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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4)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교회사 

 

교회사는 신학의 한 분야이다. 교회가 탄생한 이후 오늘날까지 걸어온 모습과 그 의미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1세기부터 시작된 교회가 여러 시대를 걸치면서 경험한 내용을 다루기에 그 내용이 매우 방대하다. 역사는 객관성을 강조한다. 특히 원본 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역사가의 해석 이전의 내용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과 사료에 대한 평가는 결코 획일적일 수 없다.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교회사는 그 흐름의 중심을 주도한 인물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사람을 통해 교회를 이끌어 가신다는 전제하에, 역사의 현장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였는지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내린다. 그러므로 교회사의 범위는 방대할 뿐 아니라 매우 선택적이다. 기본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핵심내용들을 선택하고 서술함에 있어서 역사가의 주관적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서전을 예로 들어보자. 적어도 그 사람의 출생과 관계된 부모 및 가족에 관한 설명, 성장할 때에 영향을 주었던 가정환경과 친구들에 대한 기록, 취미와 재능 또는 습관과 연관된 내용들, 학력과 경력에 대한 사실들, 개인적으로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이와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묘사, 나아가서 생을 마감할 때의 모습과 그의 삶이 주위에 끼친 영향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실상 다양한 자서전을 살펴보면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어떤 저자는 한 인물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한편, 다른 저자는 같은 인물을 거의 저주스러운 인물로 서술한다. 또한 어떤 저자는 한 인물의 전체 삶을 조명하지 않고, 자신이 드러내길 원하는 특정한 시기 또는 특별한 사건에 집중한다. 역사는 힘 있는 자에 의해서 기록되어 진다는 말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더욱 정확한 표현은 역사는 기록한 자의 관점에 의해 후대에 남겨진다는 것일 것이다.  

물론 교회사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를 주도한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다양하다. 역사적 객관성을 중시하여 원본사료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할지라도 역사가가 지닌 주관적 의도가 전혀 없는 사실만을 다룰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역사가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은 교회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요한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종교개혁사 

 

교회사는 16세기에 발생하여 약 1세기 동안 지속된 ‘종교개혁사’를 ‘초대교회사’, ‘중세교회사’, 또는 ‘한국교회사’와 같이 독립적으로 취급한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 그리고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등과 같이 잘 알려진 개혁가 외에도 이 시기에 교회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린 인물들이 상당히 많다. 

종교개혁사에 대한 서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구교와 개신교의 상반되는 입장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을 어떻게 이해할까? 역시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교회의 전통을 무시한 ‘분파주의자’들이 주도한 ‘항거운동’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구교를 거부하는 것은 곧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라는 강한 의지를 숨지기 않았다. 16세기와 17세기 교회역사의 현장에서 벌어진 살벌한 사건들이 이를 증거 한다. 

그러나 초기 개혁가들은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1000년을 지나면서 자리 잡은 중세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원형적 교회의 모습을 되찾기를 원했다. 로마 교회에서 분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운동이 결코 아니었다. 단지 종교개혁 운동의 결과로 생겨난 구교와 신교의 분리된 상태로 부터 역행적으로 시도한 해석일 뿐이다. 

물론 현재 개신교 전통에서 ‘종교개혁사’를 독립된 과목으로 취급한다. 이는 진영 논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낸다. 교회사 일반에 대한 지식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종교개혁을 구교의 타락을 대항하여 불가피하게 생겨난 갱신운동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 당시 개혁자들과 개혁운동을 억압하였던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부정적이다. 

동시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땀을 흘렸던 개혁자들의 의지와 용기를 높이 평가하다 못해, 성경에 긍정적으로 기록된 인물들과 같은 맥락에서 그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개신교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전제아래, 중세교회 말기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성경적 교회의 역사를 탄생시킨 영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역사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구교와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1618년부터 1648까지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30년 전쟁이다. 이 전쟁은 구교를 지지하는 나라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나라들 사이의 대립 구도 속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800만 명의 사망자를 낼 정도로 잔혹하였고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쟁의 역학이 변화되기도 하였다. 이미 종교개혁과 함께 양 진영으로 갈라선 두 교회가, 극단적 방법을 통해 상대를 저주하는 시기를 지나면서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사는 역사가의 의도에 따라 ‘폄하’ 또는 ‘미화’의 오류에 노출되어있다. 그렇기에 교회가 걸어온 길을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앞으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과거의 교훈으로부터 얻기 위함이다. 

 

개혁에 대한 갈망 

 

처음 마르틴 루터가 독일의 한 마을에서 개혁을 주장할 때에 교황은 물론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의 목소리를 경청하려하지 않았다. 명성을 얻으려는 한 젊은 수도사의 철없는 짓 정도로 간주하고 경하게 취급하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운동이 급속도로 유럽전역에 확산되었다. 거기에는 매우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울리히 츠빙글리는 스위스 츄리히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개혁가이다. 독일출신 루터보다 1년 뒤에 태어난 동시대 인물이다. 그렇다면 츠빙글리가 지녔던 개혁정신은 루터로부터 전수받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츠빙글리는 1518년경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하여 루터와 매우 유사한 결론을 얻었다. 그도 성경공부에 매진하여 진리를 터득한 결과,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중세말기 교회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처하여 있었다. 개혁가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회심을 경험하였으며, 대담하게 교회를 향하여 자신들의 확신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냈다. 자신들이 당할 수 있는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중세말기에 교회의 부패를 지적한 것은 루터나 츠빙글리가 처음이 아니었다. 마치 새벽을 밝히는 여명과 같은 역할을 한 인물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와 체코의 얀 후스(Jan Huss, 1372–1415), 그리고 이들을 따르던 자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미 14, 15세기에 과감하게 중세교회의 부패를 지적하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외쳤다. 물론 이들은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았으며 결국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더욱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전에도 개혁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이전에도 있었지만, 결국 16세기에 이르러서 개혁이 이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종교개혁이 가능하였다는 것이며, 그 배경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이 답은 종교개혁사 뿐 아니라 교회 역사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배경의 중요성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성경내용을 그 배경과 함께 이해하는 것을 손꼽을 수 있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이며, 특정 인물과 사건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 배경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을 무시하면 자칫 ‘성경문자주의’라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종교개혁사라는 교회역사의 한 부분, 특히 그 시작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그 배경을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한다. 특히 중세말기 교회 안에서 어떤 신학적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답을 지녀야 한다. 초기에 활동했던 개혁가들은 대부분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했던 자들이다.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교회 안팎의 신앙적 영향이 어떠하였는지를 이해함으로서, 그들이 후대 교회에 남긴 종교개혁 사상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신학적 변화 외에도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하였던 중요한 배경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세말기에 발생하였던 다양한 사회적, 정신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흐름의 변화가 종교개혁에 끼친 결정적인 영향을 인식하는 것이다. 전과 달리 개혁자들의 주장이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사회전체가 종교개혁을 받아들일 상태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찬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사는 중세말기에 등장한 다양한 배경이 개신교의 출발과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큰 관심을 드러낸다. 또한 종교개혁사에는 근대사회의 출발을 알리는 다양한 사건들을 포함되어 있다. 즉 근대사회의 배경 종교개혁운동을 빼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한 시대의 역사는 오고가는 역사 전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종교개혁사는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된 교회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물론 이 시대의 교회가 경험하는 일들을 이해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때 역사의 중심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다.  

covenantcho@yahoo.com

02.2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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