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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읽는 바울의 생애 ➇ 최초 선교지 구브로

강태광 목사

 (시인, 칼럼니스트)

           World Share USA 대표

인류 최초로 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는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의 리더였고, 안디옥교회의 리더였습니다. 바나바의 고향이 구브로입니다. 그의 존재를 알리는 사도행전 4장에서 바나바의 고향이 구브로임을 밝힙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고향 구브로를 향한 사랑을 숨기지 않습니다. 바나바의 생애 그리고 기독교 선교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구브로를 살펴봅니다. 

기독교 역사의 첫 선교사들의 첫 선교지가 구브로였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 첫 해외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조력자 마가 요한이 안디옥을 떠나 첫 선교지로 방문한 곳이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입니다(행4:36). 안디옥교회가 파송한 이 선교팀은 초반에 당시 최 연장자인 바나바가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바나바가 자신의 고향에서 선교를 제안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에 있는 섬입니다. 시칠리아, 사르데냐 다음으로 지중해에서 세 번째 큰 섬입니다. 터키 아나톨리아 남쪽에 자리 잡은 구브로는 지리상으로는 서남아시아로 분류되지만 유럽에 가까이 있어서 유럽처럼 느껴집니다. 구브로는 북쪽으로는 터키, 동쪽으로는 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 서쪽으로는 그리스, 남쪽으로는 이집트와 접하고 있어 고대 제국들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습니다.

구브로의 역사는 선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비너스라고 불리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고향이 구브로입니다.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가 전쟁의 신 아레스의 광장이라는 의미인데 그 전쟁의 신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사랑을 나눕니다. 이외에도 구브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몇 차례 등장합니다. 

또 스토아철학의 창시자인 제논이 구브로 출신입니다. 구브로 무역상 아들이었던 제논이 아테네에 이주해서 철학을 공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양 문학의 원조인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구브로가 등장합니다. 이런 고전들에 구브로가 등장하는 것이 구브로의 오래된 역사를 말합니다.

구브로는 성경에서도 구약부터 등장합니다. 구약의 ‘깃딤’(창10:4, 민24:24, 대상1:7, 사23;1, 12, 렘2:10, 겔27:6, 단11:30)이 구브로입니다. ‘깃딤’은 ‘괴롭게 하다’란 의미의 히브리어의 킷티에서 온 말로 과거 이 섬이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을 때 구브로에 있던 도시인 키티온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신약에서는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행4:36)이었고, 바울과 동행했던 바울의 제자 나손의 고향(행21:16)이었습니다.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구브로는 여러 제국의 지배를 계속 받습니다. BC 707부터 669년까지 구브로가 앗수르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BC 570년에서 545년까지 애굽의 지배를 받습니다. BC 333년에는 알렉산더 대제가 지배하고 BC 57년에 로마에 점령되고 로마의 지배를 받습니다. 

바울 시대에 구브로는 로마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황제령이었으나 후에 원로원에 소속되어 대리총독으로 불리는 집정관이 다스렸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했던 서기오 바울이 대리총독이었습니다. 서기오가 바나바와 바울 선교의 첫 열매였습니다. 기독교 첫 선교사들의 첫 선교 열매가 첫 선교지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입니다.

 

동역자 바나바의 고향이며 안디옥교회 첫 해외선교지

총독 서기오 바울이 첫 열매...나사로기념교회도 있어

 

이 구브로 섬은 제주도의 5배가 되는 대형 섬입니다. 구브로의 영어 발음은 사이프러스 혹은 키프러스(Cyprus)인데, 우리에게 친숙한 장소입니다. 2002년 1월부터 한국군 출신 최초 유엔군 평화유지군 사령관으로 황진하 장군(육사25기 중장, 전 국회의원)이 근무했던 곳입니다. 

구브로는 시리아 해안에서도 96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바울이 방문할 당시 구브로에는 여러 개의 유대인 회당(행13:5)이 있었습니다. 바울 당시 구브로에는 상당한 재력을 가진 다수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구브로가 주목받게 된 것은 구브로 출신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 지도자가 되면서부터입니다. 본명은 조셉인데 위로에 탁월했던 그에게 예루살렘교회가 바나바(위로자)라는 별명을 주었습니다. 권위자(勸慰者)라는 의미인 ‘바나바’는 기독교 교회사에 길이 빛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를 목회하다가 바울을 동역자로 초청합니다. 당시 상황으로 바울에게는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안디옥교회를 세웠고, 안디옥교회 선교사로 파송되어 고향 구브로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훗날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유대인 폭동 때 돌에 맞아 순교한 후 구브로에 묻혔고, 그의 무덤은 현재 구브로의 중요한 관광명소입니다. 또한 바나바를 기념하는 바나바수도원이 구브로에 아직도 운영 중입니다.

구브로에는 나사로의 무덤이 있습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무덤이 구브로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배를 타고 난파당한 후 기적적으로 구브로에 도착한 나사로는 30년간 구브로에서 선교하다가 소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사로기념교회가 구브로에 있어서 현재 중요한 관광명소입니다. 아울러 구브로에는 바울이 선교 중에 채찍에 맞은 것을 기념하는 교회(성공회)가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또 하나의 관광 명소입니다. 

chap1207@hotmail.com

07.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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