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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선교의 선순환 (virtuous cycle) (2)

조용중 선교사

 (KWMC 사무총장, Ph.D)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살아가는 요즈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눈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의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인 눈 화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안과를 찾아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마스크를 쓰고 보는 사람과 마스크를 벗고 달라진 인상의 차이가 두드러진 사람들을 경쟁하듯 보여주는 컨테스트도 있다고 한다. 사람을 한쪽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눈과 얼굴의 모든 부분을 합쳐서 보아야 제대로 그 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를 여러 면에서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하는 것도 같은 것이다.  

 

선교는 종합적으로 보아야

 

선교는 한부분이 아닌 전체를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보이는 것은 선교사 자신이다. 선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복음으로 인하여 거듭난 체험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어떤 변화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확실하게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고 태어나면서부터 예수님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변화를 체험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 수 없는 것이다. 선교사의 거듭남과 그로 말미암은 삶의 변화가 가장 기본적인 선교의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지에서는 선교사의 삶을 통해 예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복음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스며드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같은 비접촉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는 선교 상황에서도 선교사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이다. 

바울은 내가 여러분들과 함께 지낼 때에 어떤 사람이 된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라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듯이 선교사는 자기를 만난 선교지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메시지와 메신저가 함께 드러나는 것이 선교인 것이다. 

 

배달자의 신뢰 쌓기 우선

 

선교지에서 복음전파는 배달자의 신뢰 쌓기가 우선이다. 믿을만한 사람이 전해주어야 받는 순서가 된다. 흔하게 배달되어온 택배물건을 받는 것이 아니다. 전해주고 떠난 사람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내용물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택배서비스로 모르는 사람에게서 어떤 물건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것이 누구에게서 온 것이며 나에게 분명하게 배달된 것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내 이름으로 온 것이라면 조심스럽게 열어볼 것이다. 내 이름이 아닌 누군가에게 온 것이라면 바로 돌려보내거나 수취거절을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메시지만 전해지면 그만이지 라고 말한다. 아니다. 내용물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전해준 사람이 의심스럽다면 함부로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편물을 의심하지 않고 받는 것은 우편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나 운송회사를 믿고 받는 것이다. 

미국에서 911 이후에 우편물에 독극물 탄저균 테러로 20여명이 피해를 입은 일이 있었다. 당시에 어떤 사람도 발신자가 확실하지 않은 물건을 의심하지 않고 그냥 받아서 열어본 사람들이 없었다. 이처럼 위협적인 일이 공적으로 경고가 되면 특히 그렇다. 

선교지에서 전해지는 것은 믿을만한 제도가 인정되어진 곳이 아니라 가장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는 배달원이 확실하게 믿을만할 때에 전달되는 물건을 믿고 받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달자의 신뢰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선교는 종합적으로,,,신뢰 쌓기와 관계형성 중요 
선교사가 복음 자체, 선교사의 삶에서 보여져야

 

신뢰는 쌓여져 가는 것

 

신뢰는 쌓여져 가는 것이지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일생을 바치거나 대를 이어 살아가는 것도 신뢰가 오랜 시간동안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특성을 타나내는 말 가운데 하나는 “utang na loob” 이다. “마음의 빚”을 가진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큰 은혜를 입었을 때에 나는 마음의 빚을 가지고 평생 이 빚을 갚겠다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상대의 잘못된 것을 보고도 모른 체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관계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은혜를 입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에 신뢰도는 신속하게 높아진다. 

신뢰는 작은 것부터 믿을 수 있게 될 때에 큰 것도 믿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작은 일부터 믿을 수 없는 관계에서 신뢰는 형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교사의 삶에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에 이르기 까지 모든 면이 중요한 것이다. 

선교사가 현지인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으로 신뢰를 쌓으려 해서는 안 된다. 때로 선교사들 가운데 현지인을 도와주었는데 왜 나를 배반하는가 라며 큰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다. 선교사는 현지 동역자를 재정적으로 도와주고 함께 일을 했는데 왜 나를 떠나서 다른 사람에게 갔거나 나를 배반한다고 느낄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잘 생각해야 할 것은 나와 그 현지인이 어떻게 주고받는 관계였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한 일에 당연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이다. 

만일 현지인이 느낄 때에 선교사는 내가 필요했고, 나는 선교사가 제공하는 물질이 필요했던 거래관계(contract relationship)였다면 언제라도 거래가 끝나면 헤어질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선교사가 생각하는 인간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배반이 아니라 거래관계의 끝인 것이다. 

그렇다면 거래관계가 아니라 인간관계는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그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상대를 한사람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만나는 것부터 시작된다. 

선교사는 현지의 어려운 사람들을 만날 때에 가장 먼저 그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이며, 예수그리스도가 이들을 위해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그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나를 만나는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낸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만날 수 있을 때에 선교는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보내진 사람을 만나는 시간 선교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 된다. 이런 관계가 시작되고 지속될 때에 신뢰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계형성에 힘 들여야

 

선교사는 지도력개발이라는 프로그램보다 관계형성에 힘을 들여야 한다. 제자훈련이나 지도자훈련이 선교지에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지도력을 개발하는 것을 학교나 기관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 프로그램을 마치면 지도자가 만들어진다고 오해한다. 그래서 선교사는 자신이 받았던 교육프로그램을 선교지에서 복사판을 만들어 책임자로서 다양한 명칭을 가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물론 훌륭한 학교를 세우기도 하고 아름다운 많은 열매들을 맺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른 선교사가 하니까 나도 한다 라는 “나도신학교”가 설립되거나, 아는 것이 그것뿐이니 만들어지는 “프랜차이즈 프로그램”이 많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왜 그런가? 이것은 지도력개발의 기본적인 오해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현재와 같이 난무하는 신학교 시스템에서 바른 사역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부족한 시스템이 선교지로 옮겨진 상황에서는 더욱 적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을 부족하게 만들어준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놓은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제자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만 제품처럼 만들어지고 마는 것을 우리는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에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하자”라고 말하시지 않고 삶을 통해서 관계를 맺으며 제자들의 모델이 되어주셨던 것처럼 선교사도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말하지 않고 제자훈련을 살아가는 관계개발이 중요한 이유이다.        

선교지는 선교사의 삶에서 복음을 읽는다. 선교사가 복음 자체로 보여진다. 선교사가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 선교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선교사가 만들어질 교회가 있어야 하고 그런 선교사가 훈련되어야할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선교의 선순환은 한 곳에서 시작되어진다.  

dr.yongcho@gmail.com

0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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