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사연구소 소장, 총신대 명예교수
2023년은 평양대부흥운동의 발원이라고 알려진 원산부흥운동이 일어난지 120주년이 되는 의미 깊은 해이다. 지금 우리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는 너무도 중요한 길목에 와 있다.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 아픔과 고통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특별히 모이는 예배를 생명으로 여기는 교회는 압력에 의해서 혹은 전염에 대한 우려로 모이기를 꺼려하면서 가장 힘든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독 한국교회는 예배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당했다. 기독교 2천년의 역사 속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기독교가 이토록 예배의 자유를 침해당하며 극심한 고난을 격은 때는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며 예배를 회복했다고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예배 참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일예배는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분명 한국교회나 이민교회 아니 전세계교회들은 너무도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2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과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면서 주권적인 하나님께 나가야 할 것이다.
1. 급변하는 사회와 세상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한 후 사회와 문화와 경제 등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도 급변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백신을 여러 차례 맞아야 했다. 정치적인 변수들이 종교적인 상황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고 여론과 언론들이 특정 종교와 그룹들을 적폐와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일도 발생했다.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목회자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교회는 순응의 길을 택했지만 여전히 비판의 중심에 섰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너무도 급변했다. 모든 영역이 그랬지만 유독 교회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변화와 힘겹게 싸워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의 선교가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손쉽게 비대면으로 교인들과의 접촉이 온라인을 통해서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교회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송출하면서 인터넷 가상 공간에 기독교 콘텐츠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해졌다. 기독교 유튜브 컨텐츠도 놀라울 정도로 많아졌다. 인터넷교회도 여럿 등장했다. 하지만 경건훈련과 인격적 성숙을 생명으로 하는 신앙공동체가 비대면 가상 공간의 예배와 교제만으로는 현실적으로 너무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있다. 신앙은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대면예배 참석과 성도들과의 교류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온라인예배는 절호의 찬스지만 훈련과 양육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이지만 온라인 예배에 익숙한 이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런 변화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훗날 정확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세계 역사는 이전과 이후로 대별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피부로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인류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점에서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전환기에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2. 크로노스 시간을 넘어 카이로스 시간을 같이 보라
기독교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을 이해할 때 크로노스(χρόνος)의 시간과 카이로스(καιρός)의 시간 둘로 이해한다. 크로노스는 보통 눈에 보이는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카이로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적인 시간을 지칭한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시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모두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말씀하셨다. 여기 때와 기한이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이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크로노스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바르게 파악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카이로스는 86회나 나타날 정도로 신약성경에 많이 등장한다. 지난 3년간의 팬데믹의 시간이 시련의 시간,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그러나 믿음의 눈을 통해서 볼 때 그 시간은 훈련과 연단과 도전의 시간이었다.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우주를 정복할 정도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코로나-19 하나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마치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때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태가 발생한 것처럼 인간이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고 하는 자만심과 교만이 극에 달할 때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생해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를 깊이 절감하도록 만들었다. 분명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은 그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기간이었다. 모든 상황이 피조물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창조주 전능자 하나님을 깊이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3. 변하는 세상,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라
교회는 변하지 않는 말씀, 곧 구원의 진리를 변하는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교회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누가 복음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분별하는 기준은 바로 이것이다. 성경의 렌즈를 가지고 세상을 보느냐, 세상의 렌즈를 가지고 성경을 보느냐 하는 것이다. 20세기 현대주의의 대변자 해리 에머슨 파스틱에 따르면 자유주의자들은 변하는 세상의 렌즈를 가지고 성경을 보려고 하는 자들인 반면 복음주의자들은 변하지 않는 성경을 가지고 변하는 세상을 읽어가는 자들이다. 급변하는 세상, 눈뜨고 나면 새롭게 전개되는 변하는 이 세상의 렌즈를 가지고 성경을 볼 때는 성경의 해석이 달라지고, 성경의 진리는 상대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상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세상을 평가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킨다.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된 변하지 않은 진리라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변하는 세상을 읽어갈 때 우리는 정확히 세상을 읽어갈 수 있다.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절대적 표준일 뿐만 아니라 너무도 급변하는 이 세상을 읽어가는 불변의 진리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변하는 세상의 것에서 길을 찾지 말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표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변하지 않는 진리로 돌아가 거기서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완벽한 진리이기 때문에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다.
4. 실추된 교회의 영광 회복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존 칼빈은 사도행전 주석에서 실추된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은 성령 외에는 달리 길이 없기 때문에 오순절 성령의 부으심이 임했다고 증언한다. 사도행전이 증언하듯 교회는 성령이 이끄시는 공동체이고, 성령은 말씀을 통해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너무도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고넬료 가정에 베드로의 설교가 있었고,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이들 가운데 놀랍게 임하셨다. 성령은 말씀의 저자이고, 말씀의 해석자이고, 중생과 회복과 부흥의 영이시다. 교회가 위기를 만날 때 그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길은 성령 외에 달리 길이 없다. 사도행전이 증언하고 기독교 2천년의 역사가 증언하는 것처럼 제자들과 교회와 개인이 위로부터 임하시는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하였을 때 변화를 받았고, 권능을 받고 사탄과 세상과 죄를 이겼으며 기사와 이적을 행했고 개인의 각성이 사회각성으로 이어져 놀라운 사회변혁이 일어났다. 누가가 증언하는 대로 사도행전의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은 말씀과 기도와 회개를 통해서 나타났다.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는 주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고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를 경험했고 그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다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모인 이들에게 요엘서의 약속을 환기시키고 약속의 말씀을 담대하게 증거할 때 성령께서 모인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탄식하며 회개했다. 성령을 사모하는 간절한 기도, 담대한 말씀의 선포, 철저한 죄의 고백은 참된 부흥이 임하는 곳마다 나타나는 분명한 특징이다. 오순절의 역사가 그랬고 사도행전의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가 그랬으며 기독교 2천년의 역사가 그랬다. 교회의 영광이 실추된 오늘의 현실에서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은 성령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
5. 한국교회여 회복을 넘어 다시 부흥으로 나가자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위축이 되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는 것을 가장 염원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코로나-19 이전 상태의 회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소한 코로나-19 이전 상태를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설정한 것이지만 교회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가야 한다. 앞으로 4년 후 2027년이면 사도행전 이후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로 평가를 받은 평양대부흥운동 120주년이다. 그 놀라운 평양대부흥운동의 발원이라고 할 수 있는 1903년 원산부흥운동 120주년이 바로 내년 2023년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부흥은 영원히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팽배하다. 패배주의가 우리 가운데 만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다. 기독교 역사의 참된 부흥은 극심한 침체와 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코로나-19의 움츠러들었던 축소지향적 부정적 사고의 틀을 깨뜨리고 이 땅에 성경의 저자이시고 성경 해석자이시고, 부흥의 영이신 성령의 부으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다시 부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 1차 대각성운동의 주역 조나단 에드워즈의 말대로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다. 그러나 아무 곳에나 부흥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곳에 임하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는 곳에 부흥이 임했다고 증거한다. 개교회이던 한 도시의 교회 공동체이던 더 나아가 한 국가의 교회이던 기도 없는 부흥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우리 모두 기도로 나가야 한다.
맺는 말
분명 오늘날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땅의 교회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 위기는 어느 한 가지에서만 아니라 너무도 다양한 방향에서 밀려오고 있다. 이런 위기의 상황을 타개할 길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고민해야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지금까지 세상적인 방법론이 아닌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우리 모두는 급변하는 세상에 함몰되지 말고 변하지 않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너무도 세상은 변하고 있고, 과학은 어제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으며, 첨단 기계와 프로그램은 미쳐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출시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물론 우리 사회와 세상이 너무도 급변하고 있다.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 변하지 않는 말씀으로 돌아가 성경을 통해 변하는 이 시대를 향한, 우리교회와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둘째, 존 칼빈의 말대로 실추된 교회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의 부으심 외에 달리 길이 없다. 때문에 교회를 통한 거룩한 구속의 역사를 위해 오순절 성령강림이 임한 것이다. 성령은 말씀의 저자이시고 말씀의 해석자이시고, 세상을 이기는 권능의 영이시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할 이유가 거기 있다.
셋째, 교회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는 세상에 선포하는 곳이다. 때문에 우리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가고 동시에 변하는 세상을 읽어가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창조 이후 인간의 역사는 종말을 향해 달리는 직선적인 역사이다.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고백했다. 역사의 기원과 과정과 심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기계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넘어 보이는 시간 이면에 흐르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읽어가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넷째, 한국교회여 다시 일어나라. 성령은 회복의 영, 부흥의 영이시다. 우리는 코로나의 위기 상황을 회복하는 차원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23년 원산부흥운동 120주년을 맞는 중요한 시점에 한국교회는 진정한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여 이 땅을 고쳐 달라고, 이 땅을 부흥케 해달라고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부흥이 임하면 인간이 수년, 아니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성령께서 단 몇 시간, 며칠 만에 하신다.
2023년 회복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는 원년,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으로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지만 아무 곳에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곳에 임한다. 병들고 상처투성이의 이 땅이지만 교회는 언제나 세상의 희망이여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말고 회복의 영, 부흥의 영을 사모하며 기도로 나가야 할 것이다. ‘주여 나를 부흥의 도구로 써주시옵소서,’ ‘주여 우리 교회를 부흥의 도구로 써주시옵소서!’
yonginduck@gmail.com
12.31.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