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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과 준비를 위한 선교의 새 물결]

김상돈 월드비전 신학교 총장 (과테말라 한인교회 원로목사)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6) 

우리는 2025년 을사년 푸른 뱀띠의 해라는 세상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파송을 받았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시점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명백한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는 마지막 시대의 끝자락이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이 필요하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6) 

“우리 세대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하자!”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 자비량으로 땅 끝까지 나가자! 이것은 필자가 DCF(제자선교회)에서 훈련받으며 외쳤던 모토였다. 그때 필자는 수원에 있는 창현고등학교 교목으로 사역하면서 보람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학생들에게 주님께서 땅 끝까지 가서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으라고 유언하셨으니 모두 선교지로 나가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너에게 가라고 했는데 너는 왜 학생들에게만 가라고 하느냐?”는 주님의 음성이 내 마음에 강하게 울려 왔다. 아내의 반응을 미리 걱정하는 나에게 주님은 “네 아내에게 가서 인생의 라스트 비전을 물어보라”고 하셨고 아내의 대답은 “당신이 선교지에 나가서 순교할 때 같이 순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친구가 써준 묘비명을 들고 1989년 8월 15일에 DCF(제자선교회) 선교사로 과테말라에 도착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이 바울처럼 선교하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흩어져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과의 동역의 결과라는 것이다. 과테말라에 도착 직후 한 가정에 한인 성도들 몇 분이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때 “당신들은 그리스도의 편지”이고 우리 모두는 선교사라고 선포하였고, 이것이 “과테말라 한인교회는 전교인 선교사”라는 모토가 되었다.

로잔대회 50주년을 맞아 진행된 “2024 서울-인천 제4차 로잔대회”의 표어는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였다. 예수님은 혼자 사역하시지 않고 12 제자와 70인 제자들을 불러 그들을 훈련하여 그들과 함께 사역하셨다. 요나는 독불장군처럼 혼자 준비하고, 경험하고, 시행착오 하며 그 결과를 기다렸으나, 바울은 사역의 시작에서 마침까지 언제나 동역자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사역했다. 

과테말라 한인교회는 주일 예배 후에 전 교인이 함께 광장에 나가 각자의 은사를 따라 선교하고, 지방을 돌며, 또는 주변 각국을 돌며 전세 버스나, 전세 비행기를 타고 선교를 하였다. 현지인들과 연합하여 하늘, 바다, 땅에서 기도운동을 하며, 미국에서도 다민족 성시화 기도회를 진행했다. 또한, 교회 자체 건물이 없을 때 현지인 교회 건물들을 먼저 지어주었고, 후에 고아원과 그 안에 기술학교도 건축하였다. 물론 우리 이름이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모두 현지인들에게 양도하였다. 평신도들은 선교현장 참여와 훈련을 통하여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고, 풀타임 전문인 선교사들이 수십 명이 배출되었다. 전 세계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가 하나의 선교단과 같이 연합하여 함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주님의 재림의 길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선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의 영을 간직한 자들로서 각자의 속에 계신 예수그리스도가 밖으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말씀이 보이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게 하셨던 것처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우리 신앙의 대선배이자 개혁자들의 외침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이다. 예수님은 관념 속에 계신 분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영의 좌소인 내 마음 깊숙한 곳에 계시면서 생각나게 하시는 그 말씀이 나의 사상이 되고, 언어가 되고, 행동이 되게 하여 나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게 함으로 우리는 살아 계신 주님의 증인으로서 주의 재림을 준비하여야 한다. 

Edward T. Hall은 문화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훨씬 더 많은데 묘하게도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감춰진 바를 가장 모른다고 한다. 또한, 문화는 우리 모두가 속한 주물 틀로서, 생각지도 못한 무수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은 대부분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풀러 신학교 김에녹 교수는 모든 민족은 타민족과 자신을 볼 때 늘 자신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렌즈를 통해본다고 한다. 또한, Andrew는 모든 인류는 자신이 자라온 방식에 익숙해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그 결과 타 문화권에 편견과 우월감을 갖는다고 한다. Heydari는 모든 사람이 자민족 우월주의적 관점을 갖는 것은 사람이 그만큼 자기 관점과 문화를 뛰어넘기 어렵고, 심지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익히고, 선교사의 자질을 갖추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각 민족뿐 아니라 각 개인 간의 갈등의 요인이 되고 선교의 장애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으로 하나님 앞에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4) 예수님은 광야의 저주받은 뱀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셨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죄에 속한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 죽었음을 인식하고 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죽은 것이 자꾸 살아나기에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십자가를 질 것이다가 아니라 오늘 매 순간 현재에 자기를 죽이는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묵상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휘어잡고 강권할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고후 5:14) 만약 내가 죽지 못하면 에덴동산에서의 뱀처럼 영악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면, 나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뱀처럼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주님의 재림의 길을 준비하고 주님을 만나는 그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전 세계에 흩어진 750만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산 제물들이 되어 함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나타낼 수 있게 되어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는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주님 앞에서 각자 받은 면류관의 상을 다시 주님께 드리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01.0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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