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
[들어가며]
오웬은 기도의 본질에 대해서 바로 알고 기도와 성령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당시의 문화나 배경을 참조하지만 그의 특징은 철저하게 성경에 대한 주해에 기도를 두고 있다. 그는 모든 신학의 기초는 오직 성경뿐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에 충실한 신학자였다. 그가 이성이나 상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모든 것은 성경의 계시를 그 기초로 하고 있다. 17세기의 오웬은 당시의 로마 가톨릭이 지닌 예배 의식, 영국 국교회의 기도서 사용과 예배 의식, 또한 소시니안들과 같은 견해에 비판하며 기도에 대해 논하고 있다. 비록 오늘날 우리가 처한 문화와 환경은 달라도 그가 철저하게 성경을 근거로 해석해 나가고 있다는 그 개혁주의적 입장 때문에 그의 글을 우리의 기도를 올바로 인도하기에 매우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의 내용의 개요만 읽어도 기도생활에 있어서 성령이 하시는 일에 대해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에 그 개요를 중심으로 그의 글을 요약 발췌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오웬의 머리말]
1. 우리가 바로 알아야만 할 기도의 용도와 목적 –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기도
신앙의 생명과 활동은 근본적으로 기도에 있음은 당연하다. 신앙의 본질을 파괴하는 온갖 오류들이 기도의 본질과 용도를 왜곡시키고 올바로 기도하는 것을 무시하게 했다. 이런 기도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위험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신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기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일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 있어서 기도의 본질과 용도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특별히 이것이 공격받고 있을 때에 이것을 살피고 방어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2. 기도의 두 가지 원리 – 성경의 계시와 믿는 자들의 경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들이 기도할 때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자 노력했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는 능력을 받는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며, 자신들이 그동안 해 왔던 방식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두 가지 원리, 곧 성경의 계시와 믿는 자들의 경험을 부지런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후자가 전자에 의해 판단이 되어야 할지라도, 후자가 있을 때에야 비로서 전자의 진실성에 대해 안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습이나 전통, 꾸며낸 결과들로부터 나온 모든 추론들은 아무 필요가 없다. 우리의 문제는 신자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사역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사역의 결과는 무엇이며, 이를 통해 신자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능력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과 경험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지, 어떻게 부름을 받았든지, 자신의 생각과 뜻에 따라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와 간구의 영으로서 성령을 주실 것을 은혜로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기도할 때 진리를 바로 깨닫고 약속된 도우심과 후원을 기대하며 자신들이 받은 바 능력에 따라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형식적인 기도문 사용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이것은 매사에 기도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 가는 것이여, 거룩한 말씀의 가르침에 정면적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3. 기도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한 지침들
1)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연의 빛과 하나님의 수많은 명령들은 피조물로서의 필연적인 의존과 순종, 더불어 이 원리에 생명과 빛을 준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기도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며, 그 대상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2)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게을리 하고 있다.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관계에서부터 목사나 교사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이를 행하고 있다면, 우리가 다루는 기도의 본질이나 방법에 대한 거부감의 없을 것이다. 신앙적으로 생긴 문제들은 자신들의 맡은 의무를 잘 감당함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3) 자신을 위해,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이성)의 빛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사람은 매사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하나님과 그의 본성을 향한 우리의 의무는 우리가 내용이나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께 최고의 것으로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를 통해 사람들이 눈먼 희생으로 드리고 있다고 책망하신다.
4)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우리가 가진 모든 영혼의 기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한 최선의 도움을 받아 신실하게 사용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형식적인 기도문을 사용해서 기도하는 것이 자신들이 최선을 다해 기도한 것이라고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고백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5)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도우심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위해 기도하든,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움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완벽하고 동일하게 기도할 수는 없을지라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든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든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기도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주신 바 된 도움을 가지고 기도하는데, 그 기도를 받아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분의 지혜와 선하심을 무시하는 것이다.
6) 우리는 분명히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문을 만들라는 명령은 받지 않았다. 따라서 기도문은 자연의 빛으로 보든, 성경의 빛에 비추어 보든, 편의상 덧붙여진 것에 불과하다.
7) 신자들에게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기도문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주겠다는 약속을 주시지는 않았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문을 만드는 것이, 모든 선한 일이 그러하듯이 성령의 일반적인 도우심을 받아서 하는 좋은 일로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그 도우심은 은혜와 간구의 영으로서 기도할 때 우리를 실질적으로 돕는 성령의 역사와 같은 종류의 도우심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기도문을 읽을 때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은혜와 은사의 도우심을 받아 실질적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지, 형식적인 기도문을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8) 성경에는 주기도나 시편, 혹은 다윗의 시들과 같이 하나님의 권위와 영감으로 작성된 기도문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원래 계획된 대로 영원히 지속되는 용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용도와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사적으로 만든 기도문들에는 정당성을 부여해 주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에 사람이 만든 것을 더하는 것이 될 뿐이다.
물론 형식화된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을 죄를 짓는 것이나 혹은 절대적으로 불법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정죄하지는 않는다. 또 기도문을 사용하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비록 어찌할 수 없이 무지함으로 예배를 드릴 때 여러 면에서 실수한다고 하더라도, 신실하게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받아 주실 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거룩한 두려움과 신실함으로 예배하고 복음의 규칙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면, 비록 그가 예배의 방식에 있어서 여러 가지 부패한 면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받아 주실 것이다. 문제는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에 의해 증명이 되지 못할뿐더러, 사도들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도 없으며, 초대교회의 관습에 의해 지지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younsuklee@hotmail.com
08.12.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