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까 싶다. 그러나 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가봐야지 하면서 가지 못하다가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 곳은 성경에 기록된 삼관(행28;15)이라는 장소다. 그 곳은 성경에 기록된 곳으로 로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다. 사도바울은 로마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의도였다. 바울은 나폴리 근교의 보디올 항구에 하선하여 기다리던 형제들의 초청을 받아 한 주간을 보낸 후 (행28;14) 아피아 군사도로로 로마를 향해 150여Km를 갔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아마도 수일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드디어 바울은 로마까지 50여Km 정도 떨어진 삼관에 도착하게 되었다. 삼관이란 여행객들을 위해 아피아 가도에 지어진 세 개의 펜션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로마 교우들이 바울을 만나기 위해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바울이었지만 이미 서신으로 받아 본 로마서로 바울의 사도됨과 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를 만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들로 인해 바울은 큰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었다. (행28;15).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아피아 길 바로 옆에 있는 호텔(Foro Appio Mansio hotel)에 들어갔더니 내부가 로마시대의 유물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그래서 혹 여기가 삼관인가 하여 물어보았더니 프런트에 있는 젊은 아가씨는 삼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이 길로 바울이 지나갔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그 호텔에서 로마 방향으로 30여 미터만 가면 길가에 비석이 있다고 한다. 그대로 했더니 정말로 길가에 오래된 비석이 쓸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글씨는 마모가 되어서 읽을 수 없었지만 이곳이 바울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사도 바울을 환영하기 위해 50여Km를 마중 나온 로마교인들, 그들이 서로를 확인한 후 요란하게 웃으며 양쪽 볼을 비벼대며 인사하던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 호탕한 웃음소리는 메아리쳐 지금도 이 주변을 맴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길은 내가 나폴리에 있는 미군 부인들인 한국인 자매들의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15년 동안을 수백 번 지나갔던 바로 그 아피아(Appia) 길이었다. 그런데도 알지 못하고 이 길을 나는 지나다녔다. 안다는 것은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라티나의 넓은 들녘으로 로마시민들에게 온갖 싱싱한 야채를 공급하는 생산지다. 지금도 아피아 양쪽으로 넓은 들이 형성되어있다. 들녘이 끝나는 곳은 산으로 둘려있다. 2천년 전 바울도 내가 지금 바라보는 산이나 푸르른 들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과연 바울은 이 지역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에 또 한사람의 족적이 심겨져있었다. 중세의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4-1274)다.
그는 교황의 명을 받아 불란서의 주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 길을 지나가 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그는 방대한 지식을 지녔던 석학으로 신학대전을 쓰던 중 하나님을 만났다. 그 광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자신의 일천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논한다는 것이 너무나 송구스러워서 붓을 꺾어버렸다. 그래서 그의 신학대전은 미완성이 되고 말았다.
한 사람의 남겨진 족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고 무심하게 흘려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보는 것과 또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바울을 환영했던 이천년 전에 존재했던 세 개의 호텔. 하나님의 위대한 종을 품었던 호텔 터는 지금 빈자리가 되어 우리부부를 맞이한다. 너는 이 터 위에 어떤 집을 짓겠느냐고 질문하는 듯하다. 그 땅에서 반질반질하게 닳은 검은 돌 하나를 집었다. 바울이 디뎠을 지도 모르는 돌 조각을 말이다. 나는 과연 어떤 자국을 이 땅 위에 남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