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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민족 사역]

홍귀표 목사 (KAPC 전 총회장/다민족교회 담임)
홍귀표 목사

(다민족교회)

나는 대학에 입학하여 어느 날 한 친구의 초청을 받고 성경공부에 참석할 때까지 불신자로 살고 있었다. 성경공부를 참석한 후 몇 개월이 지난 뒤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나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였다. 그 때 나는 믿는 자는 마태복음 28:18-20의 말씀대로 세상의 모든 사람 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사명을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었다. 신학원에 들어가 신학 수업을 하고 졸업을 했지만, 여전히 그 사명을 순종할 길을 알 수 없었다. 1983년 미국으로 이민을 온 후 주님은 내가 전혀 계획하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이 사명을 순종할 수있는 문을 열어주셨다. 이 글을 통해 주님께서 어떻게 나로 하여금 시카고에서 이 사명을 순종할 수 있게 하셨는지를 나누고자한다.

 

다민족 사역에대한 비젼

 

1987년 가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UIC)의 학생들 몇몇이 나에게 그 곳 학생들을 위한 복음 사역을 해줄 수 있겠는가 하는 요청을 해왔다. 그 요청에 대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했을 때 그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 해 부터 그 대학에서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다. 사역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이 한인 1.5세들이었다. 그들은 영어와 한국어, 이중 언어를 했다. 그래서 내가 한국말로 사역을 할 때  전혀 문제가 없었다.

사역을 시작한 후 약 2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대학교 학생처장이 주최하는 조찬기도회에 초청을 받고 참석하였다. 학생 처장실 벽에는 대학교 현황에 대한 많은 자료들과 통계표들이 붙어있었다. 그중 한 통계표에는 그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 통계표에는 100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그 한 대학 캠퍼스에서 100 나라 족속들을 전도할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도행전 1:8에서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였다, “세상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 많은 나라를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땅끝이 내가 서있는 바로 여기구나! 주님께서 땅끝의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할 수있는 기회를 이 캠퍼스에 있는 유학생들을 통해 주셨구나!”

그것은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새로운 비전이었다. 그 비전은 내 가슴을 흥분과 기쁨으로 뛰게 하였다. 그 비전이 나로 하여금 다민족 사역을 시작하게 하였다. 그때 부터 나는 그 대학에 와있는 유학생들을 전도함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동시에 내 마음에 무거운 짐이 생겼다. 다민족 학생들을 전도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려면 영어를 유창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나의 나이는 36세였고 영어 회화는 초보 수준도 되지 못했다. 내가 한국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는 모두가 문법 중심의 공부였고 회화를 배운 적이 없었다. 중고등 학교 시절 매주 수 시간씩 6년에 걸쳐 영어를 배웠으나 간단한 회화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민족 사역의 비전이 너무나 강렬하여서 마음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나는 성경공부지, 설교 노트, 기도문 등을 영어로 써서 사역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영어로 그것들을 준비하는 데는 한국어로 준비하는 것보다 세배 혹은 네배 시간이 더 들었다.

영어로 사역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사역에 참여하고 있던 한국 학생들이 나에게 영어로 사역하는 것을 중단해달라고 심각하게 건의하였다. 그들은 나의 영어사역이 한국어 사역에 비해 영적인 양식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나는 낙심이 되었다. 다민족 사역의 비전을 계속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다. 

 

다민족 사역에 대해 확신을 준 하나님의 말씀

 

그 후 몇 달 동안 나는 극히 제한된 영어 실력으로 말씀을 전하느라고 고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출애굽기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를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집트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나오라는 말씀을 하실 때 모세는 자기가 말이 둔한 자라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항거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 누가 네 입을 지었느냐, ….내가 아니냐?” (출 4:11) 라는 말씀으로 격려하셨고, 모세는 그 말씀 붙들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었다. 

그때 그 말씀이 불처럼 뜨겁게 내 마음에 임했다. 그 말씀은 내 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혀를 주장하사 영어를 유창하게 하도록 하심으로 모든 유학생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시리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 말씀을 책상 위의 벽에, 차 운전석 앞에, 침실 방문에 써 붙여 놓고 계속 묵상하며 붙들었다. 하지만 내 영어는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쉽게 향상되지를 않았다. 한국 학생들은 하나둘씩 사역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낙심되었다. 그 무렵 백인 학생 두 명과 몇 명의 다른 나라 학생들이 사역에 나와 열심히 참여했다. 나는 그 학생들의 사역 동참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속 영어로 사역하라는 확인의 사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낙심을 극복하고 계속 다민족 학생 사역을 해나갔다.

 

다민족 사역을 위한 성령의 은사 

 

종족과 문화가 다른 학생들을 위한 복음 사역을 하는 동안 나는 그 학생들을 한마음으로 연합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어의 장벽뿐만 아니라 관점의 차이, 태도의 차이, 삶을 이해하는 전통의 차이들이 하나 됨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님께 어떻게 이런 장벽들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사도행전 2:1-11 의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성령 충만은 인류를 언어 장벽의 저주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인 것을 깨달았다. 언어 장벽의 저주는 바벨탑을 지은 인류의 교만죄에 기인하였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지어 자기들의 이름을 하늘까지 높이려는 인간들의 행위를 막고 흩어지게 하기위해 언어 장벽을 만드셨다 (창 11:1-9). 오순절날 그리스도의 제자들(그들 대부분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자들이었고, 외국어를 배운적이 없는자 였다)이 성령 충만을 받고 10개가 넘는 외국어를 말했다. 성령 충만으로 말미암아 그 많은 외국어를 말했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종족이나, 나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연합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 방언의 은사를 통해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도록 했다.

이 진리를 통해 주님은 나에게 성령이 주시는 방언의 은사를 구하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오직 나의 노력으로만 영어를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매일 몇시간 씩 계속 영어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면서 노력했다. 하지만 영어로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기만 했다. 항상 온전치 못한 영어가 의식되었다. 

방언의 은사를 간구하는 동안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벨탑 때문에 생긴 언어의 장벽은 단순히 언어가 불통 되어 인류가 갈라진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완전히 막는” 모든 장벽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말한다고 할지라도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는 의사소통의 장벽이 있다. 인류가 경험하는 모든 장벽의 근원은 언어 장벽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죄에 있다. 

바벨탑 때문에 생긴 언어 장벽의 저주의 의미와 성령을 통한 구속적인 방언의 은사를 연결하여, 주님은 나에게 언어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것 은 내가 모든 이기적이고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구한다면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받음으로 영어를 극복할 수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영어 방언의 은사를 구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부족한 영어에 대한 자기의식과 어색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몇 년 후에 나는 시애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시카고로 돌아오는 길에 아침을 먹으려고 시애틀 공항 근처의 한 식당에 들렀다. 그 식당에서 한 백인 형제와 같은 자리에 동석하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와 나는 날씨, 직업, 내가 시애틀을 방문한 이유, 그리고 몇 가지 사사로운 것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끝에 그 형제는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 내 고향은 한국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의 대답에 다소 놀라는 기색을 하면서 “ 그런가요? 나는 당신이 미국 어느 곳에서 태어난 줄로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그 당장엔 그의 반응에 대해 별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시카고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 형제의 말이 계속 마음에 떠올랐다. 주님께서 그 형제를 통해 내가 영어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마음속에 아주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영어에 대한 걱정을 더 이상 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나는 미국에 있는 백인들을 포함한 모든 족속을 위한 복음 사역을 위해 너를 사용하겠다.”

<다음호에 계속>

 

01.0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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