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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23)

교회사가 가르친다!(10)-신비주의의 유혹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신비한 경험

 

기독교 신앙의 근거는 무엇일까? 십자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을 분명하게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십자가 복음의 비밀을 이미 깨달은 자들과 아직 그렇지 못한 자들이 있다. 두 부류를 구분 짓는 것은 온전한 회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회심이란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악을 떠나 하나님께 전향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중심은 초월적인 존재이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아낌없이 이 땅에 보내신 분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을 양자로 받아들여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삼는 분이시다. 회심을 경험한 성도는, 자신의 가치와 판단을 고집하는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아는 일과 그 분의 요청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삶의 흔적을 남기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회심하여 중생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 하면 아주 긴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화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삶과 후의 삶으로 구별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한 자들이다. 전에는 마음이 강퍅하여 교회출석을 거부하던 자가 어떤 일을 계기로 등록교인이 되었다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이 아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을 경험한 뒤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종교는 삶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내 삶의 정황을 보니 하나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마음이 편안하다!”라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는 인간의 감정이나 이성 또는 의식이 아닌,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 신앙 고백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은 자기도취나 주관적인 종교적 경험과 거리가 멀다. 기독교 진리를 터득한 자들과 종교적 감흥을 지닌 자들, 심지어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자들 중에도 거듭나지 않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매우 신비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성도들이 경험하는 하나님은 초월된 분이시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되, 100% 사람이자 신인 그의 아들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절대로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이 회심을 경험한 신앙인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인간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한다. 

 

신비주의 

 

신비주의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기에 간단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종교 자체의 체험적 이해 전체, 특히 각 개인이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체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교회역사에 신비주의가 나타나 성도들의 신앙을 위협하여왔다. 현대교회도 반드시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세기에 소아시아에서 활동하던 몬타누스(Montus, 135-177)라는 인물이 나타나서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외쳤다. 사도들이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며 살고 있던 성도들이, 그 시간이 지연되자 긴장이 풀리면서 엄격한 윤리 의식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가운데 그가 원조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 것이다.  

몬타누스는 이방종교의 사제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자로서, 160년경 자신을 통해 성령의 시대가 임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전하는 예언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 장소를 지정하고 그곳에 모여 종말을 기다릴 것을 종용하였다. 그의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 중에 열정적인 반응을 하며 추종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아 금욕생활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대표적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160-240)조차도 신비주의의 일원이 되기도 하였다.  

몬타누스의 신비주의는 성도들을 혼동시키고 교회의 영적 질서를 파괴했다. 결국 177년에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교회는 그가 성령으로부터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경험한 황홀경과 방언에 근거하여 ‘새로운 예언’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적 신비주의는 9세기까지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신비신학 

 

‘위 디오니시우스(Psudo-Dionysius) 라는 흥미로운 이름의 인물이 있다. 그의 출생이나 활동 시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사도 바울의 제자 디오니시우스‘라고 밝힌 여러 글을 남겼는데, 바울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엽에 시리아 지방에서 활동한 인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아무쪼록 기독교 영성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자들은 그가 남긴 글을 담긴 신비신학을 높이 평가한다. 

디오니시우스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존재인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에 대한 답에 얻는 것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에게 하나님은 모세와 같이 그를 대면하고자 하는 자들에게조차 자신을 보이지 않는 지극히 신비한 분이였다. 디오니시우스의 신비신학을 바로 알기 위하여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의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의 통합을 시도한 디오니시우스의 사상이 향후 중세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철학은 하층 현상의 세계와 상층 하나님이 거하는 이데아 세계라는 이원론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인간이 거하는 하층에서는 상층을 분명하게 볼 수 없으며, 오직 그림자만 가능하다. 그러나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의 철학을 계승 발전시켜, ’유출설‘에 근거한 일원론을 기초로 하는 신플라톤주의를 주창하였다. 

’유출설‘이란 마치 물이 가득 차면 넘치듯, 이 세상의 물질은 모두 신으로부터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신은 절대적 통일체이므로 어떤 변화를 내포하지 않으나, 그로부터 다양한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디오니시우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유출론의 축을 이루는 두 가지 운동에 대한 설명이었다. 하나는 하강운동으로, 만물이 신적 존재인 이데아로부터 유출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것은 상승운동으로, 하강운동으로 유출된 존재들이 자신의 근원인 이데아와 하나로 연합하기 위해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신과 인간의 ’신비적 합일‘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비신학은 인간이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디오니시우스는 오직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여 자신을 부정하고 철저히 내려놓을 때에 이성을 초월하는 신비한 직관인 관상에 의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부정의 방법‘, 즉 초월적이시며 지극히 신비하신 하나님에 대해 철저히 무지한 자신을 깨달을 때 올바로 알 수 있다는 역설적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정통 신학으로부터 벗어난 사상이지만 현재도 영성운동가들이 한국교회를 포함한 전 세계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바이다. 무엇보다 디오니시우스의 신비신학은 하나님과 합일하는 관상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기도의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관상기도‘의 뿌리이다. 

 

중세 신비주의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은 초대교회를 마감하고 중세교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활동했던 신학자이다. 그 역시 신플라톤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았지만 비평적 태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신학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를 이어주는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었는데, 신플라톤주의로는 예수님의 성육신 또는 부활과 같은 개념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그는 성경의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은혜 중심의 교리를 집대성하였다.  

중세신비주의에 직접 영향을 끼친 것은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를 전격 수용한 디오도시우스의 신비신학이었다. 중세교회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은 클레르보의 버나드(1091-1153) 이다. 그는 이신칭의 교리를 통해 종교개혁을 준비하였고, 타락한 교회와 수도원의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한 자로서 많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그를 존경했다. 

그러나 그도 신비적 명상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장시간 수도원장을 지낸 그는 수도사들에게 수도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즉,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도 내면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환상을 통해 앞으로 천국에서 누리게 될 완전함을 누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버나드의 신비주의 명상과 하나님과의 합일 경험을 단호히 거부했다. 

 

한국 신비주의  

 

1930년대 한국교회에 신비주의가 성행하였다. 일제치하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든 상황가운데 과거 교회사에 나타났던 신비 운동과 유사한 모습이 재현된 것이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분별없는 행동으로 성도들을 미혹하였다. 유명화라는 여인은 입신 후 예언활동을 시작함으로 교회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한준명은 유명화로부터 평양으로 파송을 받아 거짓예언으로 교회를 어지럽혔다. 백남주는 평양신학교 출신이었지만 유명화, 한준명과 결탁하여 예언과 환상을 중시하였다. 황국주는 백일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뒤, 새 예루살렘을 찾아 순례의 길을 올랐다. 신비주의자들 대부분은 교회에 의해 위험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한국교회 신비주의의 대표적 인물은 이용도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933년 장로교 총회에서 ’이단으로 간주할 수 있는 단체‘의 일원으로 정죄를 받은 감리교회 목사이다.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암울하던 시기에 한국 교회에 신앙적 열정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하였지만 교회가 계속 침체되자 신앙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10일간 금식을 단행했다. 그 후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1928년에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도중 그 안에 사단이 가득한 것이 보이자 아침까지 주먹싸움을 하면서 그들을 제압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 뒤 교회도 부흥되었고 무엇보다 부흥사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신비주의 아니고 상식적도 아닌 기독교신앙은 초월적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직통계시’‘새 예언’ 주장하는 신비주의는 몬타누스로 시작해 현대까지 계속 

 

그는 부흥회를 인도하며 눈물이 있으며 열정을 다하는 설교로 청중에게 크게 어필하였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많은 고난을 경험한 자로서 성도들을 향한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들을 향해 마음을 쏟아 부으며 신앙으로 인내할 것을 권면하였던 것이다. 특히 그가 끓어오르는 통곡 소리와 같은 기도로 회개를 호소할 때, 함께 한 자들은 아멘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신앙에 대한 각성과 함께 기도 운동이 일어났다. 

현재 이용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그를 견제하던 자들에 의해 부당하게 이단으로 몰렸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거짓예언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던 자들과 가까이 하면서, 신비주의자들의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유명화로부터 예언을 받으면서 그녀를 ’주여‘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는 신학의 체계를 갖추지 않은 채 자신이 몸소 체험한 신비적 신앙을 중시한 목회자였다. 예를 들자면, 그에게 최고의 신앙적 단계는 고난 받는 예수님과 합일하는 것, 즉 예수님처럼 직접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또한 그가 신비주의자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던 것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사도 요한이 강조하는 사랑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현대교회에도 신비주의적 신앙이 도처에 널려있다. 1930년대 이후 한국교회를 혼잡하게 만든 신비주의를 모두 열거하려면 지면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다. 무엇을 듣고 보았다며 자신이 마치 대단한 수준의 신앙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방법과 앞날을 예언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준다는 자들도 있다. 모두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건강한 신앙은 반드시 지, 정, 의가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인다. 무엇인가를 더욱 경험하려하기 보다, 삶 속에서 회심을 경험한 자 다운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신비주의는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가장 중시하며 자신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신앙의 기준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 외에 그 어느 인간적인 경험으로 대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covenantcho@yahoo.com

10.3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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