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 선교회)
미국의 IVY 대학교에 들어간 학생들 중에 첫해에 자살 비율이 꽤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만든 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최고로 공부 잘했거나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도 많이 받았는데 대학에 가니 날고뛰는 학생들에 둘러 쌓여서 자신의 평범함, 아니 때론 부족함으로 새로운 세계를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부모님의 자녀를 향한 거대한 기대도 한몫합니다. 좋은 대학 갔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는데 정작 자신은 그 기대에 못 미칠 것 같아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것입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는 절대로 공부 때문에 자살하지 않습니다. 공부로 앞서는 것이 자기 세계가 아니고 그 분야는 이미 일찌감치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도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그것을 살아가다가 도전을 받을 땐 못 견뎌 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인정받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자기 세계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다른 더 큰것을 보지 못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더 넓고 더 큰 세계에 도전을 받고 더 많은 것과 부딪혀봐야 발전이 있지만 그런 것에 관심이 없이 자신의 조그마한 세계에 함몰되어 살아갑니다. 인도네시아 시골에 살던 청년들이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시골에서 평생 무슬림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직장을 찾거나 공부하러 도시로 나왔을 때야 비로서 다른 세계를 보게되고 무슬림 움마 공동체에서 매일 얽매여 살던 삶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더 큰 꿈을 꾸면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이처럼 외부와 연결되고 새로운것을 보고 느낄 때 더 큰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매일 쳇바퀴 돌듯하는 일상이 다가 아니고 더 큰것을 볼수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삶에서 도전하는 일에서 실패 하셨나요? 실패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합니다.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실패 후 다시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계속되는 도전은 우리를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도록 만듭니다. 진짜 실패는 넘어진 후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고 지쳐서 그만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실패가 없으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빌립보 감옥 간수가 자살을 시도합니다. 자신이 평생 쌓아온 경력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그리고 좋은 간수로 인정받았는데 옥문이 열렸고 죄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옥문이 열렸지만 도망가지 않은 죄수들이 죽으려는 자신을 살리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습니다. 죄수가 오히려 간수를 생각한 것이고 도움을 준 것입니다. 아니, 간수는 그 이전부터 바울과 실라를 눈여겨봤습니다. 잡혀 온 이들이 억울하고 원망이 앞설 상황인데도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이것은 그가 여태껏 보아온 다른 죄수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처럼 세상과 다른 사람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간수가 바울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받는가?”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예수님을 통해서 열렸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더 큰것을 보고 달려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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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