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서양의 이름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의 이름은 단순하게 짓는데 서양의 이름은 세례명이 있고 또는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이나 성공한 가문의 이름을 덧 붙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길고 동명이인도 많게 된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도 다른 레오나르도와의 혼용을 방지하기 위해 다 빈치(Da Vinci)라는 동네 이름을 첨가한 듯하다.
레오나르도, 그는 특별한 예술가였다. 데이비드 뱅크스라는 ‘천재 과잉의 문제’라는 논문에서 인류역사에서 나타났던 세 위대한 천재집단을 추려냈다. 기원전 440-380년의 아테네와 1440-1490년의 피렌체, 그리고 157-1640년의 런던을 뽑았고, 이 셋 중에서 가장 화려했고 풍부한 기록을 남긴 곳이 피렌체라고 했다. 당시 피렌체는 7만 정도의 인구를 가진 크지 않은 도시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다. 그런 도시에서 어떻게 그리 많은 천재가 짧은 기간에 우후죽순처럼 배출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신비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천재 중 한 사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어난 집을 알고 있다는 P의 안내로 그 곳을 방문했다. 그가 태어난 토스카나 지방은 낮은 구릉으로 구성되어있어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곳의 풍경을 담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태어난 빈치는 감람나무들로 둘러싸여있는 농촌의 작은 마을이다. 이스라엘의 감람산에는 수령이 이천년이 넘는 감람나무라고 소개하는데 이곳의 감람나무들도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나무들로 가득하다. 얼마나 감람나무가 많은지 가로수조차도 감람나무로 구성되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감람나무 가지들을 헤쳐 가며 구릉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어느 건물 하나가 오른편에 고즈넉하게 서있다. 그 건물이 바로 레오나르도가 출생한 곳이라고 한다. 다른 집은 없나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500여 미터 떨어진 저편 구릉에 한 채가 있을 정도로 이곳은 아주 외딴 곳이었다. .
그 건물을 보더니 동행한 전남 장성의 깊은 시골에서 왔다는 K는 말한다. “내 고향 시골보다도 더 한 곳이군요.” 이런 시골에서 그런 천재가 태어났으니 놀랍기만 하다. 아주 허술한 표정의 그 건물은 수리 중에 있는지 판자로 가려 놓은 모습이었다.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고 싶은 소녀처럼. 그리고 열네 살에 피렌체로 이주하여 베르끼오 공방에 들어갔고 28살 때부터 벌써 유명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땅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당대에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 고독하고 가난한 삶을 영위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서 레오나르도는 행복한 예술가다 싶다.
그의 대표작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그라치의 교회당(Santa Maria delle Grazie)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 그리고 밀라노의 성프랜치스코 성당에 있던 것을 팔아버려 현재 루불 박물관에 있는 암굴의 성모(Madonna of the rocks)와 모나리자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모나리자라고 평론가들은 꼽는다. 그는 대상의 내면이 없다면 그 그림은 죽은 그림이라고 했다. 그래서 언제나 표피적인 그림으로 만족하지 않고 대상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몸부림 쳤다. 그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의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받침대위에 올라가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며 종일 서 있곤 했다고 한다.
그는 그림의 윤곽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희미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창안했는데 그것을 스푸마토(sfumato)라고 한다. 이것은 석회를 바르고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 속으로 뒤섞여 들어가면서 형성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도록 희미한 윤곽선과 스며든 부드러운 색채의 조화로움으로 여운을 남기게 했다. 마치 모나리자의 눈과 입모습이 보는 이마다 해석을 달리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정황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의 그림은 무엇인가 딱딱한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는 대상이 살아있는 것 같고 영혼이 존재하는 것 같은 생생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 모나리자의 은은한 미소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는지 모른다. 그가 그린 그림의 중심인물에 대한 은은한 명암을 통해 그의 강조점이 느껴진다. 우리가 언제나 드높여야 할 그 분을 향한 신앙의 표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