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한인교회
누가복음에서 우리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만나게 된다.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다고 했고,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린다고 했고, 웃는 자여, 너희는 애통하게 된다고 선언하셨다(눅 6;24-25).
이 말씀은 산상수훈인데, 누가는 마태와 조금 다른 시각으로 기록했다.
세상에서 부요한 사람, 배부른 사람, 웃을 수 있는 사람, 이들은 한 마디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자들은 대체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겪는 고난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된다. 강남에서 폭우로 인한 물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큰 시련을 겪었지만 부요한 자는 딴 세상의 얘기가 된다. 그들은 물난리와 상관없는 높고 튼튼한 집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배부른 사람이란, 부요하고 넉넉하여 맛집을 찾아다니며 비싸고 특별한 음식으로 배를 불리는 사람을 지칭할 수 있다. 특별한 날에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의 사람은 삶 자체가 거기에 모든 것을 맞추는 자를 의미한다. 한 끼에 상상할 수 없는 값을 지불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성경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처럼,
기업가를 안내한 한 교우에 의하면 로마에서 두 사람이 점심을 먹는데 보통 몇 천 유로를 지불했다고 한다. 포도주 한 병이 몇 천 유로인데 매끼 마다 찾았다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자들의 웃음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이 있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의 성공은 수많은 자들의 실패를 디딤돌로 삼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최고의 영웅 중에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시저를 꼽는다.
그는 전쟁의 귀재이었다. 특히 19세기의 영웅으로 일컫는 나폴레옹도 그를 늘 흠모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이저가 영웅의 칭호를 받기까지는 고올 족을 백만 명 이상을 죽여야 했다”고 영국의 역사가 기본은 말했다. 그가 영웅이라는 찬란한 관을 쓰기까지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피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에 호주의 커피 사업자가 이태리를 여행 중에 카페를 맛보고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맛에 대한 예민함이 있었는데 그 예민함이 카페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만의 카페를 만들었고 점점 카페 점을 늘리게 되었고, 한국에만 매장이 1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는 호주와 일본과 한국에서 지점을 점점 늘려가는 상황이라니 성공한 인생이다 싶다. 그러나 그의 성공을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성도라면 성공의 정상에서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한국에서 빠른 시간에 지점을 눈부시게 늘려가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그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카페 점을 정리하는 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헤아리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성도의 신분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성공하고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벌어 옥상에 올라가 큰 소리로 웃어젖히게 될 때,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라며,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이 있음을 인지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 프랜시스는 추운 겨울밤 밖에서 옷을 벗고 오들오들 떨면서 홈리스로 지내는 사람들의 처지에 동참했다고 한다.
이 시대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느 교회는 앉을 자리가 없지만 어느 교회는 찾아오는 사람의 기근을 당한다.
이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연약한 자를 향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의 마음을, 웃는 자는 우는 자의 마음을, 배부른 자는 배고픈 자의 마음을 말이다. 그런 것이 주님의 마음이요, 그를 따르는 자마다 그 마음을 배워 실천하라고 하신다. 언젠가는 빈손으로 그분 앞에 서야 하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탐욕 때문에……
chiesadiroma@daum.net
08.20.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