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로마 가톨릭교회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
* 이 내용은 박홍규 목사의 번역, 『성령이 도우시는 기도』를 인용 및 수정한 것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경건한 사람들은 ‘마음으로 하는 기도(명상에 가까운 것)를 더욱 탁월한 기도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것을 ‘순결한 영적 기도, 조용히 평안한 가운데 하는 명상으로서, 때때로 우리의 인식의 활동을 중지하는 것이며, 외적인 억압이 없이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그 효과가 탁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렇게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해 우리 영혼이 ‘전적으로 평정을 유지하며, 열정을 죽이고, 의지의 영적인 감정들을 완벽하게 순결해지도록 만들고, 모든 피조물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
1.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더 탁월하다는 주장
1) 기도를 통해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내적으로 실질적인 교제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로마 가톨릭에서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기도문을 읽거나 노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이 세련된 방법이라고 주장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순결하심과 모든 거룩한 속성들을 가장 크게 경멸하는 것이다. 주문을 외우듯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말을 반복하거나, 자신들의 상황에 적합한 말은 제대로 한마디도 못하면서 주어진 말만 반복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내용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그들은 자신이 상상해 낸 내용이 아니라 어느 정도 직접 경험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추측하여 기도의 규칙이나 예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둘째, 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성경의 규칙이나 예와 일치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잘못된 경험으로 인해 헛된 망상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우리의 기도가 본질적으로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그런 행동까지 확장될 수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 기도는 단지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결과들일 뿐이다. 그들은 지성이나 이성의 활동이 없이 의지나 감정만으로 기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도할 때 사랑, 기쁨, 안심, 안식, 만족함과 같은 의지와 감정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더 유익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과 은혜와 다른 탁월한 속성들에 대한 묵상이 없이 예배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야만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배는 바른 지식에 기초한 ‘합리적인 예배’ 이어야 한다. 기도에 대해 그들이 제시한 주장은 단지 환상과 상상력의 결과이지 성령의 조명과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 전파된 복음에 대적하기 위해 명상가들이 만든 개념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2) 하나님과 가까워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의 목표이다
우리 기도의 목표는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우리의 지성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 묵상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에 대한 찬미와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고, 하나님의 무한한 속성들에 파묻혀 자신을 전적으로 잊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분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거리감을 느끼며, 영원한 선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서 우리의 의지와 감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식과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무한히 자신을 낮추어 드림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영혼은 황홀경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상에 빠지는 것도, 이성과 의지를 넘어서서 감정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모든 영혼의 기능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효율적인 활동을 통해 제대로 질서가 잡히며, 나아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고 그분의 선하심을 통해 안식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 혹은 영적인 기도는 성경을 통해 전혀 지지받을 수 없는 것이며, 기도에 대해 합리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도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올바른 기도는 비록 소리를 내어 하지 않더라도 소리를 내어 하는 기도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말을 사용해서 하는 기도는 기도의 본질이나 하나님의 명령이나 교회의 유익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말로써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 실제로 그분도 소리를 내서 기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시적으로 묵상하는 기도를 하신 것이 아니라,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셨으며(히 5:7), 다윗은 ‘신음하는 소리’로 기도하였다고 말한다(시 22:1). 그러므로 간절하게 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를 장황하고, 시끄러우며, 충동적이고, 야만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며, 인위적이며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기도의 방식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때로는 오래, 때로는 큰 소리로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우리 주님뿐 아니라, 선지자들과 사도들도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께 소리를 내서 울부짖으며, 말로써 자신들의 간절한 열망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으로부터 직접적으로나, 유비적으로 끄집어낸 적절한 표현들은 우리가 기도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어거스틴도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가슴을 치며 소리를 내어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지성은 우리가 열망하는 것들을 말로 표현함으로서 더 간절해지게 된다. 기도하고 싶은 생각과 뜻을 구체적으로 말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축복이다. 그럴 때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을 구하게 된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 없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께 제대로 아뢸 수 없고, 아뢰더라도 빗나가게 된다. 또 우리는 기도 중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아뢸 때 사탄의 격렬한 유혹과 방해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성으로 묵상만 해서는 결코 사탄의 공격을 이겨낼 수 없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거룩한 감정 또한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고 열망하는 것을 말로 표현해 냄으로써 우리의 감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뿐 아니라, 기도의 표현까지도 우리의 마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다. 우리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은 우리의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치면서 이 둘은 서로 상승작용을 한다. 이런 기도는 퀘이커 교도들이 침묵하며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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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