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usa Pacific University교수)
다니엘 3장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이 일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3년간 궁중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생긴 일이다. 다니엘 2장에 보면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왕의 꿈에 본 큰 신상 중 순금으로 된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해석해주었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왕이 교만해진 걸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교만의 형태는 자신의 권력에 취하여 스스로를 높이거나 그러한 절대 권력에 아부하고 영합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높이 60규빗(1규빗이 대략 45cm이니 높이가 27m), 넓이 여섯 규빗(약 2.7m)이 되는 어마어마한 자신의 금 신상을 바벨론 두라 평원에 세웠고 이어 낙성식이 거행된다. 왕에게 앞 다투어 아첨하는 모든 무리들이 참석하였는데 다니엘 3:2에는 총독, 수령, 행정관, 모사, 재무관, 재판관, 법률가와 각 지방 모든 관원들이 그곳에 참석했다고 나온다. 그 행사를 위해 나팔, 피리, 수금, 삼현금, 양금, 생황, 모든 악기를 다 동원한(단3:5) 엄청난 행사가 열렸던 것! 그러나 어떤 연유인지 다니엘은 이곳에 없었고 세 친구들은 초대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듯이 세 친구들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본 바벨론 관리들이 직접 왕에게 이를 참소했다.
인류 역사상 시기와 질투는 사탄이 역사하는 통로이다. 다리오왕이 다니엘을 총리로 삼자 이를 시기한 사람들이 다니엘이 왕 이외 신에게 기도한다고 하여 그를 고소하고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게 한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이것은 또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을 따르지 않게 되자 이를 시기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책을 짜게 되는 유대 지도자들의 태도와 동일하다.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 왕은 매우 분노했지만 그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허락한다. 왕의 명령을 보자. ‘이제라도 너희가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지만, 절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다’(단3:14). 성경은 바벨론 사람들의 잔인성을 많이 기록하지만 그래도 왕은 경고와 함께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내가 너희를 풀무불 속에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단3:16). 과연 우리라면 이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다니엘을 통하여 한 가지 흐르는 공통적인 주제가 있다. 믿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풀무불 위협에 타협하고 싶은 생각이 그들이라고 없었을까? 앞날이 창창한 10대 후반의 그들에게 살고 싶은 욕망이 없었을까? 한번 고개 숙이지 않은 것으로 그들은 최선을 다했노라고 위안할 수 있었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왕의 두 번째 부탁인데 왕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 아무 권한도 능력도 없는 이방 젊은이, 나그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말한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단3:17). 왕이 그 어느 누구도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내지 못하리라는 왕의 말에 그들은 하나님이 능히 건져내실 거라고 응답한다. 더 나아가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을 한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겠습니다”(단3:18).
필자는 질문해본다. 무엇이 세 친구들에게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믿음의 결단을 하게 했을까? 바로 2장에서 비결이 나온다. 다니엘 2장에서 그들은 왕의 꿈과 해석을 하지 못할 경우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죽이겠다는 왕의 명령을 들은 후에 그들은 다니엘과 함께 기도했고 그날 밤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의 꿈과 해석을 알려주셨다. 그들은 왕의 꿈을 통해 세상 문화의 유한성과 하나님 왕국의 무한성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결단했다. 아무리 바벨론 왕의 권세가 지금은 대단해도 일시적이며 곧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도래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기에 그들이 다른 선택을 할 여지는 없었다.
그러기에 필자는 I surrender all이라는 찬송을 좋아한다. 순종은 100%를 의미(all)한다. 99% 순종은 곧 순종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적당한 타협, 그럴듯한 자기변명을 그들은 하지 않았다. 과감히 풀무불을 그들은 선택했다. 설령 하나님이 그 순간에 역사하시지 않아도 그들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은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결국 풀무불에 던져졌고 왕은 놀랍게도 세 명이 불타지 않고 풀무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을 보았을 뿐 아니라 세 명 이외에 예수님(왕은 그의 모양이 신의 아들과 같다고 묘사했다)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100% 신뢰하는 것이 승리 비결
순종은 100% 의미...적당한 타협, 자기변명 없어
그들은 옷을 입고 결박당한 채로 풀무불에 던져졌는데 결박은 풀어졌으나 그들은 타지 않고 걸어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왕은 충격을 받았고 풀무 입구에 가서 그들에게 나오라고 말하게 된다. 그들이 나왔을 때 그들은 몸이 하나도 상하지 않고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되고 결국 왕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옳았다. 세 친구들의 믿음의 결단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풀무불 속에서 주님을 보내셔서 그들을 보호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결박을 풀어주셨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성경에는 6000가지가 넘는 하나님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의 위협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100%(they surrender all) 신뢰했다. 그것이 그들이 승리한 비결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약속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환경에 대한 적당한 타협, 문화에 휩쓸려 믿음이 점점 희박해져가는 오늘 우리에게 다니엘 세 친구들의 이야기는 큰 도전이 된다. 하나님을 약속을 확신하는 자에게는 문화보다, 권력보다, 이 세상의 호위호식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하며 믿음은 결코 세상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 풀무불속에서 보호하시고 결박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이 바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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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