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MC 사무총장, Ph.D)
튀르키예 지진피해 현장은 그 어떤 재난 지역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하였다. 튀르키예 정부가 유일하게 허락한 개신교회당 안디옥교회의 무너진 잔해는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처참한 주위의 환경과 똑같이 무너진 잔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두번의 강력한 지진은 단 21초만에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마치 바닷가 모래위에 성을 쌓다가 물이 들어오면 무너져버린 흔적을 바라보아야 하듯 모든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거나, 심히 파손되어 사람들은 대피하고 빈 건물들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만일에 주위의 건물이 다 무너졌는데 십자가를 단 안디옥교회의 건물만 무사했다면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위의 모든 건물처럼 안디옥교회당도 무너지도록 허락하셨다. 자연의 법칙은 그대로 모슬렘 가옥들이나 기독교 교회당이나 상가나 할 것 없이 오래되고 약하게 지어진 건물들은 무너지고, 최근 강화된 건축규정을 지켜 강하게 지어진 건물들만 일부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교회당 위층에서 거주하던 사역자 가정을 주님은 일년 전에 이사를 나오게 하셔서 온 가족의 생명을 보호해 주셨다. 나는 여기에서 몇가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선교사 가정도 일반 가정과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다.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여야 하며, 계절에 필요한 옷가지를 입어야 하고, 사역을 하다가 쉴 수 있는 안전한 주택이 필요하고, 자녀들은 학습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우리는 때로 선교사는 이런 모든 것이 필요없이 희생만을 기쁨으로 감당하기를 바란다. 안바울 사역자 가정은 10년이 넘게 겨울이면 난방이 잘 안되는 춥고 불편한 오래된 교회당 건물에 거주하였다. 그들은 일년 전에 큰 결단을 하여 가까운 곳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어렵고 힘들어도 재정도 절약할 수 있게 교회 건물에서 살자는 남편과 너무 춥고 힘들어 이사를 하고 싶다는 아내의 대화를 상상해보라. 마치 선교지에서 편하게만 살고자 하는 믿음이 약한 부인사역자의 모습이었겠나. 결국 집을 이사하고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어쩌면 너무 편하게 살고 있지나 않는지, 자주 만나는 시리아에서 나온 난민 가정들은 더 어려운데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생각하며 새로운 거주지가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였을지 모른다. 후원하는 교회에서 혹시 뭐라고 하지 않을까, 후원자가 오해하지는 않을까 이런 불필요한 걱정들을 하지 않도록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미리 현실적이고 적당한 생활의 기본을 지킬 수 있는 규정을 제시해 줘야한다.
교회당을 재건하는 것과 함께 교회를 세워가도록 도와야 한다. 대부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교회는 교회당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어떤 교회라는 이미지는 그 교회당이 함께 떠오르게 된다. 그만큼 교회의 이미지가 유형교회의 환상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유형의 교회가 무너져버린 환경 가운데서 매주 폐허가 된 교회당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안바울사역자와 몇명의 성도들은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가고 있었다. 많은 타지역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만한 교회당의 재건축은 이곳에서 아직은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 십 만 채 이상의 집이 완전히 부셔졌고, 이십만채 이상에서 거주할 수 없는 이재민이 생겼다. 거의 모든 도심이 비어 있다 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텐트들과 임시 막사로 사용하는 컨테이너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도시계획을 하고, 재건할 계획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교회당의 재건은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전기한 것과 같이 성도들이 주일이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흩어진 성도들은 근처의 세 도시로 흩어져서 그 곳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멀리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는 안바울 사역자가 힘을 잃지 않고 성도들을 목양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도와야 한다. 단순한 목양이 아니다.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린 성도 가정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 기회에 더 좋은 직업을 창출하고 재해복구 현장에서 전화위복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은사를 가진 분들이 참여해야 한다. 건설과 수송, 자재공급 등 전문분야에서 도울 수 있는 평신도 전문인들과 사업가들이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안바울 사역자는 이미 체류비자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무형의 교회를 세우는 노력은 함께 해야 한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수고를 한 사람은 그동안 삶을 바쳐 목회를 해온 사역자 자신이지만, 누군가가 이미 뿌렸던 씨앗들이 모여서 안디옥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되었다. 이제 지진으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을 돌봐야 하는 일도 다른 사역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튀르키예에는 많은 한인 사역자들이 있으나 막상 교회를 맡아 목회를 돕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이것은 비자의 문제도 있고, 공개적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씨앗을 뿌리는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믿어지지만 뿌려진 씨앗들이 자랄 수 있도록 거두어들이는 공동체로의 모임이 없다는 것은 건강한 일은 아니다. 전도를 하고 성도의 삶에 변화를 보기까지 십년이상을 완전히 종이 되어 섬겨야 한다고 목회를 해온 사역자는 말하고 있다. 환경이 마음껏 복음을 제시할 수 도 없는 곳에서 단순한 복음제시 자체도 엄청난 일이지만, 구도자를 찾아내서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도록 눈물의 양육을 위해 삶을 드려야 한다. 적극적이고 무모하리 만치 과감한 단기선교로 잘 알려진 단체에서 가장 많은 젊은 사역자들을 그곳에 파송하고 사역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전도 노력 이후에 교회로 세워지는 예가 없다고 한다. 단순한 복음전도의 기회를 가지는 것도 너무나 귀한 일이지만 그 이후 교회로 세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모이는 사역을 위한 화려하지 않지만, 뼈를 깎고 눈물의 강을 건너는 노력이 그 지역에 필요한 일이다.
지진피해 상황은 이제 긴급구조와 구호의 단계를 벗어나 복구의 단계로 내딛고 있다. 흩어져가는 성도들 뿐 아니라 임시숙소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위한 중장기 거주센터를 계획하고 있다. 초기에는 텐트를 가설하고 머물고 있다가 조금 더 튼튼한 컨테이너 주거시설을 많이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컨테이너보다 더 오래 사용하고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지어 공동거주 시설을 만들려는 계획들이 논의되고 있다. 흩어진 성도들이 들어와 함께 지내고,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공동체 마을이다. 여기에는 타종교인들도 원하는 사람들은 들어올 수 있도록 계획한다고 한다. 어떤 단체에서는 이스라엘의 키부츠 공동체 모델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거주자들은 농업에 종사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아무튼 기존의 성도들을 모으려는 다양한 노력이 행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최소한 같은 나라에서 사역하는 다른 사역자들이 마음을 함께 모아야 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닌데 무슨 소리인가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나라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한 때는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지역, 사역자의 숫자가 모든 현지 성도의 숫자보다 많았던 나라, 이제 조금 현지인 지도자들이 세워져 가고 있는 나라, 그 나라에서 사역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내일을 바라보고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 모습을 밖에서 함께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교회의 사역자들과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절실하다. 서로 힘을 합하지 못하는 것을 가장 기뻐할 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져 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탄의 세력이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어버린 튀르키예의 아픈 현실은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역자들에게 지치지 않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일상의 필요를 이해하고 돕도록 해야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잊혀져 버릴 수 있는 중장기 복구의 기간에도 우리의 관심을 함께 기울이자. 교회당의 재건과 함께 교회가 세워져 가도록 마음을 함께 하며 현장의 사역자들이 아름다운 연합을 이룰 수 있도록 돕자. 폐허 속에 세워져 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온전한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을 나누기를 기대하며 폐허 속에 피어나는 소망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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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