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 느끼고 살아야 하는 선교사의 삶
임마누엘 감격으로 선교지 선택, 사역의 열매와 도전 이겨내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의도적으로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적인 죄에 빠지게 되면 영적으로 둔감해지며 민감성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죄책감을 가지지 못하게 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성령이 떠나셨다’라고 사울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선교사의 삶은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 선교사는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며 유럽의 길을 찾아간 바울의 경험을 구하며 살아가기 원한다. 선교사가 되겠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느 선교지로 가라고 하신다며 먼저 선교지를 정하고 훈련을 받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선교사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곳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밀려서 선교지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선교사는 가장 겸손하게 선교지로 이끄시는 주님의 인도를 구하여야 한다.
선교지의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감격이 날마다 새로울 때에 선교사역의 열매가 있으며 선교사역의 모든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를 찾을 때에는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구하며 살아왔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지 선택
선교지의 선택은 감정과 이성과 환경을 통하여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단체에서는 선교사 후보생들을 맞을 때에 선교지 선택이 어려울 때가 많다. 선교지를 미리 정하고 들어온 선교사 후보생을 만나서 어떻게 정하게 되었는지 물을 때에 그냥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선교지로 가라고 하셨다는 강한 느낌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한 선교사 후보생이 여러 가지 상황을 보았을 때에 적합한 선교지가 아니었지만 끝까지 그 선교지를 가겠다는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다. 첫 번째 임기인 4년이 지나기 전에 그 선교사는 선교지를 떠나겠다고 하였다. 그 때에 만나서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는지 물었을 때에 이번에도 하나님이 선교지가 여기가 아니라고 하신다는 말을 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많은 경우 이성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도 일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선교단체의 안내도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환경을 통한 선택
선교지 선택에 환경을 통한 인도하심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필리핀과 태국 두 나라를 1984년 단기선교로 사전에 방문하였다. 당시 미주한인교회는 단기선교를 보내지 않은 때였다. 나는 당시 태국에서 안식년으로 시카고 트리니티신학교에 오신 김정웅 선교사의 도움으로 필리핀과 태국에서 사역하는 한인 선교사들에게 연락하여 두 나라를 정하게 된 것이다. 이 때 두 나라를 두 달 동안 방문한 것은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는 지 확인하고자함이었다.
선교지를 방문하는 동안 복음을 듣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적은 선교사들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선교사로 부르시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두 나라 가운데 필리핀은 이미 카톨릭국가이며 태국이 선교사를 많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신학교로 돌아와 선교지를 태국으로 정하고 준비를 하였다.
3년 동안 신학교 목회학석사를 마치고, 선교학으로 신학석사를 마치며 준비를 하였고, 선교단체를 정하였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꿈에 태국사람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태국사람이 무슨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나는 태국말을 하지 못합니다”라며 태국어로 말을 했다. 그랬더니 태국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데 깨어났다. 일어나 나에게 말하는 것을 뜻은 알지 못하지만 마게도니아인이 바울을 부르는 환상처럼 생각해서 태국으로 사역지를 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선교단체를 선택하고 태국으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느껴졌고, 나는 태국과 태국 선교역사, 전략 등에 관해서 배우고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파송 받은 다음 네 살짜리와 한 살짜리 두 아들을 데리고 시카고 공항을 떠날 때에 우리는 어서 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꿈꾸며 아무런 주저 없이 떠날 수 있었다.
미주한인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내지 않았던 때인지라 선교비를 모금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웠고 불신가정에서 자란 나와 아내는 가족들의 지원마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떠나게 된 것이다. 선교단체에서는 한국교회와의 연관을 가지기 바래서 한국에 6개월을 머물며 하기선교대학원을 돕고 가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 들어간 우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기선교대학원의 수업기간동안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결국 태국에서 사역하던 우리 단체의 모든 선교사들이 선교회를 탈퇴하는 일이 일어났다. 나에게 한국 선교단체를 선택하도록 돕던 선배선교사들의 탈퇴는 나와 아내로 하여금 많은 혼란을 가져오게 하였다. 확신에 찬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알고 떠났던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 왜 이처럼 어려운 일을 허락하시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 가운데 하루하루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4차 아시아선교대회
선교사에게 선교단체를 선택하는 것은 결혼하는 것 같은 중대한 결단이다. 나는 왜 내가 하필 한국선교단체를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1987년 5월 14일 파송을 받았으니 미국으로 이민의 길을 떠난 지 9년 만에 목사안수를 받았고, 그 후 한달 후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목사가 될 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던 나의 길을 하나님은 너의 모든 꿈을 접어두고 나를 신뢰하고 따라보지 않겠는가 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목회학석사를 마치고 선교와 전도학으로 신학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던 나에게 아시아선교협의회(Asia Missions Association)에서 제4차 선교대회를 하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시카고에서 신학생으로 모든 것을 아끼며 수학하던 나에게 캘리포니아에 가서 방학동안 돕는다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으나 선교를 위해 일해 달라는 것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조동진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무실은 랄프 윈터 박사가 설립한 US Center for World Mission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머물게 되었다.
1986년 파사데나 대회장에서 개최된 제4차 아시아선교대회는 1973년부터 시작된 아시아교회들의 선교역량을 키우기 위한 조동진 목사와 랄프윈터 박사의 멋있는 합작품이었다. 또한 미국신학교에서 선교학을 전공하고 있던 나로 하여금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역사였다. 선교대회 동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지만 나에게는 비서구권 선교운동 (Non-Western Missions Movement)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처음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나도 미국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미국선교단체를 통하여 파송을 받고 서양선교사들 가운데 끼어있는 선교사로서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나의 미래라고 생각했었다.
선교대회를 섬기기 위해 학교를 한 학기 휴학을 할 만큼 나는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전적으로 헌신하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일년 동안 고민하며 기도하다 한국선교단체인 국제선교협력기구(Korea International Mission, 이하 KIM)를 선교단체로 선택하게된 것이다.
한국선교단체 선택 이유
첫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비서구권선교를 확장하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었다. 서구교회가 선교를 해온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나 이제는 비서구권교회들이 선교를 감당해야하는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이는 선교대회에서 간증을 한 에즈베리 신학교의 시맨드 박사와 역사의 흐름을 정리해준 랄프윈터 박사의 강의였다. 눈물을 흘리며 인도선교사 자녀로 태어나 인도선교사로 살아온 시맨드 박사가 인도사람들을 향해 “미안합니다. 나는 인도사람이 나와 같은 선교사가 될 수 있다고 아니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나는 선교는 우리 백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잘못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 아시아교회에서 해야 되는 때입니다”라는 간증이었다.
그리고 선교역사를 통해 명확하게 이제는 모든 나라의 교회들이 모든 족속에게 나가 선교를 해야 하는 시기라는 윈터 박사의 강의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름처럼 들렸다.
둘째는 한국교회가 마지막 시대에 선교를 감당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선교단체가 잘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선교의 국제화를 위해 나와 같이 미리 미국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선교사의 입문도 되지 않은 나에게 주어진 막연한 사명감은 나로 하여금 선교단체의 선택을 인도한 것이다.
내가 만나본 한국선교사님들은 초창기 파송된 선교사들로서 참으로 헌신된 좋은 분들이었다. 그러나 한결 같이 하는 말은 한국선교가 너무나 뒤떨어져있다, 우리가 서양선교로부터 많이 배워야한다, 서양단체들이 부럽다는 간접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선교사는 나에게 절대 한국선교단체를 통해 나오지 말라는 말까지 하였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한국선교단체를 통해 파송을 받아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02.26.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