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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은 사람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로마의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81-96)가 있습니다.

그는 네로 황제가 원로원에서 갑자기 축출됨으로 그의 근위대장으로 있던 중,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베스파스안(Vespasianus69-79)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장남인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티투스 황제의 친동생인 도미티아누스는 권력욕이 대단했습니다. 그의 형 디투스 황제가 일찍 죽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반란을 일으켜서라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 했을 거라고 역사가들은 언급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기독교인을 핍박했던 황제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인지 모르나 그에게는 대를 이을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촌 동생 클레멘트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황제의 사촌이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이름이 클레멘트라는 사실 때문에 다양한 추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데오빌로 각하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낸다고 한바, 이 데오빌로가 혹 황실의 가족의 일원이었던 클레멘트가 아닐까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또는 빌립보에서 바울이 글레멘드를 언급한바 그 사람이 아닐 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간극이 크다는 이유로 동명이인으로 파악합니다.

그런데 클레멘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황제의 양자로 보냈기에, 시간이 지나면 황제의 아비가 될 상황이었습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놀라운 권력의 기회를 붙잡게 된 사람입니다.

아들이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황제의 독재가 횡행하던 시대이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나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황제의 귀에 사촌 클레멘트가 기독교인이라는 소문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불러 확인을 하게 되었고, 로마 황실에서는 허락할 수 없는 일임을 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경고 한 마디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클레멘트는 자신의 신앙을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황제는 그의 아들이 장차 로마 황제가 될 처지인데, 전통적으로 로마의 황제는 그 자신이 신이라고 여겨 숭배하는 길을 포기하고, 근본도 없는 정복지의 종교를 믿는 다는 것은 로마 황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설득을 하였으나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황제의 청을 거절하게 되면, 양자로 들인 것도 파양하게 되고, 본인도 황제의 명을 거스르는 일로 목 베임을 당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클레멘트이었지만, 신앙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쯤 되니 오히려 황제가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분노를 표출하게 되면 원로원의 비웃음을 당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황제는 많은 고민 후, 결단하였습니다.

즉 클레멘트는 사형에 처하고, 양자로 들인 조카는 파양하였고, 제부는 로마에서 멀지 않은 벤토테네(Ventotene) 섬으로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습니다.

무엇이 클레멘트로 하여금 세상적으로 찬란하고 영화로운 길을 포기하도록 하였을까요?

그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로부터 복음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받은 생명의 복음은 너무나 귀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영생을 얻기를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황실에서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화려한 연회보다도 말입니다.

콜로세움에서 일어나는 검투사 경기의 열광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토록 귀한 것인데, 그 진가를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 앞에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습니다.

그 부활이 있기에 클레멘트는 찬란하게 보이는 이 세상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영원한 부활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chiesadiroma@daum.net

04.2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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