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적인 은사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음
1) 다른 은사나 은혜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행해지는 은사가 있다. 기적이나 치유나 방언과 같은 특별한 은사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2) 다른 은사나 은혜가 없으면 받거나 사용할 수 없는 은사가 있다. 예를 들어 기도할 때 ‘말로 표현하는 은사’는 지혜나 지식에 의존한다. 그러나 지혜나 지식이 없이 말로 표현하거나 이런 표현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 뿐 아니라 중언부언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이라는 것을 부인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할 수 있을 만큼 대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령께서는 기도의 은사에 있어서 어느 한 부분의 저자가 아니라, 우리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시는 총체적인 저자이시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이 받은 은혜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적절한 말로 우리 마음의 열망들을 기도로 표현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기도를 부탁받았을 때, 우리의 필요와 형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도 말을 사용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는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중 앞에서 기도하는 것도 성령의 은사가 요구되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역사함으로 기도하게 하실 때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곧 그가 표현하게끔 하신다. 그리고 성령께서 표현하지 않도록 하실 때, 그것은 그분이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답답하기만 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그때는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고 침묵으로 괴로워하던 다윗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윗은 성령의 도우심 후에야 비로소 기도하고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 ‘기도의 은혜’(the grace of prayer)'와 ‘기도의 은사(the gift of prayer)'를 구분하지 않으면 건전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첫째 주장은 '기도의 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도의 은사도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며, 둘째 주장은 '기도의 은사를 가지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말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기도의 은혜나 혹은 기도를 통해 구원받는 은혜를 가져올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진리와 우리의 경험에 위배되는 것이다.
* 대답:
1) 첫 번째 주장은 사실이지만, 제한을 가지고 있다.
(1) 첫째로, 우리는 기도의 은혜를 습관이나 원리로 이해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습관이나 원리의 측면에서 기도의 은혜는 거룩해진 모든 사람, 심지어 모태에서부터 거룩한 어린아이들에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실질적으로 기도할 때, 역사하는 기도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이 은혜롭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을 향해 믿음과 사랑과 기쁨과 열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소리를 내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2) 둘째로, 그런 사람일지라도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영적인 은사를 받은 사람은 지속적이고 빈번하게 자신이 받은 능력을 사용해서 이 은사를 더욱 불러 일으켜야 한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후 1:6)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이 의무를 게을리 하는 사람은 설령 ‘기도의 은혜’가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과 서원을 기도를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은사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형식적인 기도문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도를 할 수 없다.
(3) 셋째로,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운 도우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이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황이나 조건, 의무나, 부르심 등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정리한다면,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기도 그 자체가 신성모독이 되며,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모든 성도들은 기도의 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도움을 향상시키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시는 성령의 은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그것들이 채워지기를 갈망하고 죄의 용서를 위해 자비를 구하거나 자신의 인격의 성화를 위해 은혜를 공급해주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아뢰고 기도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받아들이실 방법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을 것이다.
2) 둘째 주장은,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기도의 영의 은혜로운 도우심과 분리될 수 없다면, 이 은사와 능력을 가진 사람은 기도하기만 하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가?
이런 결론에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1) 첫째로, 그런 결론은 결코 나올 수 없다. 즉. 은혜가 있는 곳에는 은사가 있을 수 있지만, 은사가 있는 곳에 반드시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은 잘못된 것이다. 은사는 은혜를 위해 있지만,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은혜는 은사 없이 행해질 수 있지만, 은사는 은혜 없이 행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2) 둘째로, 이 은사가 다른 토양에서 자라지만,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 은사는 분리될 수 없는 간구의 영으로서 성령의 사역 중 구분된 하나의 사역이다. 은혜와 간구의 영이 더 이상 역사하지 않을 때, 일반적으로 조명하심을 통해 말로써 기도하는 은사가 흘러나오도록 한다. 그러나 영적인 조명이 없이 기도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을 기도할지 모르는 기도의 은사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우리는 이런 광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younsuklee@hotmail.com
01.2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