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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영원한 길 아피아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지금 나는 모든 길의 여왕이라는 유서 깊은 아피아 안티카(Appia Antica)의 길을 걷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삶의 무게에 눌려 허덕이면서 지나간 길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삶의 고뇌를 각인하듯 마차 바퀴 자국들로 움푹 움푹 패여 있다. 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이웃과 관계를 갖는 중에 부산물로 생겨났지 싶다. 또는 다른 사람이 걸어간 발자국을 뒤좇아가다보니 한 사람 두 사람 그 길을 따라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반짝거리는 길이 생겨나기도 했을 것이고, 그 길을 통해 삶의 슬픔과 기쁨들이 물안개처럼 퍼져나가기도 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지자 좀 더 편리한 길, 좀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현대인들은 고속도로를 만들 기도했을 터! 그 당시 길을 만드는 열풍이 불었는지 동 시대에 많은 길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니, 이 모든 길의 길이는 8만km에 달하고 지선까지 합하면 15만km에 이른다니 그들은 길을 만드는 일에 얼마나 열광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기원전 312년에 감찰관이었던 아피우스(Appius Claudius)는 군사 및 행정효율을 위한 인프라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물을 끌어오는 수로와 군사 도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거대한 토목공사를 통해 고용창출도 기대할 수 있었기에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길을 만드는 일 때문에 그는 얼마나 많은 공격을 당해야 했는지 모른다.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 때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트럭 앞에서 드러누웠던 사람들처럼.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는 리더를 통해 인류는 항상 큰 빚을 지게 되는지 모른다.

그는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국토 남단인 카푸아( Capua)까지 군사도로를 만들었다. 폭 8m에 이르는 인류가 만든 첫 번째 고속도로가 아닌지 모르겠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길을 만들기 위해 우선 땅을 깊이 파고 배수구를 만들고 물이 잘 빠지도록 모래와 자갈을 깊이 깔고 그 위 포장을 널찍한 돌(내가 대강 재어보니 가로 3-40Cm, 세로 20-30Cm정도 되는 판판한 돌)을 깔았다. 특히 돌을 깔 때 빗물이 잘 빠지도록 길 중앙이 약간 돋아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아직도 마차 자국이 깊게 파인 길은 줄자로 재어보니 폭 4, 5m가 되었다.

마차 두 대가 비켜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행인들을 위해 양쪽에 인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길 양쪽으로는 개인적으로 만든 수많은 무덤들이 폐허가 된 채로 길손을 맞이하고 있다. 마치도 늦잠을 자다가 갑자기 방문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부스스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무덤들은 다양하다. 작은 무덤에서부터 성채와 같은 무덤들. 그들은 죽어서도 가문의 영광을 표출하려고 몸부림쳤던 오만함을 지금은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었다는 듯이 일그러진 잔해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의 영광은 별것 아니라는 듯 무너져 내린 대리석 조각들은 안쓰럽기만 하다.

남아 있는 묘지명을 보니 오비디우스,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 그 이름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이름을 길손에게 알리려고 몸부림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처연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아직도 마차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옛 길, 어떤 사람은 마차를 타고 어떤 사람은 말을 타고 어떤 이는 걸어서 갔을 것이다. 이 길을, 저들은 나름대로 이 길을 지나면서 자신의 자취를 보도에 남겨 놓았다.

나는 이 길에서 스팔타쿠스의 분노로 이글거리는 자취를 보기도 했고, 여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나폴리 만의 카프리(Capri) 섬에 있는 별장으로 달려가던 황제들의 마차소리를 듣기도 했다. 또는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들이 백마를 타고 이 길을 가면서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로마시민들의 환호를 받던 요란한 함성을 듣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죄수가 되어 벅찬 가슴으로 이 길을 걸어갔던 사도 바울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그들의 걸음들은 이 길 위에 편린들로 남겨졌다. 그 남겨진 선명한 자국들을 쓰다듬어 본다. 그리고 또렷한 자국을 만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국을 남기고 있는 걸까? 또는 어떤 길을 만들어가는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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