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설교의 기술과 목사의 소명”의 출간
“설교의 기술”은 1592년 라틴어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목사의 소명”은 1606년에 발간되었다. 이 두 권의 책은 윌리엄 퍼킨스의 2절판 3권의 전집으로 된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아주 중요한 책에 속한다. 17세기 청교도 설교학의 교과서이자 당대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 책은 그가 34세가 되던 1592년 라틴어로 처음 출판되었고, 그가 죽은 후 4년 뒤인 1606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17세기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영국 종교개혁 이후 설교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책으로 손꼽힌다. 또한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 책의 이론과 구조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더욱 발전시키고 확장시켜 “설교와 설교자”(Preaching & Preacher)를 저술할 수 있었다.
원래 케임브리지의 그레이트세인트 앤드루스교회에서 시민과 학생들도 이루어진 청중에게 설교와 강의로 전해진 이 논문들은 그가 직접 집필한 글과 강의노트에서 나온 내용, 사후 유고로 출판된 내용 등을 담고 있다. 1584년에서 1602년까지 18년간의 사역기간을 종합한 이 출판된 논문들은 예정론에서부터 가정을 올바르게 이끌어가는 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그의 놀라우리만큼 다양한 관심의 폭을 보여주고 있다.
예정론부터 가정 이끌어가는 법까지 광범위한 주제 다뤄
설교자와 교재 부족, 개혁파 설교법 제공 목적으로 저술
5. 저술 동기
본서의 배경이 되는 16-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시대(1550-1700)는 교회사에서 목사다운 목사들이 많이 배출된 시대요, 설교다운 설교가 넘쳤던 시대다. 이 시대에 100여 명의 기라성 같은 탁월한 설교자들이 배출되어 영국의 수많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성경적으로 변화시켰다. 성경적 그리스도인, 성경적 가정, 성경적 교회, 성경적 국가의 모습을 교회사의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드러낸 청교도 목사들은 자신의 신분과 소명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청교도 설교자들은 어떻게 설교했을까? 윌리엄 퍼킨스의 “설교의 기술과 목사의 소명”은 바로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청교도 시대를 크게 16세기 후반 엘리자베스여왕 시대(1558-1603)의 초기 청교도와 17세기 스튜어트 왕조(1603-1662)의 후기 청교도로 구분해본다면 44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던 퍼킨스(1558-1602)는 엘리자베스여왕 통치와 거의 일치하는 시대를 살았다. 청교도 1세대의 핵심 인물에 속하는 퍼킨스는 당대 ‘서유럽 최고의 개신교 신학자’였으며, 영국 청교도 설교자의 아버지요, 실천적인 영국 청교도신학의 원조요, 산더미 같은 청교도 문헌을 쏟아낸 청교도 저술가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쓸 당시 16세기 중반의 영국에는 성직자들은 많았으나 설교자는 없었다. 대부분의 성직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설교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교회 당국이 1547년에 출판한 12개의 설교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낭독함으로 매주 설교를 대신했다. 설교의 수요가 더 요청되자 20개의 설교를 추가 보급했지만, 설교자들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설교문이 아닌 설교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리스도대학의 로렌스 체더톤(Laurence Chaderton)의 영향으로 ‘설교연구회’(prophesying)가 설교자들을 양성하는 모임으로 활기를 띄었으나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1558-1603)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억압을 받았다. 그 결과 성직자들이나 교인들 모두가 성경이 말씀하는 기독교 전반에 걸쳐 철저히 무지했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는 무신론의 죄악 아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6. ‘설교(prophesying)’라는 의미
퍼킨스가 그 시대 설교에 대한 전반적인 무지함을 크게 개탄하며 “예언”(prophesying)이라는 이름으로 본서를 저술하였는데, 이는 분명 엘리자베스 1세의 정책을 겨냥한 의도가 다분한 것이었다. ‘설교’로 번역된 단어인 ‘Prophesying’이란 말은 깊이 쓴 설교, 올바른 교리를 전하는 동시에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찬양하는 설교를 가리키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표현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주된 사역인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와 더불어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가 함께 포함되었기에 퍼킨스는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로 ‘예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설교 운동은 엘리자베스가 1560년대 초반에 시행한 ‘종교법령’(Settlement of Religion)’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개혁주의적 말씀 설교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는 한 방식이었다. 이런 운동은 엘리자베스의 이복동생 에드워드 6세(Edwards VI)의 재위 중에 나온 ‘설교집’(homilies)‘을 단순히 읽는 것만 가지고 살아있는 설교를 완전히 대체해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당시에 국교회 기도서의 주된 저자인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가 대부분을 쓴 이 ’설교집‘은 설교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록한 설교문이었다. 그 이유는 크랜머를 비롯한 휴 래티머, 니콜라스 리들리, 존 후퍼 등 초기의 영국 종교개혁가들이 16세기 중엽의 전반적인 설교 수준을 매우 형편없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이 설교집의 저자 자신들도 이것을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퍼킨스가 개혁주의적 설교 같은 주제를 말하면서 이를 ‘prophesying’이라 표현한 것은 권력의 미움을 살만한 위험스런 일이었다.
본서를 저술한 퍼킨스의 유일한 관심과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었다. 또한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 역시 명확하다. 첫째,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안에 유능한 설교자들의 부족, 둘째, 실천신학에서의 목사들의 훈련을 위한 교재의 부족, 셋째, 당시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개혁파 설교법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퍼킨스는 설교를 ‘고차원적인 은사’이며, 가장 탁월한 영적 은사라고 주장하면서 “설교 은사의 신성함은 마차에서 오르내릴 때 도움을 받는 숙녀의 위엄과 같다. 다른 언어와 지식의 은사들은 설교의 탁월성을 인식하여 단지 옆에 서 있는 하녀와 같다”고 했다.
younsuklee@hotmail.com
06.13.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