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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상)

이윤석 목사

들어가며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명저들은 우리 개혁주의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읽어야 할 필수명저들이다. 대부분 고전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고전은 옛 것으로서 사실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그 책이 쓰였던 시대를 초월하여 영향을 끼치는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개혁신앙에 큰 영향을 끼친 저서들은 종교개혁 이후부터 청교도 시대까지 광범위하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더불어 종교개혁의 5대강령인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강조하는 신앙은 청교도 시대에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시대의 위대한 작품들을 먼저 소개하고 또한 광범위하게 우리의 믿음에 도움을 주었던 작품들에 독자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필자 자신의 독서 범위를 넘어서서 이 글을 다루려고 하며, 일차적인 독서와 함께 이차적이고 부가적인 자료들을 인용하여 성도들이 읽을 고전작품들의 중요성과 영향과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함으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갖게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것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적인 요소가 더 강하기 때문에 필자가 기록하는 간단한 자료 외에 더 권위 있는 분석과 평가를 보는 것이 유익하겠지만, 이 글은 성경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들의 명저로의 초대를 위한 입문적 단계로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천로역정: 성경 다음으로 잘 읽히며 절판된 적 없고 영문학 사상 이정표 이뤄 

              영적 생명과 죽음에 대한 청교도의 심오한 진리 담은 교훈적 우화

1. 저자 존 번연(1628-1688)

 

그는 잉글랜드의 엘스토우 마을에서 가난하나 정직한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를 겨우 익힐 정도의 교육을 받았으며 10세에 초등학교마저 그만 두었다. 아버지처럼 금속용기들을 수리하거나 만들면서 인생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란 번연은 20세에 가난한 여인과 결혼을 했는데, 그녀가 결혼지참금으로 가져온 것이라고는 "보통 사람이 천국에 이르는 길, The Plain Man's Pathway to Heaven"과 "경건훈련, The Practice of Piety"라는 두 권의 신앙서적 뿐이었다. 

그들은 궁핍했지만 부인의 경건한 인격과 행동은 번연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번연은 아내와 함께 이 책들을 읽은 후에 평소에 즐기던 세속적인 일들을 중지하였다. 언젠가 그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늘에서 “네 죄를 버리고 천국에 갈 것인가, 아니면 죄를 가지고 지옥에 갈 것인가?”라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 강렬한 영적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이때 베드포도의 독립교회 목사인 존 기포드(John Gifford)가 그를 이끌어 주었다. 

번연은 기포드 목사의 영적 인도 아래 25세에 회심을 체험했고, 침례를 받아 크리스천이 되었고, 1627년 설교자가 되었다. 그는 철저한 청교도로서 성숙한 경건관을 가지고 있다. 그가 30년의 목회사역 기간에 쓴 60여권의 책이 있는데 그 중에서 12권은 국교를 신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옥된 감옥에서 쓴 것이다. 내적으로 번연은 그리스도를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갖기까지 5년 동안 극도의 고뇌를 겪었고, 외적으로 비국교도였다는 이유로 1660-1672년까지 12년, 1676-1677년에 6개월을 옥게 갇혀 고생했다. 

그는 당시 비밀집회소(conventicles)로 불리는 비국교도 모임장소에서 계속 설교했기 때문에 감옥에 가야 했다. 그는 베드포드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적인 설교자가 되었다. 만일 그가 영국 국교회에 반발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천로역정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영국 국교회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12년간의 옥고를 치루며, 그 기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첫 번째 영적 자서전인 “죄수에게 넘치는 은혜, Grace Abounding to the Chief of Sinner”를 출간한 것도 베드포드 감옥에 있을 때였다. 그는 1675년에 다시 수감되어 그 해에 감옥 책상에 앉아 천로역정을 기록했다.  

 

2. 천로역정의 영향

 

우선 책의 제목은 “순례자가 이 세상에서 다가올 천성에 가는 과정: 꿈의 비유로 전달됨,  The Pilgrim's Progress From This World To That Which is to Come: Delivered Under the Similitude of a Dream”이란 긴 제목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은 처음 번역한 분이 한자로 천로역정(天路歷程)으로 잘 번역하였지만 쉽게 번역한다면 “순례자의 여정” 혹은 “천성에 가는 길” 등으로 쉽게 번역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모든 시대를 통해서 성경 다음으로 잘 읽히는 가장 유명한 기독교 서적으로 결코 절판된 적이 없는 책이라면 이것은 수많은 성도들이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로역정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이것은 그만큼 믿음의 선배들이 끼친 좋은 유산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성경 다음으로 읽혀지고 있지 않는 듯하다(필자가 신학생들에게 이 작품의 독서 여부를 물어보았을 때 그 결과는 십분의 일에 국한될 정도였다).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된 이 걸작은 영어가 통용되는 세상에서 영문학 사상의 이정표를 이룬 작품이란 것에 누구든지 동의한다. 문학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현실적인 인물들과 극적 구성이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또 끌고 가도록 결합되어있는 전기소설로, 영국소설의 효시로 간주한다. 이 책은 설교의 황제라 불리는 스펄전에게 영감의 근원이었으며, 한국의 초대교회 길선주목사에게는 회심의 계기가 되었고, 1930년대부터 1960년대 한국의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에게는 부흥회의 중심주제가 되었으며, 이 작품은 여전히 지금도 절실히 필요한 메시지를 우리 성도들에게 전하고 있다. 

 

3. 저술의 의도

 

1부의 시로 된 서문의 “변명”에서 존 번연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우리 복음 시대의 성도들의 길과 경주에 대해 써보고자 시작했으나 성도들의 여행과 영광에 이르는 길에 대한 우화작품으로 갑자기 바뀌어 막상 쓰기 시작하자 내 머릿속에는 원래 생각했던 스무 가지 사실에, 스무 가지 생각이 더 떠올라 불길 속에서 불꽃이 날아 올라가는 것처럼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 우화작품을 쓰기 시작했지만, 곧 석방되어 이 작품은 그 후에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썼는지 제 자신도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이웃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저를 위해서 곧 제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썼습니다.” 

번연은 이 작품을 쓴 후에 청교도 문화권에서는 아주 생소한 스토리 형식인 우화 문장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이 작품의 출판에 대해 늘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찰스 2세에게 자신의 모든 학식을 번연의 설교 능력과 기꺼이 바꾸겠다고 했던 위대한 존 오웬이 자신의 담당 출판업자에게 이 책의 초판을 시장에 내놓게 함으로 이 작품은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4. “천로역정”의 탁월성

 

이 작품은 목사이자 설교자인 번연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치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단편적인 생각들이 연속으로 연결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청교도의 기독교적 실존에 대한 이해의 완전한 범위가 그림 형식 속에서 색인처럼 액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 작품의 주제와 심상은 성경적이고 독자에 대한 교훈과 자기 평가를 위해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유사 그리스도인의 모든 흥망성쇠가 자세히 제시되고 있다. 

평론가들은 성경을 반영하는 번연의 수사학은 압도적인 통렬함과 위력을 보여주고, 성경의 심상에 맞추어 그의 상상력이 불타오를 때 그의 산문에 들어 있는 상징적인 단어와 짧은 문장들의 효력은 참으로 매혹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탁월함은 영적인 생명과 죽음에 대한 청교도의 가장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교훈적 우화라는데 있다. 번연이 이 작품에서 의도한 것은 복음적이고 목회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5. 작품을 위해 사용한 방법

 

번연이 이 작품을 위해 사용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의 영적 일생을 순례, 곧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으로 묘사하고 있다. 둘째, 순례에 대한 예수님의 심상을 위험과 거짓 발자국 그리고 도움과 돕는 자로 점철되어 있는 곧고 좁고 고생이 심한 길로 묘사한다. 

셋째, 경치를 보고 장소를 방문하고 장애물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친구와 대적과 우매한 자와 도중에 만나는 실패들을 겪게 되는데, 특히 여행에서 만나는 인물과 장소의 명칭에 그 인물과 장소의 실제와 내용이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넷째, 현실적인 장면과 인물들, 그리고 크리스천(1부)과 크리스티아나(2부)의 실제 영적 경험들,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다양한 잘못된 교훈들을 나타내기 위해 우화적 상황과 섞어 놓은 번연의 혼합기법은 독자에게 충격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마음을 살피도록 이끌어간다. 번연이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우화적 상황들과 등장인물들에 대화에서 밝히 드러내는 영적 실재들과 섞어 놓은 혼합기법은 “천로역정”만이 제공하는 독특한 향취라고 할 수 있다.

 

08.1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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