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목양칼럼

아름다움에 대한 관찰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바(Bar)는 카페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태리에서는 보통 아침을 바(Bar)에서 간단히 해결한다. 출근하여 사무실 주변에 있는 바(Bar)에서 카푸치노(Cappuccino) 한잔과 꼬르넷또(Cornetto)로 아침을 대신한다. 맞벌이하는 상황에서 아내를 위한 배려로 생겨난 문화인지 모른다. 그런데 왜 오늘 따라 바(Bar)가 사람들로 이처럼 북적이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히 풀렸다. 바(Bar)에서 카페를 서빙하는 아리따운 아가씨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일로 바는 손님들로 차고 넘치고 있다. 로마에서는 이런 일상적인 부분에 친절이란 찾아보기 어려운 곳인데, 예쁜 아가씨의 친절이 사람들로 북적이게 만든 것이었다.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것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죄를 범하고 법정에 설 때, 판사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적은 형량을 부여한다는 신문기사의 글을 읽은 일이 있다. 입사할 때의 면접시험에서도 아름답다는 이유로 큰 유익을 얻기도 하고.

아무튼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마음이 즐거워지니 이해가 된다. 그래서 너도나도 아름다움을 창출하기 위해 사람들은 몸부림치게 되지 싶다. 이런 이유로 성형외과는 손님들로 북적이게 되고 또한 이런 시류에 편승하여 의대에서도 성형외과는 큰 인기를 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균등 내지는 질서가 아니겠나 싶다. 흔히 아름다운 여인을 향해 팔등신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리스의 리시포스가 발전시킨 신체의 밸런스를 측정한 기준으로 머리 길이가 인체의 1/8일 때를 말하고 그 대표적 조각상으로는 밀로섬에서 발견한 비너스 상이다.

인체가 균형이 있다는 말은 인체의 비례가 탁월하다는 의미이겠다. 어느 한쪽이 불균형 일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플라티너스(Platinus, AD 204 이집트 출생-270 이태리 라티나 사망)는 인식의 자리에 미에 대하여 감지할 수 있는 독특한 질료가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아마도 미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만 주신 특질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음에 흡족해 하셨고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보시기에 좋았다는 의미는 당신의 지으신 창조 사역이 완벽했음을 의미한다. 완전하신 분이시기에 만드신 창조물이 완전하였고, 균등(조화)하셨음을 뜻한다. 이런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만든 작품에 만족할 수 없다. 언제나 미완성이다. 자신이 만든 작품에 흡족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안에 내재한 미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굉장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항상 미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목 말라한다. 우리가 보면 아름다운데도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은 수도 없이 완성품을 깨뜨려 버린다. 그리고 수많은 도자기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괜찮게 여겨지는 것 한두 개를 골라낸다. 수많은 여인들이 성형외과를 들락거린다고 한다. 정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들, 어느 한군데 손댈 데가 없을 미인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도 본인들은 자신의 미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분 부분을 고쳐 달라고 요구한다. 미에 대한 집착, 더 나은 미에 대한 본능적 욕망, 이것은 정말 끝이 없지 싶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외적인 미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미가 아닐까 싶다. 외적인 미는 수술로 만들어 질 수 있지만 내적인 미는 지성과 겸양으로 만들어진다. 그 마음 바탕을 정결함과 온유함으로 다스림 받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배어나지 싶다. 그런 여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은은한 아름다움, 그런 아름다움에 목마른 세상이지 싶다. 그런 것을 찾기 힘드니 표피적 아름다움에도 목말라 저리도 북적이는 카페집의 사람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