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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 새로운 물결” 신학적 접근

새로운 물결 – 전혀 새롭지 않은 새로운 시도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반복의 굴레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며 새해의 문을 활짝 연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 속에서 새해를 맞았었다.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마스크 없는 대면 생활이 가능해졌다. 새해에는 상실했던 과거의 정상적인 삶을 되찾되, 특히 이전보다 더욱 활발한 신앙의 삶을 펼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New Wave - 새 물결’이란 주제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결정인 듯하다. 

한 철학자가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칭하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과거의 일에 집착하지 말고 반드시 잊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런 상식적인 주장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확신하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있다. 과연 그런가? 우리는 새해가 되었다고 모든 것이 자연스레 새로워지지 않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왜 새해를 맞으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헛된 반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전도서 1:9-10)”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새 것이라 여기는 것도 잠시일 뿐, 쉽게 싫증과 권태를 느끼며 또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한다. 새로운 것을 찾으면 반드시 찾게 된다는 신념은 매우 인간적인 고집에 불과하다. 새로운 것에 대해 부풀었던 기대감은 결국 모든 것이 헛되다는 안타까운 고백으로 마치게 된다. 그렇다. 이런 반복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었다. 무신론자들은 당연히 이런 선언에 거부감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할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히 믿는 자들만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여기서 강조되는 점은, 하나님은 영원히 창조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해 아래 사는 우리가 경험하는 새로운 일들을 가능하게 하시는, 우리의 헛된 반복의 굴레를 끊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사 43:19).” 

 

새로움 - New 

 

하나님의 창조에는 새롭게 하시는 그의 능력과 지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왜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셨을까? 우리의 죄 때문이다.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심판으로 달려가며 살게 되었다. 타락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스스로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없다. 아무리 굳든 결단과 각오로 새로워지기 위한 노력을 거듭해도 절대로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 한계 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와 실망은 주로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우리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하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가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통해 새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한다.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않은 자들은 끊임없이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한다.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정결함을 받았는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영적 사역은, 우리는 마음의 변화라는 놀라운 증거를 통해 확인받을 수 있다. 

2023년 새해를 맞아, 진정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소망한다면, 가장 먼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새로운 것의 출발점이자 열쇠이기 때문이다. 

 

물결 - Wave 

 

파도는 바다 또는 강과 같이 넓은 물에서 바람에 일으켜 이는 물결이다. 또한 특정 사회에서 맹렬한 기세로 일어나는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풀러 신학교 선교학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 박사가 ‘wave – 파도 또는 물결’이란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그가 20세기 성령운동에 국한하여 3기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마치 거센 물결과 같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영적 운동이 있었는데,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 당시 교회를 일깨우는 역할을 감당한 것이었다. 유럽의 16세기 종교개혁, 미국의 18세기 대각성운동, 그리고 한국의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등을 예로 제시할 수 있다. 

교회 역사에 나타난 파도와 같은 신앙 운동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인간적인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백성으로 새롭게 서게 하신 것이다. 주로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어나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 또는 어려운 상황을 헤치고 나아갈 힘이 필요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선택하신 방법은, 그 당시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관계 회복으로 새롭게 일어서게 하신 것이었다. 거센 물결처럼 선포되는 십자가 복음의 능력 앞에, 성도들은 자신의 사악함을 돌아보며 회개할 때 마음을 새롭게 되는 놀라운 일을 체험하였다. 

개인의 변화는 곧 교회의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교회가 변화하면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잘 알려진 바, 1907년 평양에서 시작된 회개 운동이 전국 교회로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도덕적 문란으로 유명하던 평양시가 성도들의 모범적인 삶으로 인해 변하여, ‘제2의 예루살렘’이라 불리게 된 것은 우리를 모두 놀라게 한다. 실로 복음의 능력은 대단하다.  

현재 우리는 포스트모던과 급격한 세속화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 21세기 교회는 절대적 진리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세상의 풍조를 맞서고 있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하고 자율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맞대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성경적 세계관을 포기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려면 거의 순교적인 각오가 필요하다. 참 어려운 때가 되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강력한 영적 물결을 통해 헤쳐 나갈 수 있다.

2023년 새해를 맞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려면, 온 교회가 겸손하게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여야 한다. 또한, 한 마음으로 그가 강한 힘을 지닌 영적 물결을 허락하시기를 기대하며 간절히 간구하여야 한다. 

 

상투적 문제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바, 우리는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위의 서술은 기본 내용에 대한 재확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대단한 포부를 품고 시작된 신앙의 결단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정한 문제는 구체적 열매를 맺기 위한 실천적 노력이 없이 지적 동의 또는 감정적 갈망 정도에 그치는데 있다. 하나님은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을 통해 마음에 소원을 새롭게 하신다. 진정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우리의 몫이다.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해서 이룰 수 없다는 핑계를 중단해야 한다.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 역사에 반복하여 나타난 상투적 문제이다. 교회가 세상적인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기대와 다른 모습에 대한 반성이 없이 수용하려는 태도이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이전 세대에 비해 많이 감소되었다. 기독교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매우 부정적이다. 날이 갈수록 더욱 차갑고 날카로워지는 만큼, 교회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가 세상에서 들려오는 비판의 소리를 전혀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들에 의해 휘둘릴 수도 없다. 도리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의 관심과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향해 대항하여 싸우거나, 어떻게 하든지 좋은 모습을 보임으로 그들의 지탄을 막아보려는 노력에 집중할 때가 아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역사와 교회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위기를 허락하심으로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시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교회를 부르신다. 그 분 앞에 겸손히 서야 한다. 상투적 문제를 타파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새로운 선교지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적이 있다. 불안한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평안을 교회가 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를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교회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실망을 한 뒤 세상에서 대안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위기를 경험한 교회는 즉시 성도의 영적 각성과 교회의 수적 성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현재, 교회가 처한 곳이 곧 선교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선교는 비행기를 타고 먼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만 맞는 말이다. 선교지란 복음이 필요한 곳을 가리킨다.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 21세기 교회의 사명은 초대교회와 다른 것일까? 혹시 교회의 사명을 교세의 확장 또는 교회 수의 확장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기독교의 진리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 전파에 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영적 기관이다. 교회는 결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여 그들도 우리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한 가족으로 영입되도록 초청하는 사역을 우선순위에 둔다. 

선교지는 영적 전쟁터이다. 복음 전파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악한 세력을 대적하여 싸워야 한다. 이 전쟁은 휴전 없이 진행되며 승리 또는 패배 중에 하나의 결과를 얻을 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선교지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기 위해 우리가 갈망해야 하는 뉴 웨이브 – 새로운 물결은 어떤 것일까? 그 동안 각자의 길을 달려온 교회와 교단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본분을 함께 깨닫고 한 마음과 한 몸이 되어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과거 

 

모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초대교회를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간주하였다. 중세를 지나면서 로마가톨릭교회가 사도적 신앙을 지닌 교회의 전통을 파괴하였기에, 그들은 성경에 근거한 개혁을 통해 교회의 참 모습을 되찾으려 한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우리에게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성도들 간의 시기와 다툼, 그리고 분열 등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 할 요소들이 있다. 그럼에도 왜 초대교회로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을까?  

초대교회는 이단과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대항하며 확장되고 성숙하였다. 교회 안과 밖에서 동시에 교회의 영적 건강을 해치는 자들이 활동하였다. 초대교회는 이런 위기를 통해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지니게 되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교회가 넓은 지역으로 확장되어 세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확신을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381년 니케야 종교회의를 통해 그들은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한 몸이던 교회가 541년에 이집트교회와 시리아교회가 분리되고, 1054년에는 동방과 서방 교회로 나뉘어졌다. 종교개혁자들은 서방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태어나고 활동하였지만,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하는 사도적 신앙을 회복하려는 큰 꿈이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경계를 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로 숨기고 싶은 과거의 모습은 어떠했나? 당당하게 로마가톨릭교회를 대항하며 싸우는 모습과 함께, 서로를 향해 불신과 논쟁을 통해 결국 각자의 다른 길을 선택하여 걸었다. 그들은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였다. 이렇게 생겨난 교단의 역사로 인해, 현재는 모두 서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크고 작은 교단들이 산발적으로 생겨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하나 됨 

 

우리 교회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신천지를 포함하여 교회를 허무는 이단 세력, 종교다원주의에 뿌리를 둔 에큐메니칼 운동,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를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 등은 어떤 형태라도 철저하게 거부해야 한다. 한 걸음 나아가서, 숨기고 싶은 과거가 낳은 교단주의에 대한 관심과 심도 있는 성경적, 역사적 관심을 촉구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분열과 교단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교회 주인의 심정을 헤아려야 되지 않을까?! 현재 교회가 처한 새로운 선교지에서 교회 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 함께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야 하지 않을까?!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존 프레임 교수는 ‘Evangelical Reunion’이라는 저서를 통해, 교단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어떻게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을지를 실천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에는 교단주의 옹호자들에게 큰 충격이 될 만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필자는 프레임 교수의 제안에 깊이 동감하며,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날이 되면 이 세상에 망가진 모습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 주님께 나아가 누가 옳고 틀렸는지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려는 자가 있을까? 아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로 한 가족을 이룬 서로를 향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완성되었음에 서로를 끌어안고 감격하며 주님의 이름을 높일 것이다. 항상 새로운 물결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소수에 의해 시작됨을 잊지 말자.

covenantcho@yahoo.com

12.3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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