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St. John’s UMC)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나처럼 한국에서 입시를 치루고 대학에 진학한 분들이라면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가 국어시험 문제로 어떻게 나오는지 모두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희망차고, 싱그러운 시를 온전히 음미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 시에 나오는 시인이 말하는 ‘손님’을 추측할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①시인이 사랑하는 여인 ②학문을 통해 얻은 진리 ③광복을 맞은 평화로운 세상 ➃시인을 감옥에서 석방시켜 줄 사람 ➄옥살이를 하는 동안 뵙지 못한 어머니.
이 문제와 답이 먼저 기억난다. 정답은 3번 조국의 광복이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있어도 나일론 교복에 땀이 줄줄 흐르던 고3 여름 청포도 문제를 풀며, 식탁위에 올린 반짝이는 은쟁반에 담아온 하얀 모시수건을 상상하며 잠시 시원했던 것 같다.
2021년 여름을 앞두고 온 세상이 마치 광복을 맞듯이 코로나가 끝난 새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하다. 백신접종이 많이 진행되자, CDC는 마스크 의무화도 많이 완화했다. 아직 미접종 자녀들이 많은 이때에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지만 이번 여름은 확실히 다른 세상이 올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다른 세상을 향한 마음이 시인의 마음처럼 온전히 기쁘고, 흥분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시인처럼 철저히 처절하게 준비된 마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세상을 함께 기대한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으로 우리는 한 마음, 한 동지가 된다. 이 동지애는 시련을 함께 이겨낸 자들로 서로를 더 존중하고, 사랑하며, 성숙함을 동반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많은 면에 노력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성경에서 ‘포도’와 ‘포도주’는 여러 말씀에 비유로, 기적으로, 선포로 사용되어 우리에게 은혜와 깨달음을 준다. 특별히 성찬예식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주님의 보혈을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안에 한 형제, 자매임을 나타낸다.
여름의 시작인 6월! 팬데믹으로 단절되었던 많은 모임과 만남이 교회 안과 밖에서 시작되는 이때, 주님의 보혈을 받은 자로서 은쟁반에 모시수건을 준비하는 섬김과 사랑의 마음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모든 손님들에게 청포도향기를 내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songjoungim@gmail.com
06.1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