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MC 사무총장, Ph.D)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며 항상 고맙고 생각나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런 분들을 생각할 때 더욱 힘이 나고 하나님께 그런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음에 감사하며 선교의 여정을 지내오게 하셨다. 믿어주고 함께 해주신 목사님들, 눈물로 기도해주신 권사님, 집사님들, 참 어려운 때에 힘이 되어주신 장로님들을 생각하면 나 혼자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함께 해 온 것이라는 확실한 자각이 든다.
선교는 협력으로 시작하고 협력으로 끝난다. 협력은 삼위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삼위의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우리와 협력하여 이루어가신다. 그렇기에 협력을 제외하면 선교를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홀로 계신 분 임에도 삼위로 존재하시고 그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 도전받은 하나님 나라 주권의 온전한 회복과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시는 일이 선교이다. 모든 것을 혼자서도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자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이 필요하셨고, 십자가의 죽음이 필요하셨고, 성령님의 오심이 필요하셨고, 가장 부족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제자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협력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을 말해준다. 선교의 모든 동역자는 이 점을 깊이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선교의 역사는 불편한 관계 가운데서 이루어진 수많은 영웅적 사건들을 모범적인 것처럼 잘못 그려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름다운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만큼 바람직하지는 못하다.
많은 영웅적인 선교사들의 전기는 잠든 영혼을 깨우고 나도 이렇게 쓰임 받고 싶다는 감동을 준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선교사들의 뒤에서 함께 영적 전투를 하며 물질을 보내서 후원하였던 이름 없는 성도들의 동역이다. 어느 선교사에게나 이런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그런 동역자들이 모인 교회였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였다고 말한다 (빌 1:3-4). 왜냐하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세워진 교회이다.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선교여행을 계속 나설 때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하였다. 당시는 교통의 불편과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몇 번 지원하다가 중단되었는데 감옥에 들어가 있는 소식을 듣고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서 바울의 감옥생활을 돕게 하였다. 그런 에바브로디도가 아파서 죽게 되었다가 조금 회복된 후에 빌립보교회로 돌려보내며 써준 편지가 빌립보서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선교의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관계의 형성이다.
첫째는 서로 기도하는 관계이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위하여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기쁨으로 간구하였으며,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서로를 위하여 간구하는 사이였다 (빌 1:19). 선교사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파송 선교사와 후원이나 협력선교사로 구분하고 있다. 교회에서 자랐거나 사역하며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선교비의 상당한 부분을 책임져주는 교회를 파송교회라고 하는 데 이런 관계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협력선교사라고 할 때는 교회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고 재정적으로 일정부분을 후원하겠다는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선교의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교사는 후원하는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기쁜 일이 생각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35년 이상을 선교사로 살아오면서 몇 교회들과 몇 분의 장로님들과 권사님, 집사님들을 생각하면 항상 감사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분들이 계셨다.
협력이 해답이고 협력은 관계이다
시카고의 트리니티신학교에서 목회학과 선교학을 공부하고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하이랜드장로교회에서 4년 동안 교회주일학교 전체와 특히 중고등학생들을 지도하는 전도사로 섬겨왔다. 본 교회에서는 우리가 선교사로 나갈 때까지 그 당시의 일반 교회처럼 선교사를 후원해본 적이 없었던 교회였다. 시카고의 북쪽 교외에서 조금 안정된 전문직을 가진 이민자들이 많은 교회였다. 점점 새로운 이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섞이는 발전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선교를 교회에서 가깝게 느낄 기회가 없었던 교회였다. 이런 교회가 어떻게 선교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나는 선교회를 선택하고 당시 조영익 담임목사님께 선교사로 파송 받기 위해서는 선교비를 모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조 목사님은 성도들을 위한 많은 봉사를 기꺼이 하셨고, 특히 노인들을 위해 헌신적인 섬김을 하신 분이었으나, 해외 선교에 대해서는 아직 열리지 않은 분이셨다. 내가 선교비도 준비되지 않고 선교사로 나간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시는 것 같은 목사님은 “그럼 우리 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지요”라고 물으셨다. 선교회를 통해서 나가면 일반 교단의 선교사처럼 선교회가 돈을 다 주는 것으로 알고 계셨던 것 같았다. 나는 “교회에서 가능하면 한 달에 300달러를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요청을 드렸다. 교회의 일반 재정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일반 재정에서 어려우시다면 저에게 성도들이 자원해서 선교헌금을 작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당회는 주일에 예배에서 설교하도록 허락하고 선교헌금을 작정하도록 도전할 기회를 주셨다. 당회는 월 300달러 이상이 작정 되면 그대로 후원을 하고, 그보다 적으면 교회의 일반 재정에서 채워 보내겠다고 결정하였다. 나는 주일에 설교하며 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선교사로 보내시는가 말씀드리고 선교비를 개인적으로 약정하여 주시길 부탁드렸다. 놀랍게도 약정액은 매월 300불을 넘어 성도들 모두 놀랐다. 교회는 약속대로 1차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6년 반 동안 매월 300달러 이상이 모금되어 전액을 후원하여 주셨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후원해주시던 시카고 하이랜드장로교회에는 교회의 정기후원 외에 개인적으로 후원을 해주시던 분이 있었다. 박순호 장로님은 의사로 섬기며 교회의 큰 책임을 지고 계신 분이었는데 우리 가정을 많이 사랑해주셨다. 필리핀에서 하루는 박 장로님 집이 불이 나서 많이 수리하기 위해서 호텔로 옮겨 생활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안타까워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달에도 빠짐없이 선교비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선교부 재정 보고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몇 년이 지나 선교지에서 힘들게 지낼 때 “우리가 필리핀으로 휴가를 갈 테니 함께 일주일 휴가로 생각하고 바닷가 호텔을 예약해주세요”라며 연락을 하셔서 온 가족의 휴가를 보내게 해주셨던 일들은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나는 많은 단기선교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런 단기 선교여행을 “어서오소 단기선교”라고 이름 지었다. 이런 장로님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진 것이다. 하이랜드교회에는 참으로 기도의 여전사가 계셨다. 박삼례 권사님이셨다. 우리가 파송 받은 후에 교회로 오신 분인데 파송 선교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우리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새벽과 철야기도를 통해 전적으로 기도하여 주신 박 권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얼마나 큰 힘을 얻는지 모른다. 이제는 천국에 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셨을 모습을 생각만 해도 힘이 난다. 나에게는 뉴욕에 친구 김 장로님 가족이 있다. 자주 만날 수도 없는 분이지만 우리가 뉴욕지역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집에서 지내도록 초청하신다. 힘들게 세탁업을 하시는데 오랫동안 한 교회가 후원하는 것보다 많은 재정적인 후원을 하시면서도 티를 낸 적이 없다. 나는 그 가정을 생각하면 기쁘고, 감사한다. 오늘까지도 우리들의 기도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기다린다(빌 1:6). 이것이 기도하는 관계, 복음에 참여하는 일이다. 참여한다는 헬라어 단어는 함께 코이노니아 한다는 말이다.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관계가 복음의 전진을 가져오게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하시며 떠나셨지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복음의 동역자들을 붙이셔서 함께 하게 하신다. 오늘도 내가 기도할 마음이 생기는 교회와 사람들이 있음이 동역의 기쁨을 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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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