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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골프장에서 느낀 편린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수년전부터 건강과 골프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대 부분의 얘기가 골프의 유익성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국에서 학생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고, 또 아직은 내게는 부담이 가는 운동으로 여겨져서 골프를 하지 않고 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다른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교제라는 미명하에 친구들에 의해 골프장을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내게 골프는 경험도 일천하고 또 재미도 없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못해 친구들과 18홀을 도는 일은 고단하고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고 상대방의 친절을 수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 집회 후에 몇몇 친구와 골프를 예약해 놓았다고 하여 따라갔다. 토론토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남짓 달려가 경관 좋은 골프장에 들어갔다. 그 이름은 어릴 때 추억을 더듬어 보게 하는 Phesants run(꿩들이 나돌아 다니는 골프장). 나는 하라는 대로 하면서 연방 골프장 한편을 자리하고 있는 숲에 마음을 빼앗겼다. 수년전에 영국에 갔다가 아주 고급스런 골프장이라고 가서 골프를 친 경험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골프보다는 숲속에 널려있는 골프공을 줍는 재미가 쏠쏠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그런 재미를 향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골프장의 숲에는 골퍼들이 잃어버린 골프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 가난한 사람들이 골프를 치러왔기에 공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주의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누가 골프를 치다 잃어버렸고, 그래서 자신을 찾아주기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골프공을 찾는 즐거움을 여기서는 누릴 수가 없었다. 그 서운함이란....

일기 예보는 오늘 비가 온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비는 내리지 않아 친구들은 아주 잘됐다고 탄성을 지르는데 나는 속으로 비나 내리지 하는 심정이었으니.... 그래도 팀이 구성되어 좇아가야 하기에 흐름을 따라 가던 중에 숲속을 바라보던 중 울창하게 자리한 자작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느 작가가 쓴 글에 러시아의 숲에는 온통 자작나무들로 가득하다고 했는데 캐나다의 골프장에서 흰색으로 피부를 둘러싸고 있는 자작나무 군을 발견했다는 것은 내게는 충분히 쇼킹한 사건이었다.

이 자작나무로 인해 오늘 골프는 즐거운 운동이 되고 말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나무들인데 나는 육십이 넘어서야 이 나무를 눈이 열려 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인가 싶다. 그런데 지금 사월 중순인데도 추위를 벗어나지 못한 나무들은 앙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치부들을 완전하게 들어내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 표정이 얼마 전까지 높은 지위에 있던 어르신이 부정에 연루되어 손에 수갑을 차고 체념한 모습으로 기자들이 아귀다툼으로 찍어대는 카메라의 플래시에 망연히 서있는 모습 같다.

어쩌면 늙고 병든 우리네 모습 같기도 하고.... 그 처연한 모습이 늙어가는 자연적인 현상을 골프라는 운동으로 지연시켜보려는 몸짓으로 보임은 웬일일까? ‘늙어서 제일 좋은 운동은 골프야, 드넓은 필드를 걷게 되니 좋고, 그 푸른 잔디를 밝게 되니 건강에 최고지, 거기에다 팔을 휘두르게 되니 금상첨화지.’

그런데 건강, 건강, 좀 더 오래 살려는 몸부림은 한편으로는 주님 예비하신 세계를 가지 않으려는 발버둥은 아닐까하는 방정 받은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주님, 저는 천국보다 이 세상이 너무 좋습니다. 그러니 오라는 말씀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라는 몸부림은 혹 아닐까? 아무튼 엄청난 것을 이룬 분들마다 그 많은 것 놓아두고 떠나기가 퍽 어렵겠다 싶어진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개척교회 만세다 싶다. 언제나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야말로 영적으로 큰 복이지 싶다. 주님, 오라하시면 미련 없이 가겠습니다 한다면 축복일까? 저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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