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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어릴 때 시골에 한 바보가 있었다. 그는 항상 누런 콧물이 코에 달려 있었고 헤설프게 웃고, 결코 화를 낼 줄 몰랐다. 아이들이 심심하면 그를 놀리고 해코지를 해도 그저 히죽거렸다. 그래서 누구나 그를 향해 “바보”라고 불렀다.

그런데 멀쩡한 지능을 가지고 바보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신학교 동기생 중 시골 전도사로 시무하는 나이 많은 분이 있었다. 전도사는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장로교에서는 규정상 신학을 마치고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고, 교회에 적을 둘 때 비로소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 후부터 세례나 성찬식을 인도할 수 있기에 전도사는 누구나 안수를 받으려고 했다. 그 전도사들 중에 기억나는 50대 후반의 바보 한 분이 있었다. 

그분의 간증이다. 작은 시골 교회에서 사역하는 데 교회의 기둥 집사가 주동이 되어 전도사에게 딴지를 자주 걸었다고 한다. 흔히, 설교가 시원찮다, 영력이 없다, 등등의 비판이다. 많지 않은 교인들인데 중진이 앞장서서 반대하게 될 때 분위기는 찬바람 부는 광야가 된다. 

전도사는 결국 그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다. 혼자 몸이 아니기에 전도사가 교회를 사임하는 일은 곤란한 문제가 야기된다. 더구나 다른 교회를 간극 없이 맡게 되는 것도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을 비판하는 자에 대한 원망이 클 수밖에 없다. 자칫 삶이 송두리째 뒤엎어지는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쫓아내는 일에 앞장선 집사의 형편이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기 전날 밤에, 은퇴금으로 받은 쌀 한 가마니를 지게에 짊어지고  몰래 자신을 쫓아낸 집사의 마루에 가져다놓았다. 그리고 이튿날 조용히 교회를 떠났다. 큰 바보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세상에는 깜짝 놀랄만한 영악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느 한 곳 빈틈이 없는 사람들, 공부를 많이 하여 똑똑함이 하늘을 찌르고, 똑 소리가 날 정도다. 그런데도 세상은 그들로 인해 밝아지고 맑아져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어둡고 10년 전보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이 훨씬 더 각박하다. 지식이 편만하고 배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데 세상은 왜 이럴까? 바보는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는데 살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배움이 많고 똑똑한 사람들은 그 지식을 통해 법망을 피해가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오히려 교묘하게 사술을 부리고 있다. 옛날에는 하나를 잡으면 다른 면은 양보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권력을 잡은 자가 돈도 탐한다. 이런 현상은 동 서양이 비슷하다. 선진국의 정치가들 중에도 빈손으로 시작했다가 큰 재산을 이룬 자들이 부지기수다.  

세상의 학문은 자꾸 영악한 사람이 되게 한다. 타인을 향한 바보, 국민을 위한 바보, 팔로워를 위한 바보의 길을 포기하도록 한다. 그 결과 세상은 모래알처럼 뭉치지 못하고 광야처럼 흙바람만 몰아치게 한다. 이런 삭막한 세상인데도 바보들은 있다. 나는 살만큼 살았다고 부족한 산소 호흡기를 젊은이에게 양보하고 죽는 바보도 있다.

16세기에 불란서의 위그노들은 말씀대로 산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여자들에게는 개종하겠다는 표현만으로 회복시켜주었는데, 체포된 젖먹이를 둔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간단한 표시만으로 살 수 있었는데 신앙을 양보하지 않았다. 화형당하기 전 여인은 집행관에게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젖 먹일 시간을 주세요.” 아이에게 젖을 먹인 후 “이 아이를 부탁합니다!” 하고는 미련 없이 화형대의 계단으로 올라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이 시대는 성공한 사람에 대한 얘기보다 바보의 길을 택한 사람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

“바보,” 그 명사가 왜 이처럼 그리워지는가!

 

chiesadiroma@daum.net

05.0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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