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관심사는 기독교신앙의 중요한 심상들을 통해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
선과 악 사이 영적, 도덕적 전투 보여주는 영문학 중 강력한 실례의 하나
3. 구조분석
이 서사시는 성경해석 학자 릴랜드 라이켄(Leland Bryken)이 분석하는 것처럼 교차구조(Chiasm)로 부르는 형식으로 배열할 수 있다. 첫째 1권에서 3권까지 사탄의 타락활동은 맨 나중의 10-12권까지의 인류타락의 활동과 맞물려 유비를 이루고 있다. 두 번째는 낙원을 차지하는 내용인 4권과 낙원을 상실하는 내용의 9권은 대조를 이룬다. 세 번째 천상에서의 전쟁과 파괴를 다루는 5-6권은 세상 창조로 보완되는 7-8권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또 다시 간략하게 줄인다면 1-2권은 사탄과 지옥, 3-4권은 천국과 낙원, 5-6권은 천상에서의 전쟁, 7-8권은 세상의 창조, 9-10권은 타락, 11-12권은 장래 역사에 대한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놀랍게도 이 이야기의 활동에 네 개의 우주적 배경-천국, 지옥, 타락 전 낙원, 통상적인 타락의 역사-에 입각하여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4. ‘실낙원’을 읽기 위한 도움
밀턴의 일차적 관심사는 독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심상들(images)을 통해 낙원으로 인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낙원’을 읽을 때, 저자가 가진 청교도적 관념에 대한 해설을 발견하려하기보다는 우리 믿음의 심상들을 깊이 상고하면서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유익할 것이다. 서술 장면, 인물, 사건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그의 심상은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그의 표현은 많은 부분이 픽션(fiction)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픽션에 대한 밀턴의 전략적인 목적은 우리를 영적인 실재들에 생생하게 다가가도록 이끈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1-2권을 읽는 동안 우리는 악과 지옥의 심상을 볼 수 있으며 천국과 낙원의 완전한 모습에 대한 심상을 살펴보게 된다. 그런 후에 상상을 통해 천상에서의 전쟁과 하나님의 완전한 세상 창조를 그려보면서, 이어서 완전한 상태에서 타락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타락한 인류역사를 살피며 잠재적인 구속(redemption)에 대해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미래에 대한 환상이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에 초점을 두고 펼쳐지기 때문에 구원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동산을 떠나는 장엄한 마지막 장면은 성도들이 인간적인 사랑과 신적인 섭리를 통해 위로를 받고, 타락한 세상에서 구속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청교도의 전형적인 패러다임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5. 실낙원에 나타난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치들
1)죄의 사악함과 불순종
사단이 불못 속에서 일어나 천국에서 추방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보복할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마귀 회의를 연다. 사탄과 사탄의 세력에 대한 광경에서 저자는 죄의 사악함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저자는 이 불경한 무리가 보여주는 감정과 태도를 통해서 죄가 얼마나 사악한지에 대한 해부도를 드러냄으로, 우리로 하여금 사탄과 영적 악이 통치자와 권세들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 동시에 이 사실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기에, 우리의 삶의 상황도 살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읽게 된다. 사탄과 지옥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인간의 상태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의 삶과 상황 속에서도 지옥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강조하고 있다. 실낙원의 첫 장면은 밀턴이 이 서사시의 주제로 이름을 붙여 놓은 “인간 최초의 불순종”이다. 그는 죄를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 작품은 아담과 하와의 유혹과 타락을 서사적으로 표현하면서, 미래에 천상의 은혜가 인간의 죄악성과 싸우게 될 것을 서사적으로 드러내고 있다(2:359-360).
2)하나님의 속성과 주권
밀턴이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밀턴의 시에서 성부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지옥을 포함한 우주를 주관하신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주의 드라마의 모든 장면에서 활동하신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며, 무엇보다 3권의 전반부에서 묘사되는 천국의 장면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죄와 처벌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자연스럽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대속하시는 사랑이 하나님의 공의보다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성자 하나님께서 천상의 대화에서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처럼, 자비가 처음부터 끝까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3:134).
3) 하나님의 사랑을 행하시는 성자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행하시는 분은 성자 하나님이시며, 세상에 대한 구속의 주제를 가장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성자와 관련해서다. 이 강조점은 이 작품의 시작에서 확인되는데, 에덴의 상실이라는 이야기의 주제를 선포한 다음, 즉시 “그 후 마침내 더 위대한 그 한 사람, 그가 우리를 구속하고 복된 자리로 회복시켜 주시리라”(1:4-5)고 언급하는 데서부터 알게 된다. 천국에서 대화를 나누는 극적인 순간에 성자는 인류의 구속을 책임지겠다고 자원하신다. “따라서 구속이 없으면 모든 인류는 잃어버린 자가 되어 죽음과 지옥에 떨어져야 하리라. 하나님의 아들이 없었더라면, 가혹한 파멸,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히 거하고 그분의 소중한 중보로 이처럼 새롭게 되나니...”(3:222-26). 타락 이후에도 아담과 하와의 비참한 곤경 속에서 그들의 위대한 중보자로서 개입하시는 분이 성자시다(11:19). 밀턴은 그리스도 중심사상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천상의 전쟁 당시에 사탄을 패배시킨 당사자를 그리스도라고 소개함으로, “승리자이신 그리스도”를 부각시킨다.
4)섭리에 대한 강조
밀턴은 섭리(providence)를 강조하는데 이 교리를 통해 그 자신은 그의 작품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위로를 받았다. 첫 부분에서, 자신의 목적이 “영원한 섭리를 증명하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길을 옳게 드러내는데 있다”고 선언한다(1:25-26). 그는 타락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권능을 세상의 악과 고통이라는 사실과 조화시키는 신정론(神正論)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아담과 하와가 동산을 떠나는 마지막 장엄한 결말 장면을 묘사하면서 “섭리가 그들의 안내자였다”고 덧붙인다(12:647).
5)기독교적 인간관
이 작품에서 인간들은 이중의 능력 곧 선을 행하는 능력과 악을 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에 의해 완전하게 창조되었으나 스스로의 불순종으로 인해 타락한 인간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구속을 얻고, 그 구속의 한 부분으로서 영원히 영광을 얻으리라는 소망 속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청교도 설교가 윌리엄 퍼킨스가 “인간은 창조된 존재, 타락한 존재, 거듭난 존재, 영광 받을 존재라는 4중적 상태 속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표현한 생각과 동일하다. 밀턴의 묘사에 따르면 인간은 도덕적 선택 능력을 부여받았고 그 선택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할 존재로 인식한다.
6)성경적 역사관
‘실낙원’의 기반을 이루는 성경적 역사관은 세상의 역사는 영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성경적 역사관은 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되었으나 이 상태는 아담과 하와의 죄의 타락으로 인해 상실된다. 이후로 오랫동안 죄의 상태에서 고통스런 인류의 역사가 이어지고, 이 이야기 속에서 신앙의 행위는 찾아보기 어렵다(12:535-36). 그러나 시간은 결국 멈출 것이며(12:555), 무한한 날의 시대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의와 평강과 사랑에 뿌리를 두고 세워질 것이다(12:5439-50).
7)사탄의 내면적 절망과 심리
실낙원의 전체에서 독자들로부터 가장 즐겨 읽히는 부분은 사탄과 반역천사들이 주로 등장하는 시의 앞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탄은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를 가진 인물로서 타락한 천사의 무리들을 이끄는 용감하고 카리스마적인 군대지휘관과 탁월한 웅변가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천국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패하고 지옥에 떨어진 사탄이 타락한 동료 천사들 무리 앞에서 행하는 연설은 탁월한 무용과 위엄과 함께 뜨거운 열정을 아울러 지닌 고대 서사시의 영웅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밀턴은 사탄의 연설 바로 뒤에 “고통 속에서도 자랑스럽게, 그러나 깊은 절망에 애태우며”라고 사탄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 언급한다. 이로서 그는 사탄의 내면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 독자로 하여금 사탄의 겉으로 드러난 영웅적인 모습과 함께 내면적인 절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8)영적 전투
이 작품은 선과 악 사이의 영적, 도덕적 전투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영문학에서 가장 강력한 실례 가운데 하나이다. 이 전투는 전체 이야기를 구성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신실한 종(천사와 선인들)들이 같은 편이다. 다른 한 편은 사탄(마귀)와 악인들이다. 천국은 지옥과 반대되고 빛은 어둠과 반대된다. 천사가 행한 것이든 인간들이 행한 것이든 선한 행위들은 악한 행위들과 대비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이 지배적인 영적 전투에 대한 크고 작은 세부묘사로 가득 차 있다.
younsuklee@hotmail.com
10/19/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