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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15)

부제: 교회사가 가르친다!(2) - 좋은 교회란?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좋은 교회 

 

한국에 세계 최대의 규모의 교세를 지닌 교회가 상당 수 있다.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1980년대를 지나면서 대형교회가 생겨났다. 이때부터 ‘지역 교회’라는 전통적인 개념이 깨지기 시작하였다. 좋은 교회라는 소문이 나면 거리와 상관없이 교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각 교회마다 교회의 수적 성장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교인들이 좋아할만한 ‘그 무엇’을 갖추는 일에 매진한 것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커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소형교회와 미자립교회의 수가 엄청나게 많은 실정이다. 개척에 실패한 뒤 문을 닫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목회자들은 언제나 성도의 수가 많아지고 헌금이 늘어나기 바라고 있다. 긍정적으로, 대부분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교회 성장이 곧 목회 성공이란 생각에 사로잡힐 때 교회의 본질에 대한 어그러진 인식을 지니게 된다. 목회가 우상으로 전락되는 심각한 문제될 수도 있다.  

교회의 대형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형교회만 이상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힘있게 사역을 감당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교회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교회의 규모는 좋은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외형적 모습에 치중하고 있는 교회는 각성해야 한다. 

‘이런 교회가 좋다!’는 의견을 지닐 수 있지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경계는 넘지 말아야 한다. 현대교회가 진통을 앓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교회’에 대한 개인 의견을 절대화 시키려는 것이다. 문제는, 개인의 경험과 가치에 따라 그 기준이 각기 달라 의견이 쉽게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자존심과 감정의 대립 구도로 인해 몸살을 앓는 공동체가 허다하다. 성도의 덕을 상실함으로 세상 사람들의 놀림거리로 전락되기도 한다.  

 

서구적 교회 

 

교회는 특정 지역에만 영존하지 않았다. 복음은 출발부터 항상 타 지역을 향해 이동하기를 반복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그 역사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복음이 전달된 새로운 지역의 독특한 사회와 종교, 그리고 문화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그 입장을 견지하였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 페르시아 국가를 중심하여 시작되었다. 즉 기독교의 기원은 서양이 아니라 중동(中東)지역이다. 중(Middle)과 동(East)이 합쳐진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서, 여기에 서구와 미국이 중심된 서양인들의 관점이 지리적 구분에 드러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극동(極東, the Far East)에 서아시아와 동아시아가 있으며, 그 중간에 중동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History is written by the victors)”라는 문구의 의미가 그대로 반영된 듯하다. 실제적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시작되는 일반 세계사의 대부분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부터 서방교회의 위치가 확고해지기 시작하였다. 395년에 로마제국이 동과 서로 분열한 뒤, 서로마제국이 476년에 멸망하였지만 기독교는 서방에서 더욱 융성하였다. 야만인이었던 게르만족이 과거 서로마 지역으로 이동하여 점령한 뒤 로마를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으로 삼았다. 정치인들이 로마문화와 법을 수용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를 환대하였는데 이는 다양한 지역 출신의 국민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좋은 수단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1054년, 라틴어 문화권인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와 서로 파문함으로서 영원히 결별하였다. 그 그렇지만 동방교회는 이미 수세기 전부터 서방교회에 비해 다른 독특한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경을 궁극적인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예배 양식 등 외형적 면에 관심에 집중하고 교회의 전통을 중시하였다. 혼합주의적 형태의 신앙을 중시하던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 것이다. 변질되었던 동방교회의 대조적으로, 서방교회는 전통적 기독교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적 교회

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중세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하였다. 그로부터 1세기 정도가 지난 뒤 17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8세기에 절정을 이룬 인간 중심의 자유사상이 유럽의 영적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세속화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기나긴 세월동안 서구 사회의 축이 되었던 기독교의 영향력이 날로 약화되었다.

이 시기부터 교회사는 서양사와 분리되어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여러 종교들 중에 하나로 다뤄지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서양사를 기록한 역사학자들의 편견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교회가 서구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침체되었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서방교회가 새로 출현한 세속적 문화에 의해 잠식당한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였고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복음이 서구로부터 북미 지역으로 옮겨졌다. 서양사로부터 냉대를 받던 교회사가, 식민 개척지였던 미국 역사의 중심에 다시 등장한다. 유럽의 영국교회와 화란교회로부터 수입되어 신대륙이라는 독특한 문화 속으로 새롭게 정착한 것이다. 청교도적 신앙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으며, 향후 기독교는 독립전쟁과 미국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폭넓게 성장하였다. 그 결과, 미국의 기독교는 국가의 정체성과 결합되어, 세속화 되었던 유럽과 달리 종교에 뿌리를 둔 사회를 형성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초기 미국교회는 성경 중심의 신앙을 추구하였던 청교도 정신을 기초로 세워졌다. 어렵고 힘든 개척 시대를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약 1세기가 지난 뒤 교인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인간중심의 사상으로 인해 교회가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영적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에 영국과 미국에서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적절한 시기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영적 각성 운동을 계기로 기독교 역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전통적 신앙의 굴레 안에 안주하던 성도들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새롭게 깨닫고 열정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들은 전도와 구제 사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활기를 잃었던 교회가 새롭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18세기 말에는 해외 선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으며, 다양한 선교사 협회들이 세워졌다. 그 결과, 19세기 말 미국에 뿌리를 내린 기독교에 의해 조선 땅에도 복음이 선포될 수 있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미국교회가 복음을 전달한 시기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미국교회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던 세속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이 대서양을 건너왔다. 인간의 주관적 생각과 느낌을 중시하는 신앙의 축을 중심하는 교회들의 영향력이 커져갔다. 결국 성경을 중심하는 전통적 교회는, 이들로부터 심한 도전을 맞서고 이겨내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적 교회

 

1885년 4월 5일, 미국교회로부터 복음전도자로 파송을 받은 2명의 선교사들이 첫 발을 디뎠다. 일본에 머물러 있던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와 장로교 선교사 호래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동반했으며 그 후로도 서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들은 20대의 젊은 목사들로서 선교 경험이 없었기에 당연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1890년, 조선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은 중국에서 사역하던 베테랑 선교사 존 네비우스 (John L. Nevius, 1829-1893)를 초빙하였다. 그로부터 가장 효과적인 선교 전략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약 2주 동안에 걸쳐 강의와 그가 저술한 서적을 통해 한국교회에 가장 적합한 선교전략을 세우게 되었다. 그 결과, 1890년에 ‘네비우스 선교전략’을 채택하였다. 

이 전략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한국교회가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네비우스는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7:20)는 말씀을 가장 기본 원리로 삼았으며, 사역의 모든 분야에서 성경을 중심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였다. 특히 그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철저하게 가르쳐서 그들이 직접 다른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이 가장 집중한 사역은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즉시 장래 교회를 책임질 지도자로 세울 자들을 소수를 선별하여 성경공부 반을 만들어 교육시키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성경 실력을 갖춘 교회 성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한 각 지역마다 사경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는 성경공부와 부흥회를 합쳐놓은 성격의 모임이었다. 그 당시 신앙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믿고 행해야 할 것인지를 올바로 알기 위해 성경공부에 정열을 쏟았다.  

 

성경적 교회

 

교회 역사는 우리에게 복음은 한 지역에 영존하지 않고 타 지역을 향해 이동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쳐준다. 한국교회는 성경의 진리보다 인간의 ‘그 무엇’을 절대화시키는 영적 타락에서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좋은 교회는 성경의 진리가 힘을 발휘하는 공동체이다.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거나, 성경을 율법주의의 날카로운 도구로 사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경적 교회는 하나님 가르침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겸손이 있는 공동체이다. 그 분의 진리 앞에서는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과감히 내려놓는 용단이 있다. 마음의 눈을 밝히시는 성령을 함께 의지한다. 무엇보다 십자가 복음이 통치한다.

covenantcho@yahoo.com

07.1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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