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MC 사무총장, Ph.D)
복음전파의 우선순위
선물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가치가 평가된다. 선물 하나의 가치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가치는 상대적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힘든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선물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것은 복음전파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선물이 어떤 환경에서 가장 잘 수용되는지 수용성에 대한 조사도 가능하다면 사전에 필요하다. 받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수용성이 뛰어난 경우가 있다.
길거리에서 “Help Me”라고 종이에 써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사람들은 무엇을 주거나 먼저 받고 볼 것이다. 받고나서 그것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일 때는 고마워하지만 나쁜 것일 때에는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아무 것이라도 받는 경우는 필요가 극심한 환경이 되어있을 때이다. 자연재해나 인재로 인하여 가장 기본적인 것이 필요한 상황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황이 사람들의 심령을 가난하게 만들어 준비된 영혼들의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선교지가 그런 곳은 아니다. 복음전파 상황이 모두 이렇게 갈급한 영혼들로 가득하지는 않다. 가난한 심령이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찾아야 하는 복음전파의 우선순위는 또 다른 면이다.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좋은 때에 또한 조심해야할 것은 복음전파의 의도성과 삶의 기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려는 긴급 구호적 선한 행위에서 나타나는 생명존중에 대한 갈등이다.
복음전파와 긴급구호 필요성이 만날 때에는 더욱 지혜로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전파가 없는 긴급구호는 필요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것은 복음전파를 먼저 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필요를 보시고 치료하셨다. 긴급구호를 할 때에 복음전파의 조건부로 접근할 때에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무리 선한 뜻에서 구호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복음전도에 대한 의도적 행위는 후에 더 큰 반발을 가져올 수 있다.
복음전파 당위성과 상대 고려하는 일은 항상 긴장관계
창의적 접근과 함께 영적인 준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긴급구호의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접근하는 것도 지혜롭지 못하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아주 소수인 지역에서 그들에게만 구호품을 보급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반감을 가지게 하거나, 질투로 인하여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오히려 믿음의 공동체가 있을 때에는 그 공동체를 통해서 구호물자가 지역에 전달되도록 축복의 유통자가 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구호물품이 특히 기독교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것을 아는 불신자들은 자기의 것을 우선적으로 챙기지 않고 마을 공동체를 생각하고 섬기는 모습에서 진정한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긴급구호를 할 때에도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교회와 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지양해야할 부분이다. 이럴 때에는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게 하는 것이 복음전파의 문을 더 활짝 열어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재해로 부서진 교회의 벽을 수리하기 전에 마을회관의 벽을 먼저 고쳐주는 것은 오히려 복음전파의 길을 훨씬 더 활짝 여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한 것은 긴급구호의 상황에서도 복음전파를 앞장세우거나 조건으로 제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복음전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행동 자체가 사랑에 근거한 믿는 사람들의 본질이다. 비록 직접적인 복음전파의 기회가 없다고 하더라도 돕도록 힘써야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신앙에 기초한 전문기구들이 필요하다.
구호전문단체의 유익
각국에서 국가적으로 운영하는 단체들, 미국의 USAID, 한국의 KOICA, 일본의 JAICA 등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기독교 기구들의 필요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기독교에 기반을 둔 대형구호단체가 가지고 있는 복음전파의 한계가 더욱 드러나기 때문에 중형의 신앙에 기초하고 운영되는 구호단체가 전략적으로 필요하다.
교회는 구호에 전문성을 가진 기독교기구이면서 선교적 전략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단체를 지원하고 키울 필요가 있다.
남가주의 한 교회에서 상당한 금액의 구호헌금을 모았다. 전문적으로 재해지역을 잘 알고 일하는 기독교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과 방송에 드러나기 위해 영사관에 금액을 기증하였다. 그 이유는 한국정부가 당해국에 지원을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의 일부를 교회가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정부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을 미국에 있는 교회에서 함께 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거니와 영사관에 그것을 전달함으로 신임총영사와 담임목사의 면담을 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해당국가에서 받은 수많은 재정은 어느 곳으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당해국에서는 수년 동안 구호재정사용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었고, 부패로 인하여 재해지역은 아직도 복구가 안 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교회가 재정사용은 지혜롭게 하여야 하는 것을 보여준 예이다.
자연재해나 인재 같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복음전파의 기회이다. 기회가 왔을 때에 가능한 신속하게 사랑의 손길을 펼칠 필요가 있다. 필리핀의 태풍피해가 극심한 때에 피해지역의 사람들에게 긴급구호 하는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물이 너무 중요하여 물과 아주 기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공중에서 낙하시켜서 긴급구호를 하였고, 다음에 육상으로 길이 겨우 열렸을 때에 조금 더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때에 여러 나라에서 구호품들이 도착했는데 중국에서 들어온 텐트가 먼저 도착해서 사람들이 중국국기가 찍힌 텐트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더니 미국에서 보급된 텐트로 하나하나 바뀌어가는 것을 보았다. 중국제 텐트가 너무나 덥고 조잡해서 미국에서 보급하는 것으로 바꾸었다는 얘기였다. 급할 때에는 아무 것이라도 받는 것 같지만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더 좋은 것을 찾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진 기본적인 성향인 것이다.
복음은 질이 가장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질을 느끼고 경험하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져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반응이 좋은 선교지에서 이단종파의 전도행위가 극심한 현상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더욱 열심을 내서 의도적으로 지혜롭게 복음전파를 해야 한다. 열심을 내야 할 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전파의 의도성
의도적이란 나의 일반적 관심 영역 밖에 있는 것으로 향한 열심을 가져야 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일부러 찾으신 것을 요한복음 4장은 “사마리아로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라는 의도성을 말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마리아를 일부러 피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찾으신 것이다. 이런 의도성이 선교에 필요하다. 특히 팬데믹으로 막혀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의도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방법은 지혜로워야 한다. 무조건 쳐들어가듯 상대를 무시한 공격적 선포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경계심과 심지어는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모슬렘지역에서 공격적 선교의 모습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다. 단기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빠져나가는 단기선교팀들의 폐해에 대해 장기선교사들의 불만이 큰 것도 이런 것이다. 잠깐 복음을 선포하고 돌아갈 때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무엇인가를 이룬 것 같은 느낌으로 큰 보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선교사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 장기적 영향을 고려하여 행동하여야 할 것이다.
2020년 1월에 중앙아시아 K국에 모슬렘들 사이에 영상이 하나 떠돌며 전국적인 이슈가 될 뻔한 일이 있었다. 단기팀으로 방문한 어머니들과 어린 아이들이 초등학교 앞에서 태권도 폼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관전하던 누군가가 촬영하여 모슬렘지도자들에게 고발을 한 것이다. 모슬렘들은 이 영상에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경고를 덧붙여 이곳저곳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었지만 분명하게 모슬렘들에게는 위협으로 여겨질 만한 행동이었다. 여기저기 떠도는 영상으로 인하여 모슬렘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잘못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현지 기독교인들 사이에 떠돌기 시작하고 장기거주 선교사들에게 문제로 드러나게 되었다.
다행히도 코로나가 중국에서 그 나라로 전파되기 시작하고 국경을 폐쇄하는 조치 등 팬데믹이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묻혀버렸지만 이런 행동은 지혜롭지 못하고 오히려 장기선교를 막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항상 복음전파의 당위성과 상대를 고려하는 일은 긴장관계에 있다. 그 누구도 복음이 전파될 때에 저항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복음전파는 끊임없이 창의적 접근과 함께 영적인 준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야 하겠지만 영적인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나가야 한다.
02.12.2022
dr.yong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