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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2024 서울-인천 로잔대회와 그 이후(1)

조용중 선교사 (KWMC 사무총장, Ph.D)
조용중 선교사

 (KWMC 사무총장, Ph.D)

제4차 로잔대회가 인천송도의 컨벤시아에서 2024년 9월22일부터 28일까지 200개국에서 5,394명의 현장 참가자, 100여 개국 2,000여 명의 영상참가자, 2,100여 명의 국제와 한국자원봉사자 그리고 6,888명의 중보기도자가 함께하여 개최되었다. 가장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참가자들이 모인 이번 4차 대회에 참가한 필자는 그간 2차, 3차 대회에 참석한 사람으로 수수의 4차 대회에 참가한 한국인으로서 지난 로잔대회의 특징과 과제를 생각해본다. 

1차 로잔대회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되었다. 1차 대회는 남미에서 해방신학과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선교 무용론이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 교회가 복음 전도와 사회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통합적 사명이 명확하게 선포되었고, 선교가 단지 영혼 구원에 그치지 않고 세상의 정의와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로잔 언약이라는 역사적인 선언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로잔 언약은 이후 복음주의선교의 틀을 제시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좋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는 한경직 목사, 김활란 총장 등을 포함하여 약 60여 명이 참가하였으며 그 이후 한국 로잔위원회를 발족하고 서울신학대학의 조종남 총장이 오랫동안 섬겼다. 그는 2023년 소천할 때까지 로잔위원회와 가까이하며 섬기다가, 후배인 서울신학대학의 최형근 교수가 계승하도록 도와 4차 대회까지 섬길 수 있게하였다. 1차 대회 한국 참가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들이었기에 로잔운동으로 한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1차로잔 대회는 서구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비서구권 교회의 목소리가 부족했지만 남미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복음전도와 함께 사회 책임에 대한 강조가 포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와 복음 전도에 있어서 비서구 교회의 참여와 관점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이는 이후 대회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남았다. 

선교 전략에 획기적인 제안은 당시 풀러신학교의 랄프윈터로 부터 나왔다. 모든 족속을 제자삼으라는 메시지를 세계의 모든 국가를 넘어 종족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약24,000여 종족 가운데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17,000여 종족이 남아있다는 도전은 선교의 대상을 새롭게 보도록 시야를 넓혀주었다. 

로잔대회는 전 세계 선교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오랫동안 전통적인 복음전도 중심의 선교적 패턴이 지속적으로 남아있었지만, 복음주의교회는 로잔 언약을 바탕으로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을 모두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게 되었고, 전 세계 교회가 협력하는 선교 네트워크의 기초를 마련했다.

2차 로잔대회 (1989년, 필리핀 마닐라)는 비서구권 교회의 목소리가 더 반영되고 비서구권의 선교운동의 태동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2차 마닐라 대회는 비서구권 교회와 신학의 지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회였다. 오순절교회 출신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참석하면서, 선교의 글로벌화와 교회의 다원성이 강화되었다. 특히, 제삼세계선교협의회(TWMA)가 전시관을 설치하면서 비서구권 선교 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회 이전 1989년 1월에 싱가폴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를 위한 글로벌전략회의(GCOWE)에서는 비서구권에서 2000년대가 되면 1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발표에도 서구지도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서구권선교운동의 태동을 알리는 시도들이 조동진 목사를 중심으로 발표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장 사례들이 발표되고 한국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전체 집회에서 설교를 하는 것으로 한국교회의 존재를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은사주의 운동의 확산이 반영된 대회였다. 은사주의 운동의 급성장으로 인해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고, 대회에 오순절교회 출신들이 많이 참여했다. 이는 카리스마틱 운동이 복음주의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전체 모임 중 뜻밖의 예언이 회중 속에서 터져 나오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대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서구권 중심에서의 전환이 시도되었다. 마닐라 대회는 서구권의 선교 주도권을 비서구권 교회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대회 중에 로잔 대표인 중국계 미국인 토마스 왕이 이임하면서 서구 백인 중심의 구조가 여전히 강력히 존재함을 보였으나, 대회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AD2000 운동과 함께 서구권 중심의 선교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로잔대회 이후 별개의 AD2000 운동의 시작으로 종말론적인 선교운동으로 발전되었다. 마닐라 대회는 AD2000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1040 창과 미전도 종족 선교에 대한 중요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대회 이후 전방개척선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고, 2000년을 맞기 전에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복음주의 진영의 중요한 목표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대회 중간에 중국계 미국인 대표인 토마스 왕이 로잔 대표직에 이임하는 순서가 포함되어, 로잔 운동은 여전히 서구 백인 중심의 구조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신학적 견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은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였다. 

AD2000 운동은 계획했던 2000년 예루살렘대회의 무산과 함께 방향 설정의 혼돈 가운데 있다가 3차 로잔대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가 에딘버러1910 대회의 100주년을 맞으며 계획되었다. 1910년 에딘버러선교사대회의 100주년을 기념하며 3대 중요한 모임이 준비되었는데 2010년 5월에는 랄프윈터 박사를 중심으로 전방개척선교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선교단체대표들이 모인 동경세계선교전략회의가 준비되었고, 6월에 에딘버러현지에서 열린 100주년기념대회 그리고 10월에 3차 로잔 케이프타운 대회가 개최되었다. 필자는 랄프윈터 박사와 함께 동경대회 준비위원장으로 대회를 준비하였다. 대회 일년 전에 소천한 랄프윈터 박사의 유지를 받들어 비서구권교회가 중심이 되어 준비된 첫 번째 국제선교전략회의를 5월에 개최할 수 있었다. 그 대회에는 75개국에서 2500여 명의 대표단들이 참가하여 지속적인 전방개척 선교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고 협력하기로 결정하며 유럽 복음화도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될 사명이라는 것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3차 로잔 케이프타운 대회의 긍정적인 면은 포용성과 세상의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제시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글로벌 차원의 포용성을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대회는 전통적인 선교지였던 아프리카에서 열린 대회였다. 케이프타운 대회는 4,000여 명의 대표들이 전 세계에서 참여하여, 다양한 인종, 문화, 언어권의 복음주의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인 점에서 큰 의의를 가졌다. 이를 통해 선교의 글로벌 차원을 확대하고, 각 지역 교회가 직면한 현실과 과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대회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HIS" (Humility, Integrity, Simplicity)의 가치였다. 주제 강사였던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겸손, 정직, 단순함을 복음적 삶의 핵심 덕목으로 강조하였으며, 이는 대회의 전체 분위기를 지배했다. 특히 라이트의 성경강해는 대회의 주요 흐름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덕목들은 이후에도 복음주의 선교에서 계속 회자되었다. 

디지털 미디어 활용이 두드러졌다. 3차 대회는 이전과 달리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서 대회를 실시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600개 이상의 위성 중계 장소를 마련해, 전 세계 수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온라인으로 대회에 참여하면서, 기술을 활용한 글로벌 소통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는 선교의 디지털화와 관련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교회와 사회적 문제의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케이프타운 대회에서는 복음이 단지 영혼 구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 예를 들어 인신매매, 가난, 질병, 인종 차별 등과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복음적 신앙이 세상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다.

첨단 기술의 시도는 한계도 함께 보여주었다. 케이프타운 대회는 처음으로 대규모 디지털 중계를 시도했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기술적인 문제도 발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터넷 연결 불안정으로 인해 원활하게 대회를 시청할 수 없었으며, 디지털 참여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의 차이가 있었다. 이는 이후 대회에서 더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었다. 

대규모 대회에서 아쉬운 문제인 구체적인 행동 전략 부족이 지적되었다. 3차 대회는 다양한 글로벌 이슈를 다루며 여러 세션과 토론이 이루어졌지만, 각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 행동 전략이나 명확한 목표 설정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대회가 제시한 비전이 현실에서 실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지역 교회와 선교단체 간의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충분히 명시되지 않았다.

3차 로잔대회 이후의 영향과 후속 작업들로서 HIS의 글로벌 확산을 들 수 있다. 케이프타운 대회의 주요 메시지였던 "HIS"는 이후 전 세계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복음적 삶의 기본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겸손, 정직, 단순함은 개인의 영적 성숙뿐 아니라, 교회와 선교 공동체의 영적 리더십에 있어서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복음주의 진영에서 지도자들의 도덕적 책임과 영적 정직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또한 3차 대회는 디지털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3차 대회에서 활용된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 선교라는 새로운 영역의 발전을 촉진했다. 많은 선교단체와 교회가 대회 이후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으며, 소셜 미디어, 온라인 스트리밍, 위성 방송 등의 기술이 선교와 교육에서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는 현대 선교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10.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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