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기 위해
그의 ‘고백록’은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참회이상,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그의 ‘고백록’을 통해 자신의 악한 행동과 선한 행동을 말함으로 공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하나님께 인간들이 돌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는 이차적인 것으로 자기도 모른 채 자신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고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명목상 신자에서 벗어나도록
먼저 그는 자신이 중생을 체험하지 못한 명목상의 기독교인이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환경에 대해 이해할 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콘스탄틴 황제 이전의 교회는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는 교회였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는 실존적 결단을 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틴 황제로부터 박해가 끝난 후의 기독교는 로마제국 내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종교가 되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내적인 결단도 없이 교회에 물밀듯이 들어오게 되었다.
380년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347-395)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유일한 종교로 선포한 후에는 그 정도가 더욱 악화되었다. 소위 기독교시대(Tempora Christiana)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로마시민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자동적으로 기독교인이 되며, 이 후로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 비추어진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볼 때 그는 제국의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슴속 깊이 들려주어 이런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게하고 싶었다.
4. 신학적 사상집으로서의 흐름
1)고백록의 뛰어난 부분인 자기성찰
그의 고백록의 흐름은 보통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권부터 9권까지이다. 여기의 내용은 자신이 경험한 회심을 정점으로 지난 살아온 날들을 회고하며 그 방탕과 교만의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관용을 베풀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특히 그의 고백록에서 뛰어난 부분으로 일컬어지는 8권의 무화과나무 아래서 회심하는 장면은 그에게 있어서 결정적이지만, 그의 고백록을 보면 이에 못지않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회심 직전 그가 스스로 자기 성찰을 하는 고백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8권 7장 전체를 ‘자기성찰’이라는 주제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객관적으로 고찰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자기성찰은 한 인간이 종교적으로 변화하는 시점과 자신이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단계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0권에서는 회심의 주체인 자아와 그의 기억을 통한 성찰을 통해 시간과 영원에 대해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통찰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부분인 11권부터 13권까지는 창세기 해석을 통해 그 당시 유행했던 다른 사상들을 반박하고 기독교신앙을 변증하고 있다. 이처럼 고백록은 그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성찰하며 기독교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신학적, 철학적 사상집이라 할 수 있다.
2)자기성찰의 의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 전제된 자기성찰의 부분에 대해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오, 주님, 그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당신은 나를 나 자신으로 돌이켜 자기성찰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자신을 살피기 싫어서 이때까지 내 등 뒤에 놓아두었던 나를 당신은 잡아떼어 내 얼굴 앞에 갖다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보기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얽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기 싫어서 나를 피해 어디로 가고 싶었으나 갈 곳은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자기성찰을 하도록 한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결정적 순간에는 반드시 자기성찰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기 스스로를 대상화하여 바라보는 반성적 시각 없이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영향을 받은 칼빈도 그의 기독교강요 1권 1장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유명한 논지를 펴고 있다.
이것은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동안 이렇게 더럽고 참혹한 자신에게 끝없는 관용과 은총을 베풀어온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자기성찰 없이 본래부터 착하게 사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리석고 단순한 아이로 살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고, 자기성찰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은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자기성찰을 회피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고 표현한다. 인간은 자신을 성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부끄러운 자신을 똑바로 대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자신을 대면하는 편을 선택하겠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성찰의 기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3)자기성찰의 이유로서의 시간개념
그가 그토록 회피했던 자기성찰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그의 변화된 태도는 무엇 때문일까? 이런 그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의 시간의 관념에 대한 이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고백록’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는 시간의 비밀이자 인생의 비밀로서 우리의 실존과 연결되어 있다. 시간의 문제는 곧 죽음의 문제이며 죽음은 절대적 도착점인데, 그는 시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간을 영원의 부름이란 해석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영원을 바라보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인가? 허락된 시간 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일 것이다. 결국 우리 삶의 최종단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최종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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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