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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의 “신학의 정수(A Marrow of Theology)” (4)

6)신앙에 있어 칼빈과의 연속성 

에임스는 신앙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칼빈과는 다른 강조점을 갖고 있었으나 칼빈의 신학적 관점과 명백히 연속성 위에 있다. 칼빈은 신앙을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진 약속의 진리에 기반을 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으로 정의했으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비로 우리를 자신에게 이끌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께서 진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속에서 감정의 역할을 기술하면서, 칼빈은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온전히 뜨거운 열심히 없다면, 지성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볼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칼빈은 “일단 어떤 사람이 감정의 자극을 받으면, 감정은 철저히 그를 사로잡아 그를 감정으로 이끈다”라고 말한다. 칼빈과 똑같이 에임스도 신앙을 정의하고 회심을 가르칠 때 감정적 차원과 의지적 차원을 동등하게 강조했다.

의지를 신앙의 중심 항목으로 봄으로서 에임스는 참된 경건은 죄인인 피조물과 구속하시는 창조주 사이의 언약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를 원했다. 의지의 행위로서 신앙은 언약에 대한 순종의 참된 표지이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제공된 언약의 약속들에 대해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도록 요구받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언약신학은 에임스의 신학체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2. 구조와 내용분석

 

책의 구조

 

“신학의 정수”의 구성은 일련의 범주들로 진리를 나누고 세분하는 라무스 체계에 따라 조직되어있다. 에임스는 제1권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한 교리로서 신학은 첫째 신앙(1권 1-41장) 곧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를 말하고, 제 2권에서는 순종(2권 1-22장) 곧 사람이 어떻게 신앙을 실천하고 하나님께 대해 순종하며 선을 행하는 가로 나뉜다. 이 두 핵심범주인 신앙과 순종은 에임스의 전체 신학체계가 흘러나오는 원천을 형성한다. 1권에서 신앙의 개념과 2권에서 선행에 대한 칼빈주의적인 소명에 입각한 순종을 다룰 때 그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의 다양한 표지와 열매들을 통해 자신의 신학체계를 설명한다. 

 

1)신앙과 하나님의 충분성

그는 신앙을 ‘마음을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신앙을 전인격적인 의지의 행위로 규정한 후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관해 기술한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본질(1권, 4-5장)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충분성과 유효성(권능)으로 나누어 내용을 전개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충분성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피조물이 필요로 하는 전부라고 선언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첫째로 다양한 속성들 속에 표현된 하나님의 본질 속에서(1권 4.12-67), 둘째로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적인 하나님의 현존 속에서(1권 5장) 확인된다. 또한 하나님의 유효성에 대해서 그는 하나님의 유효성을 만물 속에 있는 모든 것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능력(엡1:11-36)으로 정의했다(1권 6장). 

 

 

제1권 신앙-무엇을 믿는가 제2권 순종-어떻게 신앙을 실천하는가 

두 핵심범주 신앙과 순종은 에임스 전체 신학체계 원천 형성

 

2)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그는 하나님의 작정을 하나님께서 그의 유효성(권능)으로서 제일 먼저 하신 일로 가르친다(1권 7장). 그는 모든 일이 창조와 섭리 속에 예증된 것처럼 하나님의 영원히 선하신 기쁨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했다(1권 8.9장).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는 창조질서 전체에 미치지만 하나님께서 지성적인 피조물인 인간에게 행하시는 특별한 통치는 행위언약이다. 그런데 이 조건적인 언약을 파기함으로 인간은 비참하게 죄에 빠졌다. 인간의 타락은 영적이고 육적인 죽음과 원죄의 유전을 포함한 심각하고 영원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진술한다)(1권 11-17장).

 

3)중보자와 구속자 되심

그러나 인간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다. 인간의 정죄는 구속을 통한 회복의 은혜로 말미암아 극복된다.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새롭게 교제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오로지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목적’으로 인해 일어난다(1권 18-23장).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보자와 구속자가 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라는 삼중 직무를 주셔서 보내셨다(1권 19장).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에 대한 ‘배상’을 제공하시고, 우리의 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모든 것을 가지셨다(1권 20장).

 

3)전인적인 의지의 행동인 신앙

신앙은 생명과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께 심령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모든 악에서 구원받고 모든 선을 따르게 된다(시37:5, 렘17:7). ‘믿는다’는 것은 통상적으로는 증거를 인정하는 지성의 행위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의지가 감화(感化)되며, 의지를 통해 이와 같이 증명된 선을 받아들이게 되므로, 신앙은 의지의 행위로 불리울 수 있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신앙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요1:12, 영접하는 자, 곧 믿는 자). 신앙은 선택행위이며 전인적인 행동이다. 이는 결코 지성만의 행위가 될 수 없다(요6:35, 내게 오는 자는...나를 믿는 자는). 신앙이 항상 복음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의 행동이 따른다. 지성과 관련된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항상 신적 증언에 의존한다. 하지만 신적 증언은 하나님께 대한 의지의 진정한 전환 없이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요3: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신앙은 증거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불확실하거나 의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신앙은 그 본성상 어떤 인간적 지식보다 확실하다. 왜냐하면 신앙은 무오류성(無誤謬性)이라는 기초를 가지고 그가 믿는 대상으로 인도받기 때문이다.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올바르게 살도록 하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시다(딤전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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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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