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기도의 본질- 로마서 8장 28절에 대한 주해와 방어 (1)
기도는 믿음과 사랑과 존경과 두려움과 기쁨과 다른 은혜들을 말로서 하나님께 요청하고 간구하고 찬미하는 선물이나 능력으로서, 영적인 기능(faculty)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이런 선물이나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따라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이며, 그 결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1.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성령
성령의 사역에서 첫째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의 상황에 맞게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이해가 없는 곳에서는 기도의 본질이나 존재 자체가 파괴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라는 말씀으로 이것을 확증하고 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충분히 알고 있지만, 자신들이 악하고 게을러서 기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보다 성령의 특별한 도우심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자신이 기도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한다는 사도의 견해를 따라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어도 우리가 기도해야 할 바를 알 수 있다는 사람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기도해야 할 것을 찾는 데 신중하지 못하며, 이는 기독교에서 성령의 사역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사람들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는 모를 수 있지만, 그들로 하여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사전에 가르쳐 주는 만들어진 기도문들이 이런 결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기도의 내용에 있어서 성령과 그의 도우심을 배제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그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기도의 내용을 적어 넣으면 결과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 그의 도우심을 거부하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의존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할지 신뢰하지 말아야 할지의 문제이다.
성경의 주기도문에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가 요약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것과 그 기도를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은 별개이다. 후자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있어서 결코 온전한 기도의 내용이 될 수 없다.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부터 말하는 것이다(마 12:34). 우리에게는 기도할 때, 세 가지 결점이 있는데,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약속을 따라 역사하시는 간구의 영이신 성령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것이다. 첫째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부족함을 알지 못한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른다. 셋째 우리는 기도의 목적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없이는 사람은 그 누구도 기도해야 할 바대로 기도할 수 없다. 우리는 은혜의 영의 도우심과 후원이 없이는 그것들을 결코 알 수가 없다. 이것이 명백하다면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우리에게는 우리가 관련되어 있는 모든 일시적인 일들과 우리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외적인 곤란과 압력, 어려움들이 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스스로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놀랄 만큼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그것들에 대해 알고 있고 해결되기를 자연스럽게 바라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어떻게 언제 어떤 상태와 제약 아래서, 어떤 마음과 정신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에 대한 대부분의 기도를 ‘울부짖는다(howling)'고 하실 뿐, 마음으로 부르짖는다(crying)'고 하지는 않았다(호 7:14).
사실상 자연의 신에게 절망 속에서 부르짖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지금 살피는 복음적인 기도의 의무가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들이 가장 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가장 잘 놓친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우리의 일상적인 부족함들을 기도의 내용으로 아는데는 우리 자신들의 능력을 넘어서는 더 높은 지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림자처럼 보내는 이 헛된 삶의 여정에서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한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전 6:12).
종종 신자들조차도 일상적인 일에 대해 어떻게 기도해야 올바른지 몰라 당황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존재를 파괴할 수 있는 고통과 좌절과 부족을 겪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는 기도 제목으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특별한 성령의 조명이 없어도 어느 정도 혹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는 (그들의 기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든가, 혹은 최고의 목적이나 최상의 선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이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일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 선하고 유익한지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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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