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리니”-이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생명의 약속이다
이것은 앞에 언급된 죽음의 위협과 대조를 이룬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갈6:8). ‘썩어진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멸망의 심판을 뜻한다. 약속한 생명은 영생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영적인 생명을 뜻한다. 신분상의 변화에서 파생되는 기쁨과 위로와 활력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살전3:8). “너희가 살리니”라는 말은 여전히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선하고 활력 있는 안락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저 세상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육신의 행실을 죽일 때 우리는 영적 삶의 활력과 힘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의무 수행의 동기가 된다.
2장 죄를 죽이기 위해 힘써야 할 이유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이 편지의 수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1절)요, 그분과 함께 죽은 자(3절)이며, 그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이며 그분과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사람들이다(4절).
죄를 죽이기 위해 매일 노력하라. 그리고 항상 살아 있는 동안 죄를 이기는 삶을 목표로 삼으라. 하루라도 이 일을 중단하지 말라. 죄를 계속 죽이지 않는다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실제로 죽어서 그분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당신은 더 이상 이 의무를 회피할 수 없다.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15:2).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이로라”(고전9:27). 일반 성도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바울도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그런 의무와 일들을 회피할 수 있겠는가?
1)우리 속에 지속적으로 거하는 죄의 잔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죄는 항상 우리 속에는 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속에 거하는 죄를 죽여야 할 책임이 있다. 죄를 안 짓고 온전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헛되고 거짓된 무지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완전함이란 사실상 가장 사악한 것이다. 그들은 육신의 허황된 생각으로 교만해져 복음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2).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새 사람의 계속적인 변화로 인해 옛 것이 파괴되고 무너진다는 뜻이다.
영을 대항하는 육을 가진 탓에 우리는 원하는 바대로 모두 순종하지 못한다. 이 ‘사망의 몸’(롬7:24)인 우리의 육체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의 낮은 몸이 변화되는’ 방법밖에 없다(빌3:21).
죄를 죽여야 할 의무가 있는 우리는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적을 물리쳐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 적이 죽기도 전에 싸움터를 떠난다면 그는 자신의 의무를 온전히 수행한 것이 아니다(갈6:9, 히12:1, 고후7:1).
죄를 계속 죽이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죽일 것임
죄의 최종목표는 하나님을 포기하고 대적하는 것
2)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죄의 활동성
죄는 우리 속에 거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활동하여 육체의 행실을 행하도록 자극한다. 죄의 물줄기는 외관상 고요해 보이지만 그것은 조류의 움직임이 심한 매우 깊은 물과 같다. 또한 죄는 우리 속에 거할 뿐만 아니라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의 법과 싸운다(롬7:23). 그래서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스른다(갈5:17). 욕심은 우리를 속이고 유혹하는 죄이다(약1:14).
욕심이 추구하는 목표는 악이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롬7:19). 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자신은 항상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자신 속에 거하는 죄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죄는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의 행동을 오염시키려고 발악을 한다. 그런 죄를 죽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죄는 교묘하고 강력하여 고삐를 늦추지 않고 호심탐탐 우리의 영혼을 죽이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우리의 매일은 항상 죄가 이기든지, 아니면 죄를 죽이든지 양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믿음의 성인들은 죄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죄로부터 피할 수 있는 도피처는 없으며, 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죄는 항상 극단을 추구한다
우리가 죄를 계속적으로 죽이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것은 영혼을 파괴하는 더욱 더 큰 저주스런 수치를 가져다준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1).
죄는 항상 극단을 추구한다. 우리를 유혹할 때 그 유혹과 같은 노선에서 가능한 한 더 큰 죄를 짓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불결한 생각은 나중에 우상숭배가 되고, 탐심의 욕구는 탄압으로 변하게 된다. 죄는 우리 마음속에 정욕을 자극해서 그 경로를 통해 더욱 큰 죄의 최고봉에 오르도록 유도한다. 그것은 무덤과 같아서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다.
죄가 승리할 때 인간은 강퍅해져서 파멸하게 된다(히3:13). 죄의 행동과 속삭임은 처음에는 매우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일단 우리의 마음속에 그 뿌리를 내리면 죄는 계속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 더 큰 죄를 짓도록 유도한다.
죄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을 포기하고 대적하도록 하는 데 있다. 죄의 거짓됨 때문에 그렇게 된다. 죄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죄를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므로 매 시간마다 죄의 뿌리를 마르게 하고 그것의 머리를 쳐서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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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