로 불려지는 로마 제국의 안정은 평화로운 환경을 가져왔고, 갑바도기아를 포함한 로마 전역에서 기독교가 확산되는데 기여하였다. 로마의 보호 아래 상대적 안전을 누리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초기 로마 황제들의 기독교 핍박은 기독교의 순수성을 확인하고 희생을 통해 공동체를 강화하게 하였다. 초기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박해했으며 갑바도기아 기독교 공동체도 영향을 받았다. 특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재위 284-305)의 대박해 기간 동안 갑바도기아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로마 당국의 박해를 피해 지하도시를 사용하였다. 오늘날 갑바도기아 지역에서 발견된 데린쿨리와 카이막쿨리 지하도시를 보면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신앙생활을 했는지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순교자들의 희생은 기독교 공동체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으며 순교자들의 증언은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을 드러내고 복음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박해 속에서도 생존하고 신앙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이는 기독교 공동체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공인하였을 때에는 갑바도기아는 기독교 박해 시기를 지나 기독교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이후 갑바도기아는 주요 교구와 수도원 중심지로 자리잡고 갑바도기아 교부들이 활동하며 기독교 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던 지역이 되었다. 이는 갑바도기아가 헬레니즘, 로마 문화와 기독교 신앙을 잘 융합하여 지역 문화와 복음의 조화를 이루는 선교적 접근법을 모델링하는 사례로 보여진다. 선교학적으로 볼 때, 로마와 갑바도기아의 관계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네트워크와 안정적인 환경을 활용하는 중요성, 그리고 박해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형성과 신학적 깊이를 갖추는 필요성을 강조한다.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 로마까지 한 지역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난 제국의 통치는 단순히 정치적 권력의 변화를 넘어, 문화의 융합과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혼합 현상은 복음의 전파와 선교적 접근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제국 통치의 변화와 문화 융합 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히타이트와 아시리아 시대에 히타이트는 철기 기술과 법률 제도를 주변 지역에 전파하였고, 아시리아는 정복 지역에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를 확립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 행정, 종교적 관습 등이 융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페르시아 제국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용하며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쳤다. 유대인들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페르시아의 도로망과 행정 시스템은 문화 교류를 가속화 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 헬레니즘 문화는 그리스 문화와 현지 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예술, 철학, 언어를 형성하였다. 로마 제국은 도로망과 행정 체계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했다
융합된 문화들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융합이 일어났다. 그리스 신화가 현지 신앙과 결합해 새로운 신격이 나타나는 경우처럼, 종교적 요소들이 결합 되었다. 초기 기독교는 이러한 종교적 융합 환경에서 복음을 새로운 언어와 상징으로 전달해야 했다. 언어의 통합이 일어났다. 페르시아 제국의 아람어, 그리스어, 로마의 라틴어는 공용어로 자리 잡아,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권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신약성경이 헬레니즘 시대의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된 것은 이러한 언어적 융합의 중요한 사례이다. 문화적 융합은 예술, 건축, 철학 등에서 일어나고, 한 제국에서 다른 제국으로 전승되며 현지 문화와 혼합되었다. 이러한 혼합된 문화는 초기 교회와 기독교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선교적으로 복음의 보편성과 지역적 적응의 균형을 보여준다. 복음의 보편성은 문화 융합의 맥락 속에서, 복음은 모든 민족과 언어, 문화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진리로 자리 잡았다. 로마서 1:16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특정 문화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문화적 적응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초대 교회는 헬레니즘과 로마 문화 속에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문화적 언어와 상징을 활용했다. 이는 선교사가 복음을 전파할 때, 지역의 문화적 언어와 상징체계를 이해하고 이를 복음의 전달에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선교를 위한 네트워크와 교류를 통한 복음 전파는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로망과 통신망 활용은 로마의 도로망과 페르시아의 왕의 길은 복음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는 오늘날 글로벌화 된 세상에서 인터넷, 소셜 미디어, 디지털 플랫폼을 복음 전파에 활용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선교의 전략적 측면에서 문화적 허브에서 복음 확산이 중요하다.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의 문화적 중심지(안디옥, 에베소, 고린도)는 초기 교회가 복음을 확산시키는 거점이 되었다. 이는 현대 선교에서도 도시 선교와 지역 중심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교는 다문화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다문화적 환경에서의 선교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문화 간 대화와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 다문화적 융합 환경에서, 초대 교회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대화와 이해를 강조했다.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연결하며 복음의 보편적 메시지를 전했다 (고린도전서 9:22)."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나니 이는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복음으로 변화된 다문화 공동체의 형성이 중요한 증거가 된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신자들로 구성된 초대 교회는 복음이 다문화적 환경에서도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 선교에서도 다문화적 공동체의 중요성과 효과성을 시사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선교학적으로 지역 문화의 존중과 복음의 상황화를 배워야 할 것이다. 복음 전파는 단순히 서구적 형태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와 언어에 맞게 상황화 해야 한다. 헬레니즘 문화의 로고스 개념을 사용한 요한복음처럼, 지역의 철학과 신앙적 언어를 복음 전달에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네트워크 기반의 선교 전략이 중요하다. 제국의 도로망과 교역로가 복음 전파를 촉진한 것처럼, 오늘날 선교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와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디지털 선교와 도시 선교 전략은 현대 선교 환경에서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문화 공동체의 형성과 화합이 중요하다. 초기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을 한 공동체로 묶은 것처럼, 현대 선교에서도 다문화적 공동체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복음의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히타이트부터 로마에 이르기까지 제국들의 통치와 문화 융합은 한 지역에서 복잡한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문화적 융합 속에서도 복음은 보편적 메시지로 자리 잡으며, 다양한 문화와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표현되었다. 현대 선교학은 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문화 적응과 보편성의 균형, 네트워크와 기술의 활용, 다문화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복음이 오늘날의 글로벌 환경에서도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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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