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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박해한 로마의 황제(3)-트라야누스황제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교회 가까이에 로마시내로 연결되어있는 높은 담이 둘러쳐있다. 보통 10-14미터 정도 되는 높이여서 마치 시내를 보호하기 위한 성벽 같은 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벽이 아니고 트라야누스 황제(Trajanus98-111)가 건설한 수로다. 로마사람들은 일찍이 마시는 물이 사람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았기에 어디 좋은 물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을 끌어오는 일에 천재적 발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노력들의 잔재가 지금은 유적으로 남겨져 후손들에게 짭짤한 관광수익을 올려주고 있으니 선조들의 혜안이 아닌가 싶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로마의 열세 번째 황제다. 그는 히스파니아 출신의 이태리인으로 게르만 지역을 방위하는 사령관이었는데 선임황제였던 네르바황제가 자식이 없었기에 그를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았다. 자식이 없을 때 똑똑한 지도자를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삼는 일은 21세기에 생각해도 아주 탁월한 발상이 아닐 수 없지 싶다. 그런 식으로 황제가 된 사람들이 모두 뛰어난 황제가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트라야누스황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로마의 오현제(五賢帝) 중 한 사람으로 탁월한 황제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황제가 된 후 죽을 때까지 전쟁터만을 종횡무진 누빈 사람이었다. 내내 자신의 궁을 비우고도 그토록 원로원과 백성들의 인정받는 황제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는 로마의 어떤 황제보다도 국토를 넓힌 황제가 되었다. 마치도 우리나라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처럼 말이다.

목회자들이 안식년을 가지는 것이 누구에게나 소망이겠지만 자리를 비울 때 나타날 불안한 현상 때문에 행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 심지어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는 안식년을 보내고 돌아왔더니 이미 다른 목회자가 교회를 맡아 사역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 황당함이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안식년을 원하는 분들은 트라야누스황제의 정치력을 배워야 되지 않을 까 싶다. 그는 재위 내내 로마에 있는 왕궁을 비웠으니 말이다. 그처럼 원로원과 백성들로부터 칭찬과 존경(Optimus princeps 최고의 감독칭호 받음)을 받았던 황제였건만 이상하게 기독교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로 기독교도는 많은 핍박을 당해야 되었다. 그는 무력으로 다키아(오늘날 루마니아)를 정복하여 원로원의 큰 박수를 받았다. 무력을 믿는 자는 모든 것을 무력으로 행하려는 특성이 있는 법이다.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로서 기독교를 볼 때 그것은 너무나 시시한 대상이었지 싶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했던 정복지의 예수 그리스도, 그를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이 황제에게는 아주 우습게 비쳐지는 사건이었다. 고로 비두니아의 총독이었던 젊은 플리니(AD 61-112, Gaius Plinius, 정치가 문필가 철학자 법학자)에게 트라야누스황제는 기독교인들이 고발을 받게 되면 심문을 하고, 신앙을 부인하면 방면하고 시인하면 사형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는 당시 안디옥교회의 3대 감독으로 있었던 익나티우스(Ignatius AD30-108)를 죽였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로 40년간을 안디옥의 감독으로 재임한 명망 높은 지도자였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무릎에 앉히고 축복하셨던 어린이가 바로 익나티우스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고발된 익나티우스를 직접 신문하였다. 익나티우스는 당당히 황제의 면전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했고 그 결과 로마로 압송되었다. 그가 탄 배가 여러 곳을 정박하였는데 그 때마다 그를 보려는 사람들로 항구마다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로마 사람들에게 전한 편지가 남아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야생 동물의 먹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를 바랍니다. 야생동물의 이빨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수한 빵이 될 것입니다. 야생동물은 저의 무덤을 만들 것이고 나의 육체의 어떤 부분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쓰러질 때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열망합니다. 나를 하나님께 제물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결국 극심한 고문 끝에 많은 매를 맞았고, 기름적신 나무에 달려 화형을 받았다. 그리고 몸은 난도질을 당했고 결국 짐승들에게 던져져 먹이가 되었다.

그 외에도 본도의 감독 포카스, 로마의 감독 알렉산더, 심포로사는 과부는 그의 일곱 아들과 함께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을 거부하여 순교를 당했다. 기독교에 핍박을 가한 트라야누스황제에 의해 성도들은 신앙의 진수를 테스트 받는 기회가 되었고, 이 시대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보존해야 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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