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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26)

교회사가 가르친다!(13) - 교회 음악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교회 음악  

음악은 예배에 필수적 요소이다. 각 교회마다 예배의 활성화를 위해 음악과 연관된 인력과 경비를 많이 사용한다. 예배당에 그랜드피아노와 파이프오르간을 비치해놓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위해 노력한다. 교회의 주요멤버들이 속해있는 성가대는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지닌 공동체이다. 경우에 따라 지휘자와 반주자 그리고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사례비가 지불되기도 한다. 이전에는 악보를 무단 복사하여 사용하였지만 요즘은 저작권문제로 인해 성가대원의 숫자만큼 악보를 구입하고 있다. 

왜 이토록 교회마다 음악과 연관된 사항을 중시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성도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시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 드리는 그에게 찬양과 경배를 돌릴 때 크게 기뻐하신다. 음악은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다. 

교회가 음악사용을 중시하는 만큼 ‘전통적 교회음악’과 ‘현대적 교회음악’에 대한 견해차이로 인해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전통적 교회는 대부분 피아노, 오르간, 또는 오케스트라 반주를 사용하며 성가대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한다. 예배의 처음과 마지막의 주악, 대표기도를 마친 후의 송영, 그리고 설교 전 성가대의 대표찬양 등의 순서가 있다. 헌금시간에는 솔리스트의 찬앙이나 특별히 준비된 음악순서가 있다. 성도들은 2번에서 4번의 회중찬송을 부른다. 

전통적 교회는 선곡에 대해 민감하다. 모든 생각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세상음악과 달라야한다는 확신에 기초한다. 주로 클래식형식으로 작곡된 음악과 교회에서 사용되는 찬송가에 수록된 곡들과 선택한다. 특히 주일오전 ‘대예배’ 시간에는 복음송의 사용을 금지하고 박수를 포함하여 몸짓과 함께 찬양하는 행위를 삼간다.  

1990년대부터 새로운 형식의 예배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열린예배’ ‘젊은이예배’ ‘찬양예배’ ‘신바람예배’ ‘현대예배’ 또는 ‘컨템포러리예배’ 등 명칭이 다양하다. 대부분 긴 찬양시간,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 설교, 그리고 결단기도와 찬양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때부터 교회음악에 대한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전통적 악기가 사라지고 대신 전기기타, 전자오르간, 그리고 드럼 등이 포함된 찬양밴드가 예배의 반주를 맡는다. 찬양단원들이 각자의 마이크를 사용하면, 본당 뒷면에서 음향을 담당하는 사역자가 전체소리를 조정한다. 본당뒷면에 설치된 영상화면에 미리 준비한 가사를 실시간 띄우는 사역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전통적 예배에 익숙한 성도들은 새로운 예배형식이 처음 등장하자 크게 당황했다. 특히 음악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익숙하던 잔잔한 악기와 달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악기와 목소리 그리고 드럼소리가 마치 소음과 같아 정신이 없다고 한탄했다. 사실 찬양단의 소리가 너무 커서 예배를 방해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적 음악에 대한 결정적인 불만은 바로 선곡이다. 새로운 형식의 예배에서는 간혹 찬송가도 부르지만, 현대적 감각의 박자와 음정을 지닌 복음송을 선곡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이런 종류의 음악은 예배에 절대로 사용될 수 없다고 확신하는 성도들이 제법 많다. 

 

거룩한 음악?  

1970년대 캠퍼스신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복음송이 교회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한 보수적 신학대학의 음악과 교수가 ‘복음송은 사탄의 음악’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후 복음송 사용에 관한 논쟁이 이어졌다. 보통 교회음악에 대한 전통적 관점은 ‘거룩’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거룩은 엄숙한 분위기이다. 생소한 곡에 맞추어 몸동작을 하며 찬양하는 모습이 결코 거룩하게 보이지 않았다. 예배자들이 자기만족을 위해 감정에 치우쳐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는 집중하지 않기에, 새로운 예배음악을 통해 결코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 돌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보수적 교회는 대부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또한 기타와 드럼과 같은 악기를 ‘술집용’이라고 지칭하며 교회당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대다수 교회가 현대식 음악을 서서히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주일예배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주일저녁 찬양예배 또는 수련회와 같은 집회에서는 불러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전문 찬양사역자들의 생겨났다. 이들이 만든 음반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유행곡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90년 중순부터는 주중 찬양집회에 젊은이들 몰려들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 안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현대식 음악을 선호하는 성도들이 많이 생겨났다. 현재는 어떠한가? 거의 모든 교회가 예배시간에 복음송을 부르고 있다. 보수적 교회들도 아예 교회당 앞면에 드럼을 비롯한 전자악기를 비치해놓고 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가? 거룩에 대한 기준변화가 생겼는가?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허용해준 것인가? 문화적 변화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로 이해하여야 하는가?

 

종교개혁과 음악

교회음악의 변화는 단지 한국교회에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서구교회도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나타날 때마다 반복하여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를 가장 중시하였다. 만인제사장직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기에 서둘러 자국민을 위해 독일어 성경번역을 마쳤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포함한 예술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예배시간에 교회성가대만 찬양을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모든 회중이 한 목소리로 합창찬송을 불러야 한다고 확신했다. 언어뿐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를 포함하여 여러 찬송을 직접 작사와 작곡하였다. 

회중찬송에 대한 그의 공헌은 1524년에 출판된 ‘첫 루터란 찬송집’에 잘 드러나 있다. 루터가 가톨릭사제에서 개신교 목사로 전향한 파울 스페라투스(1484-1551)와 함께 편집한 이 찬송집에는 루터의 곡 4편, 스페라루스가의 곡 3편, 그리고 미상자의 곡 1편 등 모두 8곡이 수록되었다. 찬송집 역시 교회개혁에 관한 루터의 글처럼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 결과 같은 해에 ‘두 번째 루터란 찬송집’이 출판되었는데, 전체 26곡 중 루터의 곡이 18편 수록되었다.  

루터에게 찬송가란 예배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각종 교회모임 외에도 집에서나 들에서, 혼자서 혹은 여럿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소중한 음악의 형태였다. 그는 찬송가에 개혁적 정신을 담아 힘과 용기를 주려면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당시 독일인들이 평상시 즐겨 부르는 생동감 있는 노래와 유사하게 작곡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신칭의 신학을 담은 찬송가의 가사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찬송집이 종교개혁을 급속히 확산되는데 기여하기를 고대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자들 중에 루터가 찬송가에 자신의 교리적 확신을 담아 사람들에게 찬양하게 한다고 비판하는 소리도 있었다. 

개혁자 요한 칼빈의 교회음악에 관한 관점은 루터와 근본적으로 유사했다. 예배시간에 회중이 직접 함께 찬송을 부르게 하였다. 제네바에서 사역하던 그가 1538년부터 3년간 스트라스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마틴 부처(1491-1551)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칼빈도 찬송가에 있어서 가사를 매우 중시하였는데, 루터와 달리 성경내용이 가사가 되어야 하며 이로서 시편 찬송만 불러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1541년에 제네바로 돌아와 불어로 된 ‘시편집’을 출판하였다. 시편찬송은 현재까지도 개혁교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또한 칼빈은 찬송음악이 지닌 예술성보다 찬양자의 신앙적 진정성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므로 음악 자체가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는 위험성에 대한 경계로 인해 예배시간에 악기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에서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던 오르간을 철거시켰다.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이 아닌 예배자의 감정이나 음악자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의 고백이었다.  

 

지속적인 갈등 

현재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찬송가에 수록된 곡들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작사가와 작곡가들의 연대가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가사를 살펴보면, 보수신학노선으로부터 자유신학의 다양한 형태가 혼합되어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클래식으로부터 전도 집회용 복음송까지 매우 다양하다. 또한 새로운 음악을 교회에 접목시킴으로 갈등과 분열을 초래했던 인물들의 작품들도 많이 수록되어있다.  

‘찬송시의 아버지’로 알려진 아이작 와츠(1674-1748)는 750개의 찬송시를 작사하였다. 그 중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십자가 군병 되어서’ 등 13곡이 찬송가에 담겨있다. 그는 시편찬송에 국한되었던 영국의 교회음악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신학적 주제들을 청중들이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로 표현하였다. 그 당시 회중교회는 그의 찬송을 환영하였지만 성공회와 장로교회는 그의 음악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는 알미니안주의를 옹호하는 목회자였다.  

그의 형 요한 웨슬리(1703-1791)와 함께 감리교를 창시한 찰스 웨슬리(1707-1788)는 찬송을 교리를 가르치는 도구로 인식하여 신학적인 주제를 담은 찬송시를 많이 작사하였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 등 13곡이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그 당시 부흥운동에서 참석자들의 회심과 헌신을 일으켰던 찬송을 예배시간에도 부르게 하였다. 부흥운동에 대하여 긍정과 부정적 견해로 갈라진 상황에서, 웨슬리의 찬송은 교회에 커다란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 역시 예정론 대신 만민구원론을 선택한 알미니안주의자였다.   

 아이라 데이비드 생키(1840-1908)는 ‘복음송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곡가이며 찬양사역자이다. 

<9면으로 계속>

 

<7면에서 계속>

그는 19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자로 손꼽히는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 D. L. 무디(1837-1899)와 거의 30년간 동역하였다. 지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를 지향했던 무디와 마찬가지로, 생키 역시 음악적 기교보다 간단한 복음의 메시지가 담긴 찬양이 회심과 헌신을 불러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대중성이 있는 음악에 집중하였다.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어려운 일 당할 때’ 등 모두 8곡이 찬송가에 수록되어있다. 생키가 출판한 복음성가집이 미국과 영국에서 불티나게 팔렸고, 복음송을 즐겨 듣고 부르는 인구가 대거 늘어났다. 물론 전통적 교회는 생키의 음악에 대해 냉담했다. 성경구절이나 신학적 내용이 담긴 가사 대신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서술하는 가사, 그리고 정교함이 사라진 감성위주 음악을 극렬히 거부하였던 것이다.  

생키 이후로 개인의 체험과 간증을 가사에 담은 복음송의 인기는 날로 더해갔다. 생후 6주 만에 실명한 뒤 평생 장애를 안고 살면서 많은 아름다운 신앙시를 많이 남겼던 패니 제인 크로스비(1820-1915)를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존 스위니, 윌리엄 도앤, 로버트 로우리 등 유명한 복음송 작곡가들이 그녀의 시에 곡을 붙였다. ‘예수 나를 위하여’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주께로 한 걸음씩’ 등 성도들의 애창곡 22개가 찬송가에 수록되었다. 

 

끊이지 않는 갈등 

20세기에 들어와 교회음악에 매우 큰 변화가 찾아왔다. 부흥운동에 호의적인 교회들은 예배 시간에 복음송을 부르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복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기독교라디오방송이 시작되면서 복음송이 급속히 보급되어 성도들에게 가정에서도 부르는 익숙한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흑인영가, 컨츄리음악, 포크음악, 소프트록 등 장르의 폭도 매우 넓어졌다. 

더욱이 은사주의운동이 음악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교회음악은 새로운 국면에 이르게 되었다. 은사주의자들은 성령세례, 성령의 초자연적 기적, 그리고 영적능력 등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찬양이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는 길이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체험할 수 있는 도구라고 확신하였다. 초창기 복음송은 선포될 말씀을 위해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면, 은사주의운동의 찬송은 그 자체가 은혜의 통로였던 것이다. 

특히 세계적 조직을 지녔던 빈야드교회 지도자 존 윔버(1934-1997)는 젊은 시절 색스폰 연주자로 주목받던 음악인이었다. 그는 초창기부터 기타에 맞추어 복음성가를 부르며 예배를 드렸고, 본격적으로 은사운동에 가담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예배사용을 위해 새로운 곡을 작곡하였다. 나아가 고린도전서 14장 26절에 근거하여 전통적 예배의 형태를 벗어나 ‘열린예배’를 시도하였다. 그는 ‘찬양과 경배’ 모임을 직접 인도함으로 새로운 찬양의 전통을 세운 것이다. 한국교회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셈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현재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는 매우 혼합적이다. 알미니안신학과 칼빈주의신학을 표방하는 가사가 모두 담겨있다. 이전에 보급되었던 ‘개편찬송가’ 또는 ‘새찬송가’에 비해 국내 작사가와 작곡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파들이 공동으로 편집하면서 특정한 몫을 배당한 것과 같은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성도들이 함께 모인 연합집회에서, 한쪽에서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다른 쪽에서는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과 같이 서로 다른 가사로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지 않아 찬송가 가사의 연합을 시도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사에서 신학논쟁을 벌였던 극 보수신학자와 극 진보신학자가 기록한 가사가 함께 포함되어있다. 

찬송가에 수록된 곡은 그 성격이 성경66권 정경과 같지 않다. 정경은 교회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가 특별한 과정을 걸쳐 발견한 것뿐이다. 찬송가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교단을 대표하는 위원들이 선택한 곡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과 ‘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와 같은 곡을 주일예배시간에 부를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찬송가에 수록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 곡들은 ‘복음송 부록’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주일저녁예배를 포함한 다른 모임에서는 부르는 것을 허락했다. 그런데 새로 편집된 찬송가에 이 곡들이 수록되었다며 주일예배시간의 회중찬송으로 선곡되었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무조건 과거의 전통을 고집하거나 정반대로 새로운 것을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각 교회는 현재 성도들이 사용하는 찬송가와 복음송의 가사와 음악 형태를 자세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에 천상의 예배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경배에 집중되어있다. 믿는 성도들의 영원히 영광을 돌릴 찬양의 모습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도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주의 백성들은 홀로 그리고 함께 모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능력을 찬양하는 특권을 지니고 있음을 잊지 말자.  

covenantcho@yahoo.com

12.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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